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 월급이란 젊음을 팔아 얻는 것이다 - 도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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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016 Archive

 


배가 누웠다. 중국 내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운반선이다. 진수식까지 마치고 의장부두에 멀쩡하게 서 있던 배가 왜 쓰러진 것일까. 이야기는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거침없이 앞으로 밀고 나간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것은 ‘배가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들이다.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절차는 무시되었으며, 문제는 감춰졌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대형 사고의 내막처럼 들리는가? 천만에.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다.

 

『누운 배』의 주인공은 회사 경영기획팀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사로, 팀장을 도와 쓰러진 배의 보험 업무를 처리하며 회사의 생리에 눈뜬다. 이쯤 되면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를 법도 하지만, 그가 던져진 현실은 훨씬 더 냉혹하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짜 진실도 만들어내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일을 잘하기보단 줄을 잘 서야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인을 찾는 게 아니다.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윗선에 업무를 요청해봤자 실무를 떠안는 건 말단 직원들이다. 『누운 배』를 읽으며 강한 기시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직장인이 있기나 할까.

 

이혁진 작가는 실제로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누운 배』를 집필했다. 덕분에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포착하지 못했을 세밀한 순간들과 생생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누운 배』는 장강명 작가가 “『누운 배』보다 강렬한 소설은 없었다”는 심사평을 남길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던 작품이다. 특히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붕괴된 사회구조를 말한다는 점에서 온갖 재난사고의 형이상학이며, 그 인간관계의 세부를 말한다는 점에서는 그 무의식이다”라고 말했다.

 

『누운 배』는 회사 안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숙한 인물들과 사건들은 어느 한 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조직에나 그들이 기생한다. 파벌을 만들고, 힘겨루기를 하고, 공은 가로채고 과는 떠넘기는 일들은 뉴스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 사주가 검사에게 로비를 하는 것과 누군가의 직장 동료가 거래처에서 접대를 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붉은 띠를 머리에 매고 투쟁을 외치는 이들이나 매년 ‘협상 없는 연봉협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나, 모두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 받은 사람들이다. 소설 『누운 배』는 작은 회사 안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지만, 독자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순과 부조리의 단면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어느 조직에나 ‘누운 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 나의 기준이 짓눌린 것 같았어요

 

처음 당선 소식을 들으셨을 때,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세요?

 

 
 

잘 안 나요(웃음). 그냥 화장실에서 청소 같은 걸 하고 있다가 나와서 연락을 받았던 기억만 나고요. 책 후기에도 썼지만, 사실 그렇게 기쁘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먼저 초고를 읽었던 친구들이 정말 잘 썼다고 했을 때, 소설 같다고 했을 때 훨씬 기뻤죠.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되게 안도했어요. 그 친구들이 틀리지 않았고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했고. 기쁘긴 기뻤는데...(웃음)

 

실감이 안 나셨나요? 

 

실감도 잘 안 나고요. 사실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나요. 그리고 그 상태를 적당히 즐기려고 하고 있어요. 당선이 돼서 되게 좋은 점은 제가 다음 작품을 쓰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고, 독자가 있으니 똑바로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쓰면 되겠다’ 싶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저는 3년 동안 이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 신문 같은 데라도 한 번 실릴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쓰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선됐다는 게 정말 기분 좋은 일인데, 작가로서 활동을 하느라 글 쓸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죠. 그런데 당선 이후에 생활이 별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은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조선소를 그만두시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고요. 이유가 있을까요?

 

뭔가 어그러져 있다고 느꼈고 그게 훨씬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가치 판단이나 제가 생각하는 기준이라는 게 회사를 다니면서 엉켜있고 짓눌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글을 쓰면 그게 조금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많은 작가 분들이 말씀하시듯이,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이해를 분명히 하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제가 독서를 하는 방식은 항상 그거였어요. 책에 있는 이야기가 좋다기보다는 어떤 구절들이나 거기에 있는 통찰, 지혜라고 할 만한 것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좋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가르쳐주는 게 있었어요. 그 시점에서 ‘내가 이런 걸 분명히 해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요. 그러면 거기에 비춰서 경험한 일들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과정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을 쓸 때에도 그런 것들이 훨씬 더 강력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 바람이 있기도 하고요.

