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존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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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존 보인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Boyne

/표지가 맘에 들었다. (영화 포스터도 괜찮던데, 영화는 멘붕이 더 심할 것 같아서 함부로 못보겠다)



결말 알고 있었는데도 충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지막 부분은 회사에서 읽었는데 진짜 한 10분은 멍 때렸던 거 같음. 머-엉, 이렇게. 와... 이렇게 해맑은 문체로 이렇게 끝날 줄이야. 그래서 훨씬 더 충격적이고 훨씬 더 여운이 오래 갔던 거 같다.


-
(내용 내내 스포 주의)

#Intro
이야기는 독일 고위급 나치 장교의 9살 아들, 브루노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전쟁이나 나치, 유대인과 아우슈비츠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나 정보가 없던 아이의 눈에 그 모든 상황과 광경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너무 덤덤하게 서술한 게, 신의 한 수다. 왜 자기네 편에는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고 같이 놀 사람도 없는데, 저 펜스 너머에는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지내는지, 온통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1
신의 한 수, 소년의 1인칭 시점
아이의 눈이 순수할수록 어른들의 비틀어진 세계가 더 강렬하게 부각된다. 이게 이 소설 신의 한 수. 전쟁에 대해서, 철조망에 대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것도 몰랐던 이토록 순수한 소년의 시점으로 바라본 독일나치와 유대인 수용소, 그리고 홀로코스트. Out-With, The Fury, 그리고 파자마를 입은 사람들. (ㅠㅠ아 최대한 덤덤하게 쓰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린아이 입장에서 그 참혹한 장면들을 보는 시선, 특히나 철조망 저쪽이 아니라 철조망 이쪽, 가해자 쪽에서 보는 시선이 너무 새롭고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던 거 같다. 


#2
어른들이 만든 두 세계의 경계, 그리고 브루노
어른들이 그어놓은 철조망, 유대인과 독일인, 그 경계 사이로 양 쪽 소년들의 우정은 약 1년 정도 유지된다. 그리고 결국 브루노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흑과 백의 판을 흔드는 하나의 말이 된다. 이사가기 전, 그동안 유일한 친구였던 쉬무엘에게 마지막 선물로 같이 모험을 떠나기로 약속한 브루노. 마지막 모험을 위해 브루노는 어른들이 구분해 둔 줄무늬 파자마로 갈아입고 어른들의 경계를 넘어 저쪽 세계로 넘어가버린다.

/브루노의 아빠를 몇 번 봤던 유대소년 쉬무엘은 어떻게 그같은 나치장교에게 이렇게 착하고 친절한 아들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쉬무엘과 브루노 사이에서 브루노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 마찰을 빚어낸다. 싸우기 싫어하는 브루노는 아빠 얘길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평화를 유지한다. 베를린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주러 온 브루노.

/이야기의 비극을 암시하듯 나오는 지문. 마지막 탐험을 떠나려 옷을 갈아입는 브루노는 가정부가 전에 자기와 누나에게 제대로 된 의상을 입도록 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You wear the right outfit and you feel like the person you're pretending to be"


/
1년 만에 철조망 없이 마주하게 된 두 소년은 서로 끌어 안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3
모든 걸 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막상 브루노는 너무나 해맑고 천진하게 극을 이끌어가는데, 소설의 다른 층위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알아버린 우리는 너무 안타깝고 어떻게 할 수 없이 얘를 맘졸이면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구도가 극 내내 형성된다. 결국 브루노가 친구 쉬무엘과 실종된 쉬무엘 아빠를 찾으러 마지막 탐험을 함께 떠나고, 우정을 확인하는 지극히 단순한 진행에도, 쉬무엘의 아빠는 이미 가스실에서 죽었을 것이고, 주인공 역시 같은 곳에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아는 우리는… 나직이 숨을 들이마시며 "제발 아 제발" 이렇게 읊조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게 그리고 일상처럼 묘사가 되는 상황이 너무 평온하고 담담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부분에서 현타를 겪게 되는 것이다. 마치 브루노의 부모가 겪었어야 할 고통을 겪는 느낌이다. 근데 그게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데, 내가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걸, 그저 맘졸이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심정. (아 정말 기빨린다)

/(가스실에서) 쉬무엘의 손을 꽉 잡는 브루노. "베를린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더 이상 내 베프가 아니야."

/"니가 네 베프야 쉬무엘, 내 인생 베프 말이야." 쉬무엘의 대답은 거대한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문을 닫은 거라고 추측하는 브루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실내는 아주 어두워지고 이어지는 아수라장에서도 브루노는 그 짧은 인생, 가장 최고의 베프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Outro
영화를 보진 않았는데, 처음 동생이 내게 이 줄거리에 대해서 얘기해 줬을 때 이미 뒷내용의 반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책을 덮고 멍을 때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역겨운 상황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덤덤하게 진행되는 내용. 그리고 소설 마지막 (본인들은 모르지만 가스실에 이미 갇힌) 두 소년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맞잡는 손. 쉬무엘에게 "너는 내 인생 최고의 베프야"라고 얘기하는 브루노의 마지막 천진함과 두 소년의 우정이 결국 가장 큰 비극으로, 가장 큰 충격으로 바뀌는 이 부분이 정말… 아, 지금 다시 쓰면서도 강도는 다르지만 여전히 충격적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무언의 압박감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일들은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들이고, 절대 그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결코." 오히려 지금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이 시대에 발붙이고 사는 나를 자꾸 부끄럽게 한다. 여전히 '이런' 시대를 사는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잘 쓰인 책이다. 


/브루노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들. 매일 저녁 브루노를 생각하며 잠에 들고 매일 아침 그를 생각하며 일어나는 나치 장교 아빠. 도대체 그 애가 어떻게 철조망을 넘어갈 생각을 했을까, 한걸음 한걸음 철조망을 따라가보는 아빠. 1년 전 브루노의 옷이 발견된 곳, 브루노가 매일매일 갔던 그 곳에 가서 앉아보는 아빠. 


/인상깊은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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