(김보라 국제부 기자) 사라져가는 직업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직업이 하나 있습니다. 철을 주무르는 사람, ‘대장장이’ 입니다.
대장장이는 영어로 ‘블랙스미스(blacksmith)’라고 하죠. 철 등 검은 금속을 뜻하는 ‘black’에 내려치다는 뜻의 라틴어 ‘smite’를 조합한 단어입니다. 중세시대 수공업이 번창하면서 재단사, 제빵사, 목공, 석공, 대장장이 등 전문적인 수공업자들의 몸값은 매우 높았습니다. 영국과 독일에 ‘스미스(smith)’나 ‘슈미트(Schmidt)’라는 이름이 흔하게 퍼진 것도 이같은 장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장장이의 자리를 기계가 차지해버린 요즘. 미국 뉴욕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은 한 칼잡이 여인 때문에 술렁이고 있다고 합니다. 대장장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특한 칼을 만들고 있는 여인, 첼시 밀러 때문입니다. 최고급 레스토랑 셰프들은 그녀가 만든 칼을 못구해 안달이 났다고 합니다.
첼시가 만든 빈티지 칼은 한 자루에 200~450달러(22~50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100% 수공예품인 이 칼은 둔탁한 손잡이에 무뎌보이는 칼날 때문에 꼭 옛날 영화 속 악당의 무기처럼 보입니다.
첼시는 어릴 때부터 버몬트에 있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는 꿈은 전혀 없었다는군요. 뉴욕에서 홀로 살다가 2년 전 취미로 만들어 친구들 생일 선물이나 집들이 선물로 주던 것을 어느 날 브루클린 벼룩시장에서 내다팔면서 그녀의 생활은 180도 변했습니다.
시골집 농장에서 말발굽이나 낡은 농기구의 부품으로 쓰이던 고탄소 강철을 구해 만든 그녀의 칼은 굉장히 무겁고 강도가 셉니다. 기계로 찍어내는 칼과는 비교도 안되는 성능이죠. 놋쇠로 장식된 디자인은 고풍스럽습니다. 그녀의 칼이 성능과 디자인에서 매우 특별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제 칼 한자루를 구매하려면 최소 6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공방은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스튜디오인데요. 그녀는 빈티지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농촌을 돌아다니며 강철을 수집합니다. 반짝반짝한 칼이 아닌 낡고 흠집 많은 고탄소 강철을 가져와 닦고 갈고 깎고, 엄청난 애정을 쏟아 붓습니다. 손잡이로 쓰이는 나무는 모두 단단한 사과나무나 단풍나무. 그녀의 작은 공방에는 휘날리는 강철과 나무가루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작업용 안경이 수십개 널브러져 있고, 한켠에는 대장장이 아버지의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첼시는 “대부분의 디자인은 어머니가 부엌에서 쓰던 도구에서 영감을 떠올린다”며 “내가 만드는 것의 목적은 단 하나(무언가를 자르는 용도)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 개의 감사해야 할 것들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없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벤처를 만드는 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여겨지는 요즘, 어린 시절 소중하고 따뜻했던 추억을 다듬어 자신만의 명품을 만들고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고 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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