 

책의 제목을 보고 세월호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크게 그쪽으로 영향은 안 받는 것 같아요. 그와 관련해서는 황현산 선생님이 잘 짚어주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잖아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힘이 다 쏠리게 되고 그 힘으로만 조직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쳐나가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이 안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데 치중하는 식의 사고방식이 있고, 책임을 다 같이 나누어지니까 내 책임이 아닌 게 되고, 어떤 잘못도 내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 해결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이런 과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명백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운 배』는 세월호 참사와 분명 다른 이야기이지만, 배가 넘어가는 사고로 인해서 그 안에 곪아있던 문제들이 분출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죠. 얼마 전에 세월호에 400톤의 철근이 과적재되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고, 저는 그걸 전혀 모르고 썼지만, 소설 속에서 진수를 서두르느라 공사를 건너뛰는 장면들하고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구상 단계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셨나요?

 

그렇죠. 제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죠.

 

소설과 현실의 이야기가 너무 흡사해서 놀라셨을 것 같아요. 『누운 배』에서도 사건이 발생하자 외부로의 발설을 금지시키죠. “퍼트린 사람은 발본색원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요.

 

‘왜 그런 일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걸까’라고 생각을 조금 더 해봤어요. 그게 소설 전체의 주제가 되는 내용이기도 한 것 같고요. 너무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죠. 제가 있었던 곳은 중국에 있는 한국 조선소이고, 근처에 한국 조선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설비가 없었으니까, 배가 넘어졌나 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의 영해잖아요. 게다가 배에 있었던 건 고등학생들이고요.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인데다가 심지어 오보까지 나고, 이후에도 정리가 되는 걸 보면서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걸 빗대어서 뭔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이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그렇게 적용을 해서 보실 수는 있겠지만, 세월호 사건은 더 정확하게 정면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왜 ‘회사 사람’이 되었을까

 

작품 속에서 힘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라는 부분에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는 힘의 존재를 깨닫게 되죠. “그것을 경멸했지만 두려워했고 혐오했지만 동경했다”는 주인공의 고백에 공감하게 되고요.

 

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아예 꿈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유능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런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힘이 없으면 회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인정받을 방법이 없으니까 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는 거고요. 나중에는 그 힘을 동경한 건지 아니면 힘을 이용해서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지 엇갈리는 지점에 서게 되죠.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말하는 고비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의 팀장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 받으려는 인물처럼 보여요. 회사를 위해서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느라 고군분투하죠. 자기 회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힘에 경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자신 자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내려오는 과즙을 적당히 마시면서 도취할 때, 그냥 회사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되고요. 먹고 사는 일만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같아지는 지점이 되는 거죠. 그런 분기점에서 주인공은 넘어설까 말까를 굉장히 고민하고, 넘어섰지만 다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돼요. 회사 사람이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거고 복잡한 개인사가 있을 거예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전혀 없고 부양가족이 있다면 일을 하면서 그런 의식을 점점 무디게 하겠죠. 진실을 가지고 있을 때 마음이 서걱거리고 부대끼는 불편함을 어느 누가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점점 더 불편해지고 적응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자신을 포기하게 되고, 그 지점에서 일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될 때 사람은 ‘바람 풍을 바담 풍이라고 이야기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고요.

 

지금의 현실에 비춰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사람들은 원인에 관해 말했지만 사실 책임에 관해 말했다”라는 부분도 그 중 하나이고요. 우리 사회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임질 사람을 찾는 거잖아요.

