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자, 다니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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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

다니엘 김 목사님의 최신판!

철인에 이어 이기는 자? 

(신천지에서 이긴자라고 어찌고 한다는 말을 들어서

아 제목이 살짝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기는 자! 대체할만한 말이 없는 것 같다.



이기는 자

저자
다니엘 김 지음
출판사
규장 | 2014-07-2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다니엘 김 (Daniel Kim)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편이 아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풀어 설명한 부분과

팔복의 내용을 죽 연결지어 통째로 쑥 설명한 부분!

정말 탁월한 설교자라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 자체가 우리교회와 나의 깊은 페부를 

예리하게 찔러 쪼개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정도의 인사이트로 접근하는 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다니엘 김 목사님의 방식이 비슷한건가?

아니면 원래 어느 단계 이상으로 가면 이런 방식으로 가는건가?

아직 잘 모르겠다.


-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걸 할까요, 저걸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이렇게 묻고 기도하고 고민하는 그 과정을 받으시는 것일 뿐, 결과는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결과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 때문에 지금 제가 고민합니다. 주님만 안 계셨다면 단순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주님 때문에 함부로 결정을 못내리겠어요.’ 이 과정을 주님께서 받으신다. 그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복종하고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육신의 아버지도 공경하거늘 하물며 영의 아버지께 복종하며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위로를 많이 받았던 부분. 딱 내게 하는 말 같았던!)

-
‘아, 이런 이유로 저를 여기까지 아프게 하실 수밖에 없었군요. 그래서 주님이 저를 혼자 두셨군요. 그래서 주님이 사랑하는 이들을 데려가셨군요.’ 주님 안에서 나의 모든 인생을 납득하게 되면, 상처가 치유된다. 

