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728x170
와.
역시.
명작은 명작이고 고전은 고전이다.
읽는 내내 기저에 깔린 영지주의가 불편하긴 했지만,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나에게 물음을 많이 던져준 책.
와 띠용띠용-
이 내용은 조만간 다시 정리해서 소화시켜야겠다.
나중에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런 얘길 쓰고 싶다.
내 얘기인 듯 내 얘기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
깨지고 방황하고 넘어지고 성장하는 과정
|
#intro
헤르만 헤세가 본인의 명성없이 작품으로만
어느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이자 <데미안>의 주인공)으로 출간한 책.
전시상황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죽은 전사자 유품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발견된 책이라는 썰이 있다.
#(첫 문장)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단 한 번뿐인 귀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존재가 총알 하나로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다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사람일 뿐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목할 만한 존재 그 자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한 번 그곳에서 교차되고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인간 누구든 신의 피조물로서 괴로움을 느끼며 십자가에 매달린 한 명의 구세주와 함께 살아간다.
#(두개의 세계)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너무나도 비좁아서 이곳에는 오직 부모님만이 살고 있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의 세계는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라는 이름의 세계이기도 했다. 이 세계에 속하는 것은 부드러운 광채, 청명함과 깨끗함이었다.
한편 또 다른 세계가 이미 우리 집 한복판에서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고,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도 달랐다. 이 두 번째 세계에는 하녀들과 직공들이 속했고, 유령이야기와 추한 소문이 있었다.
#(크로머에게 잡힌 싱클레어, -
이 앞뒤의 심리묘사와 삶을 침입해오는
‘악’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그 애는 웃으며 시계를 큰 손안에 받아 쥐었다. 그 손을 보며 나는 그 애의 손이 얼마나 난폭한지, 얼마나 나에게 깊은 적개심을 갖고 있는지, 내 삶과 평화를 파괴하려 하는지를 확실히 느꼈다.
#(세계의 틈이 생긴 순간)
내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버지께서 내 젖은 신발만 보고 꾸중하신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그것만 꾸중하시느라 ㅈ금 내가 어떤 나쁜 상황에 빠져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그러다보니 새롭고 묘한 감정이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날카롭게 날이 선 듯한 반항심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젖은 신발만 꾸짖으며 나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중략)
지금까지의 모든 체험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내가 새긴 최초의 칼자국이었고, 내 유년 시절을 이루는 기둥에 가한 최초의 칼질이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각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이었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이런 체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져 간다. 그런 칼질과 균열은 점점 늘어나고 아물다가 잊혀져 가지만, 우리 마음속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 남아 계속 피를 흘린다.
(내가 겪고, 모든 어린아이들이 겪는 반항심. 경멸감과 우월감이 뒤섞인, 기분나쁘고 묘하게 짜릿하고 더러운 느낌. 언젠가 한 번은 필요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순간)
#(싱클레어에게 접근한 데미안)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네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치자. 그런데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챘다면 그 사람이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거지. 알겠어? 이제 분명하지 안 그래?”
나는 어쩔 줄 몰라 데미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진지하고 영리하고 호의적이었지만 정겹기보다는 엄격해 보였다. 정의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데미안의 표정에 담겨 있었다.
“실험으로 우린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발견했어. 어떤 소년이 잘 놀란다. 그 소년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 분명 그 애는 누군가와 불편한 비밀이 있다. 대략 맞지? (중략)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이제 질문은 딱 하나 남았어. 방금 전 너랑 헤어져서 가 버린 그 애 이름이 뭐지?”
#(새의 문장)
하루는 그곳에서 노트를 들고 서 있는 데미안을 보았다. 그는 우리 집 현관문 위에 있는 낡은 새 모양의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의 커튼 뒤에 숨어 데미안을 바라보았는데, 문장을 꿰뚫어 보듯이 응시하는 예리하고도 차갑고 환한 그의 얼굴이 놀라웠다. 그건 어른의 얼굴이었고, 연구가나 예술가의 얼굴처럼 보였으며, 탁월하고 의지로 가득 찬 얼굴이었고, 이상하리만큼 환하고 차갑고 총명한 두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표류하는 자아의 시작)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이 경험들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자기 삶의 욕구가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서 쟁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했던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우리를 떠나려고 하고 고독과 죽음처럼 치명적인 추위에 둘러싸인 공간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고 느낄 때, 유년 시절이 무너져 내리고 그제야 우리들의 숙명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평생에 걸쳐 단 한 번 가능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경험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잃어버린 낙원을 꿈꾸며, 수많은 꿈 중에 가장 악질적이고 가장 살인적인 꿈에 매달려 헤어 나오지 (못한다)
#(데미안의 충고)
“난 네가 사람들한테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아. 너 역시 생각대로 인생 전부를 살아 보지 못했다는 건 알겠지.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 우리를 살아가게하는 생각이 가치 있는 거야. 넌 이미 너한테 ‘공인된 세계’가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면서도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다른 절반의 세계를 숨기려고 애썼던 거야. 그걸 숨길 수는 없어. 한번 생각을 시작해 버리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데미안의 이야기는 내게 깊이 와 닿았다.
“(중략) 금지된 일들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도 실제로는 악당이 될 수 있고, 그반대가 될 수도 있어. 그건 단지 편의상의 문제야! 안일하게 생각해서 스스로 판단이 어려운 사람은 금지된 것에 그대로 복종하고 말지. 그 편이 쉽거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금지된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해. 다른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도 그들한테는 김지되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금지되어 있는 일이 자신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을 수도 있는거야. 사람은 각자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해.”