그것 역시 어떤 영향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힘을 쥐고 있는 사람이 위에 있고 결국 이 모든 사람이 떨거지가 되는 거잖아요. 만약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주체적인 일원들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걸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거든요. 그게 되어 있지 않으니까 결국은 누구 하나 모가지가 날라 가거나 이렇게 마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공동체 정신을 강요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일례로, 소설 속 인물들이 ‘회사가 어려우니 당연히 짐을 나눠서 져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사심 없는 놈, 의리 없는 놈으로 취급하고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그건 기망이죠. 학대 부모가 자식을 때리면서 사랑해서 때리는 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자신들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동체 의식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힘이 충분할 때 비로소 생기는 거잖아요.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우리 눈을 가려버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도 나 혼자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니까 죄책감을 덜 느끼고요. 고질적인 문제로 누군가 퇴사해도 떠나는 사람은 소수의 개인이고 우리는 단체로 남아있으니까 저들이 잘못된 거라고 정신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렇죠.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가리는 것이기도 하죠. ‘몇몇의 사람들이 떠나가는 건데, 회사에 남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바보겠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배가본드』라는 만화에도 나오죠(웃음). 여러 사람이 있으면 공포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느 사람이 다치기 시작했을 때 누가 선뜻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게 저는 본성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그 본성이 경멸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만한 상황에 닥쳤을 때 그게 좋은 힘이 됐을 거고, 좋은 판단을 해줄 수 있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다만 지금처럼 너무 일그러지고 흐릿한 상황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우리는 여러 명이고 어쨌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있을 만큼 회사가 계속 굴러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먼저 알았다고 해서 저렇게 나가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 아닐까’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라고 쓰셨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한숨을 내쉴 직장인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걸 쓸 때는 제가 절실히 느낀 부분이기도 했고,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50~60대 분들이 왜 어디 놀러 가실 때마다 등산복만 입으실까요. 돈을 버느라 취향이라는 게 제대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가능성을 잃어 간다는 걸 자신한테 계속 이야기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걸 접할 기회도 없죠. 옛날 음악만 계속 듣게 되거나 거의 안 듣게 되고, 최신곡 순위에 있는 음악들을 듣게 되잖아요.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이런 걸 들어야 돼’ 하고 열심히 찾아가면서 들었을 텐데, 그런 과정이 없다면 애착이라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찾아나갈 수 있죠. 그런 과정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그렇다 보니 결국 가난해지는 거고, 훨씬 더 빨리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도 잘하면서 사람들한테 너그럽고, 똑똑하고 창의적이지만 그것들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자신이 젊다는 자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관리해나가려고 애쓰는 게 진짜 젊음인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야, 남들도 그렇게 살잖아, 회사 생활이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에 대해서 주인공은 의문을 갖게 되고 ‘그러면 다 그렇게 죽냐?’라고 물어보죠.

 