-
이런 역사가 깊은 교회들을 보고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보수적인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보수적인 교회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참 귀하다. 너는 교리도 제대로 돼 있구나. 사람들이 너를 외골수라고 말하지만 네가 제대로 믿고 있는 거란다.’
(이것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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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도 잘하고 있고, 교리와 행위도 바르며, 끝까지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참 귀하다. 하지만 네 마음에서 심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 마음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달라졌어. 네가 고백하는 그 기도에서 나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길이 차가워졌어.’ 당신은 지금 주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이것도 내가 조심해야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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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역을 하다 보니 나도 때로는 지칠 때가 있다.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신데, 내가 나 자신을 지킨다고 생각했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내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지금 네 어깨에 히이 들어가 있구나. 네가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란다. 내가 일하는 곳에 네가 오기를 원한다. 와서 함께 일하자. 지금까지 정말 충성되게 잘 섬긴 것을 안다. 네가 강퍅해질 정도로 열심히 나를 위해 달려온 것도 알고 있단다.’ 오늘 주님 앞에서 내 마음이 강퍅해져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나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라. 
(아 맞아맞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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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뿌리가 온전한 곳에 있는가
<철인>에 게재한 간증보다도 나와 주님과의 사이는 더 깊었다. 글로 표연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진실했다. 간증하는 것이 주님과 나 사이의 추억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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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의 시작과 끝은 없다.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사역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예수님과 사는 것이 영향력으로 발휘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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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의 종이니, 나를 따르라, 나에게 굴복하라.’ 세상에서 자유케 해주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내가 세상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내가 주님의 계명을 따르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어 세상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 주님 앞에 온전히 복종하지 못하면 끝까지 내 순결을 지킬 수 없다. 다스리는 자, 이기는 자, 자신을 끝까지 순결하게 지켜내는 자로 합격될 때 주님께서 새벽 별을 허락해주신다. ‘그때까지 네 자신을 지켜내고 이겨내면 새벽 별이라고 불리는 나의 이름을 너에게도 줄 거야.’ 이는 다스리는 권세 뿐 아니라 그만한 명예도 주신다는 뜻이다. ‘끝까지 지켜낸 자, 끝까지 살아낸 자, 끝까지 순결한 자,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빛나고 있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자. 그 이름을 소유하기 위해서 끝까지 인내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심으로 그분이 영원히 빛나는 새벽 별이 되셨듯이 이기고 다스림으로 그분의 권세와 명예에 동참하는 삶을 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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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자체가 힘을 잃어서 분해가 되면 원자폭탄이 되는데 그것을 꽉 잡고 있는 어떤 힘이 있기에 폭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이시요”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정신을 붙잡고 계신 분, 내 삶을 붙잡고 계시는 분,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인 내 가정을 붙잡고 계신 분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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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는 왜 신학교에 가냐?”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것이 감사해서 무엇을 드릴까 생각해보니, 저는 드릴게 없어서 제 인생이라도 드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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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당부하시는 권면의 말씀이 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먼저 ‘굳게 잡아 끝까지 달려내라’고 권면하신다. 첫째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작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핍박 속에 있는 사람들이 드리는 초라한 예배가 우리가 드리는 화려한 예배보다 낫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려주고 계신다. ‘네가 드리는 예배가 정말 귀한 예배다. 그 본질을 놓치지 마라.’ 또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네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권면하신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나의 면류관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사실 하나님나라에서는 누가 쓰임 받느냐 하는 전쟁이 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원수에게도 빼앗기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며, 주님 앞에서 끝까지 칭찬받으며 인정받는 나와 당신이 되길 바란다. 
(우리교회 생각이 많이 났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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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심령이 가난하니까 애통할 수 있고, 애통하다가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니까 온유한 자가 된다. 그리고 온유한 자가 되니까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변화된다. 결국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단계까지 성장하는 참된 성도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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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해 마음을 찢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참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애통하는 자의 자리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 애통할 기회를 주실 때 우리는 전화기부터 든다. 내 방법으로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작정하 것은 바꾸지 않으신다. 다른 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다른 모습으로 바로 그 문제가 다시 내 삶 속에 돌아오게 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문제가 내 삶 속에 있을 때, 직면하고 돌파하여 문제를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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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애 3:27,28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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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꼐서 반드시 위로를 주신다. 그 위로를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로 설 수밖에 없다. 온유한 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제게주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만약 주님을 배반하는 날에는 제 소유를 다 거둬가주세요.’ 이것은 애통하다가 위로를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주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 가지 동일한 고백을 한다. ‘제게는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충성을 맹세하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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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내가 충성을 맹세한 그분의 불꽃같은 눈동자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오늘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 오늘 또 죄를 지었어요.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 다른 사람들이 다 저를 부정하는데 주님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자에게 주님은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해주실 것이라고 위로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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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성령님의 사역은 세 가지이다. 먼저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시며,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
성령은 순간순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비록 내가 조그마한 개척 교회에서 묵묵히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내 안에 계신 생명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며 그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혹은, 그 누구도 나를 양육해줄 수 없는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한다 할지라도 나는 독립적인 예배자로 살아낼 수 있다. 즉 독립 예배자는 대형 교회이든지 조그마한 개척 교회이든지, 많은 영적 자원이 있는 풍요로움 속이라든지 광야와 같은 선교지라든지, 형제자매와 함께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을 때라든지 홀로 남겨지는 때라든지 언제나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수 삼아 부르신 그곳에서 예배하는 자인 것이다.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신다. 왜 여호와를 바라봐야 할까? 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분의 영광을 목격하는 순간, 나는 거기에 이끌리어 주님을 추적하며 달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가들을 정말 존경하는데, 그들은 자기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추적해서 표현하기 위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긴다. 그들에게 돈은 목적이 되지 못한다. 진짜 예술가는 자기의 전 재산을 투자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소유하기 위해 달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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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전에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가 완벽한 사랑을 나누는 게 좋아서 그 기쁨의 교세권을 넓히고 싶으셨다. ‘정말 좋다. 이 기쁨의 교제권을 넓히자. 이 행복을 같이 나누자.’ 이런 마음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교제권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진짜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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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대단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니까 마귀가 나가고,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더라고요.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그것으로 기뻐하지 마.’ = ‘내일 전도할 때 마귀가 안 나가면 너는 무엇으로 기뻐할래? 내일 사람이 안 모이고 예배당을 뺏기며, 사역지가 없어지면 무엇으로 기뻐할래? 내일 성대수술해서 더는 찬양을 부르지 못하게 되면 무엇으로 기뻐할래? 현상적인 이유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네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버지께서 너를 홀로 두시지 않고 함께하신다는 사실로 기뻐해라.’ 이런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면 땅 끝까지 갈 수 있다. 그것만 준비되면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온전히 땅 끝 복음을 완성하는 사람으로 쓰임받
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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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이 능력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들이 왜 능력이 있는가? 말씀에서 희얀한 능력이 나와서가 아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기 때문이고 그 영광을 목격한 만큼 살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계속 그분을 갈망했다. 영광을 목격한 만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목격한 만큼 세상을 초월할 수 있다.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만큼 세상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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