(데마인의 두번째 말은 양날의 칼같은 관점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도바울이 남을 정죄하지 않기 위해서 각자의 기준이 다르므로 그 기준에 맞춰서 행동하라고 했던 것과 사사시대에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둘 다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본질적으로는 천지차이지만, 어찌됐건. 이런 접근 자체는 용기있다고 생각한다.)
“말뿐인 이야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조금도 가치가 없단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기 자신한테 멀어진다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술에 쩔어 방황하는 싱클레어)
초라한 술집의 더러운 탁자에 기대어 맥주에 취해서 깔깔거리며 말도 안 되는 방탕한 풍자로 친구들을 웃기고 때론 조롱하면서도 내 마음속에서는 몰래 내가 조롱했던 모든 것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나의 영혼과 과거, 어머니 앞에서, 그리고 신 앞에 눈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략) 나는 가장 난폭한 패거리에게도 인정받은 술집의 영웅이며 독설가였다. (중략) 그러나 우리 패거리가 여자들을 만나러 갈 때는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것으로 짐작해 보면 나는 철면피 방탕아인 척했지만 사실 외롭게 사랑에 대한 격렬한 동경과 가망성 없는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를 고독하게 만들어서 신이 우리 자신에게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은 너무도 많다. 신은 그때 나와 함께 이런 타락의 길을 갔다. 마치 악몽 같았다. 더러운 것, 찐득거리는 것, 깨진 맥주잔과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지껄이며 보낸 밤들에서 나는 몽유 병자처럼 쉴 새 없이 괴로워하면서도 구역질 나고 더러운 길을 기어 다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장차 무엇이 되든지 나는 상관없었다. 술집에 앉아서 떠들어대는 이상하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세상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내 저항의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부수어 갔고 때로는 상황을 이런 식으로 파악하곤 했다.
#(다시 나타난 데미안)
"이봐 싱클레어."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네게 잔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말이야 - 무슨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지는 우리 둘 다 모르고 있어. 하지만 네 마음속의 네 생명을 이루는 네 안에 있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어.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어네게 도움이 될 거야. - 자 이만 양해를 구하지. 나는 집에 가야겠어."
#(소설 <데미안>의 화룡점정)
쪽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생각 없이 펼쳐 보니 거기에 몇 줄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읽자마자 나의 온몸과 마음이 문구에 사로잡혔다. 놀란 망므으로 다시 읽었다. 그사이 내 마음은 전율하며 운명 앞에 움츠러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나는 이 구절을 여러 번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은 데미안에게서 온 답이었다.
#(피난처)
나는 그 당시 예상치 못한 피난처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혹은 자신의 소원과 필연이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시크릿>의 원조네. 하지만 <시크릿>처럼 마냥 긍정주의로 나약하지 않아서 좋다)
#(데미안의 집)
"벌써 그 이름을 안다는 말이지. 이봐, 그렇다면 네가 자랑할 만해. 어머니가 처음 만나서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은 네가 처음이야."
이날부터 나는 그 집에 아들이나 형제처럼 드나들었고 어떤 때는 사랑하는 사람처럼 방문하기도 했다. (중략) 바깥에는 '현실'이 있었는데 현실 속에는 거리와 집, 사람과 시설, 도서관과 강의실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집 안에는 사랑과 영혼이 있었고 전설과 꿈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생각과 대화에서는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았다. 우리는 단지 다른 영역에 속했을 뿐이었고, 다수의 사람들과 어떤 경계선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분리되었을 뿐이었다. (중략)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나는 단지 완전한 고독을 맛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결단코 행복한 사람들의 식탁이나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축제로 되돌아가길 바라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공동체를 보더라도 부러워하거나 향수를 느끼지 않았다.
-
그 뒤의 해설도 한 편의 수필같아서 붙여 쓴다. (이순학 저)
#(해설)
우리가 피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준비했다 하더라도 삶은 늘 우리에게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를 준다. 싱클레어의 자아도 마찬가지였다. 데미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아는 이렇게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제를 제시하며 우리 삶을 흔들어 놓는다.
(중략)
새가 알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듯이, 우리도 세계로 통하는 자신의 껍질을 부수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한다. 자신과 싸워 가는 길은 참 좁고 힘들지만, 그 길에 집중하며 인생의 돛대를 세워야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는 의존하고 있던 많은 것들에서 독립해야 한다. 따뜻한 가족, 부모님의 품, 도덕적인 신, 의지가 되는 친구, 기대고 싶은 사랑, 추구하고 싶은 이상향 등. 하지만 이 많은 것들을 떠나 홀로 서려면 자아의 내면적인 탐구과 비판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필요하다.
(중략)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주어지는 고민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스스로의 고민에 치열하게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내 안의 자아가 어떻게 해야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지 우리는 훈련이 부족하다. 그래서 밝은 세계에 조금만 위협이 가해져도 금방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린다. 하지만 이 공포는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듯이, 사력을 다해 껍질을 부수고자 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겁에 질려 평생 자아를 세상 밖으로 꺼내 보지도 못하느냐, 당당히 세계와 마주하느냐는 우리들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에 <데미안>이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수많은 '에밀 싱클레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반응형
'Library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대사] 그시절인소 왕기대 <반하다> 명대사 모음 (손발오글거림주의) (0) | 2017.07.25 |
---|---|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John Boyne (0) | 2017.07.18 |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존 보인 (0) | 2017.02.14 |
<영화 수업>, 알렉산더 맥켄드릭 (0) | 2015.10.07 |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0) | 2015.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