그 질문을 할 때 훨씬 더 명확해진다고 생각해요. 다 그렇게 산다고 할 때는 뭔가 자포자기가 되잖아요. 그냥 밀쳐두는 거고요. 그건 사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덮어버리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의 문제가 되는데,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 내 문제를 덮어두는 거잖아요. ‘다 그렇게 죽냐?’라는 말이 그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주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은 자포자기와 다르지 않다고요. ‘다 그렇게 죽냐?’는 물음에 대한 저의 대답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저는 자기 자신의 주체성과 젊음을 인지하고 어그러져 있는 공동체의식에서 자신을 분리해서 똑바로 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계속 쓰려는 이유로 “나와 독자, 또 독자와 독자 사이에 나지막한 울타리 같은 책 한 권을 놓는 것”이라고 밝히셨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보여줘야 하는가, 라는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저는 ‘이거다’라고 내놓고 싶은 게 없고, 사실은 그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작가로서 어떤 권위가 있어서 ‘이렇다’라고 했을 때, 그게 설사 올바른 거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고 믿어버리게 되잖아요. 얼마 전에 JTBC <뉴스룸>에서 ‘루쉰이 그렇게 말했어’라는 구절(『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권위는 자기반성에 대해서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만큼 내놓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대등하게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친구랑 서로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하는 게 재밌는 거잖아요. 저는 책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것도 믿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게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누운 배』를 읽은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이미 그 답을 하나 받았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더할 나위가 없었어요. 그 친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나는 비로소 내가 될 테지만 그 나는 얼마나 보잘 것 없을까’라는 문장이 마음을 쳤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의도하고 쓰지는 않았지만, 저도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제일 마음에 닿은 문구였어요.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방점을 두고 싶고요. 이런 저런 일들로 의지가 꺾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으로서 진실한 일을 하고 싶다면 그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 사람을 입체적이고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좋은 것에 자신을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거겠죠. 그렇게 따라가지 못하는 걸 반성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고요. 저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매우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되나’ 싶은 이야기들을 지금 뉴스에서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느 지점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어지거든요. 잘해나가려고 애쓰고, 그러지 못했을 때 수치스럽게 느끼고, 그런 것들이 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명한 사람이라는 건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무인도는 물과 불, 전기가 없는 곳이다. 숨어있는 냇물과 떨어지는 빗물을 오랫동안 모아야 하루 먹을 식수가 나오고, 불씨를 끈덕지게 피워 불을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냉혹한 ‘생존’의 장소다. 또한 무인도는 지독하게 혼자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기에 지나가는 벌레도 오랫동안 보게 되고, 해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발 한 짝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저자 윤승철은 대학교에 다닐 당시 스스로 후원금을 모아 사막 마라톤에 나갔다. 어렸을때 크게 다친 경험과 선천적 평발인 신체적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최연소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실크로드 3대 간선을 횡단, 히말라야 등반 등 여행으로만 따지면 화려한 ‘스펙’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여행한 곳은 정복하고 자랑할 만한 지역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외지고 초라한 무인도였다.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라는 질문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걸 보여주듯이, 윤승철이 들려주는 무인도에서의 생활은 우리가 누구고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지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오랜 여행 끝에 휴식, 무인도

 

무인도에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여행을 다녀도 장소만 바뀔 뿐이지 생기는 일은 똑같더라고요. 해외로 나가도 연락은 계속 오고, 어느 나라를 가든 사람과 엮이게 되고요. 결정적이었던 건 친구 동생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다가 무인도를 보게 됐어요. 게임 안에서 무인도에 들어갔던 기분으로 혼자 떨어져 있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실제로 무인도를 찾아가게 됐어요.

 

여행을 많이 하셨잖아요. 부루마블로 치자면 말판의 여러 바퀴를 돈 셈이겠네요.

 

말이 같은 판 안에서 계속 돌잖아요.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했고, 게임 안에서 건물이랑 빌딩을 열심히 올리다보면 어느순간 무인도에 들어가고 싶어지죠. 저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온전한 리셋 같은 걸 찾았던 것 같아요.

 

생각했던 만큼 완전한 고립이었나요?

 

처음 생각했던 무인도는 야자수에 해변도 있고, 물 맑고, 코코넛이 주렁주렁 열리고 고기도 잡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사실 크게 실망했어요. 우리나라 무인도는 뻘물에, 해변은 자갈이고 쓰레기는 떠다니고, 지형도 평탄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산이거든요. 게다가 너무 춥고 밤이 되어서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꺾었는데 해경에게 붙잡혔어요.

 

해경이요?

 

쪼그려 앉아서 불을 피우는데 해경 배가 깜박깜박하고 오더니 마치 연극 주인공처럼 라이트를 비추는 거예요. 나무를 꺾으면 산림법 위반이래요. 섬에 들어가는 것도 주인이 있는 섬이거나 해양공원에 묶여있다거나 해서 무단 침입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해경 배를 타고 나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무인도는 정말 없을까 해서 외국 섬도 검색하기 시작했죠.

 

해외 섬은 상상했던 대로였나요?

 

아무리 찾아도 모든 게 갖춰진 무인도는 없더라고요. 어떤 섬에 민물이 나온다면, 다른 섬에는 물은 없지만 바나나 나무가 있는 식으로요. 현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모든 게 다 갖춰지면 왜 무인도냐.” 하시더라고요. 무인도라는 게 사람이 안 사는 곳인데, 모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 산다기보다 못 사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삶과 죽음 사이

 

여행할 섬은 어떻게 찾으신 건지 궁금해요.

 

필리핀 해적 섬은 현지에 연락을 하다 한인회 한국분에게 연락이 닿았고, 미크로네시아의 온낭 섬은 이병률 작가님이 전에 미크로네시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거기 있는 해양 연구원과 연결해 같이 갔어요. 뉴칼레도니아 무인도는 섬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무인도를 가고 싶은데 소개를 해줄 수 있냐고 메일을 스무 번 정도 주고받았어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인도로 가는 정기 배편이 없으니까 현지 마을에서 선장과 만나서 언제 데리러 와달라 약속을 했어요. 실제로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약속한 날짜에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이 많았어요. 연락이 된다면 날씨가 좋아지고 오라고 하면 될 텐데, 연락을 못 하니까. 그분도 약속한 날에 안 가면 저희가 더 혼란스럽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해서 애써 제시간에 와 주셨어요.

 

사냥 이야기도 나오는데, 도시에 살면 그런 감각은 잘 못 느끼잖아요.

 

이제까지 닭 내장을 갈라본 적도 없었는데, 새를 잡았을 때 본능적으로 하긴 했어요. 오늘 먹을 걸 내가 잡았고 하루를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기뻤고,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 고마움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무감각해지더라고요. 새를 잡아서 목을 치고, 깃털을 다 뽑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닷가에 그걸 다 버렸는데, 아침이 되니까 사체가 아직 바닷가를 둥둥 떠다니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인도에 혼자 있으면 생과 죽음을 많이 보시게 될 것 같아요.

 

한번은 거북이가 알을 낳으러 온 걸 봤어요. 어떻게 알고 찾는지 산에서 도마뱀들이 내려와서 해변의 땅을 파서 알을 깨 먹고 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반쯤 먹었을 때 개입해서 도마뱀을 쫓아냈어요. 나중에 거북이들이 태어나서 바닷물로 헤엄쳐 간 것까지 봤는데, 그다음 날 알을 낳았던 큰 거북이가 떠내려와 죽은 거예요. 제가 한 행동이 자연의 섭리에 맞는 거였나, 그냥 두고만 봐야 했었나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여기서 무수히 많은 생명을 잡아먹고 있는 거죠.

 

‘바닷물의 짠맛은 포식자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생명체들의 몸부림 속에서 나왔을 것’(54쪽)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 번은 바다에 새들이 엄청 몰려있어서 가 봤더니 생선들이 죽어서 출렁이더라고요. 한쪽 면만 뒤집혀서 새들한테 먹히고 있었는데, 배가 가까이 가니까 새들은 도망가고 생선만 남은 적이 있어요. 나만의 목적과 내가 좋은 것을 위해 그 무수한 생명체의 삶에 관여해야 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계기였습니다.

 

환경 오염에 대해서도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가면 모르는 언어가 쓰인 쓰레기도 있고, 말도 안 되게 오래된 비닐, 어떻게 이게 떠내려왔나 싶은 자전거 휠, 통에 담긴 채로 떠다니는 화학약품들, 심지어 냉장고도 떠내려온 걸 봤어요. 마음속에 그리던 섬은 깨끗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섬이었지만, 현실은 그게 우리나라 섬인 거잖아요. 그런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섬청년 탐사대’를 통해 쓰레기를 줍고 있어요.

 

거둬들인 쓰레기로 사진을 찍기도 하셨어요.

 

왜 이 섬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오히려 쓰레기 때문에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신발이 참 많아요. 꼭 한짝씩 떠내려와요. 우리나라 섬은 낚시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무를 베거나 불을 피우거나 하는 행동에 제약이 있으니까 해외 섬에서처럼 생존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일 일이 없거든요. 심심하고 재미없을 때 쓰레기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생존과 여행 사이

 

서바이벌을 주제로 하는 TV프로그램도 많고, 직접 체험하고 싶어서 오지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무인도에서 여행을 하겠다는 마음과, 생존을 위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보겠다는 두 가지 길이 있을 텐데요.

 

처음에는 저도 서바이벌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칼 한 자루, 냄비 하나 가져가서 불도 직접 피우고 먹을 것도 직접 잡으면서요. 그렇게 3주를 살아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 갈 때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한 걸 가지고 들어갔어요. 생존은 이미 TV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고, 더 이상 생존에 무게를 두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 못 읽었던 책, 먹고 싶은 음식과 함께 나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보자 하고 그 이후에는 다른 식으로 여행했어요. 처음에는 생존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여행으로 바뀐 느낌이었어요.

 

무인도에서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계속해야 하는 일이라고 쓰셨습니다.

 

무인도 가서 생존하려면 너무 바빠요. 아침에 눈을 뜨면 뭘 잡으러 가야 돼요. 쉽게 잡히는 게 아니라 한참을 헤매다 잡으면 불도 피워야 하죠. 지금은 대나무로 30,40분이면 피우는데 처음에는 일곱 시간 걸렸어요(웃음). 불 피우고 잡아온 걸 구워 먹으면 또 점심시간이에요. 그럼 또 사냥을 가고 장작을 모으고 집을 지으면 금방 해가 져요. 어느 순간부터는 날씨가 안 좋아서 파도가 치면 고기를 못 잡으니까 그런 날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생선을 잡아서 말려 놓는다거나 하는 일을 하는거죠.

 

국내 섬에서는 무슨 생각이 드셨어요?

 

처음에는 불안해요. 이 섬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배는 잘 올까,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렇게도 살수 있구나 싶어요. 평소에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걸 다 접고 오로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구나 느꼈어요. 무인도 갔다 와서 카톡을 지웠어요. 그래도 살게 되더라고요. 걱정을 하다보면 끝이 없지만 무인도에 오는 순간 다 적응해요. 내 능력으로 생존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거구나, 마치 이사하는 것처럼 새로운 환경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사막 마라톤을 하려고 스스로 후원 페이지를 열고 여행 경비를 모으시기도 했어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군대를 갓 전역한 때여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전역하면 수업 맨 앞에 앉아서 A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복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요. 신문에 보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나오잖아요. 도전, 열정, 패기, 청춘 같은 것들. 그래서 인재상에 맞게 열정적으로 후원 요청을 서른 군데 넘게 써서 보냈더니 답변 못 받고, 거절당하고 그랬어요. 강남역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마라톤 완주의 꿈이 있는데 제 꿈의 가격을 정해달라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요.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하겠어요. 어떻게 그랬나 싶어요.

여러 행사에서 멘토로 불리는 경우도 많아요. 강의 자리에서 주로 하는 말이 있다면요.

 

자기도 모르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런 게 가능해?’라고 스스로 물어보면서도, 어찌어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현실에 부합하면서, 타협하면서 살지만 정말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걸 마주치면 시작은 한 번 해보라고 말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시작마저 막는 게 여전히 불안함 같아요.

 

불안함은 누구나 있는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다시 가면 그대로 한의원 열고 지내면 되니까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아니래요, 한 번 문을 닫으면 단골들이 다 발을 끊고, 여행을 다녀 오면 한달에 오십 만원도 채 못 벌었대요. 그분도 손해보다는 여행이 주는 의미와 가치가 더 컸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또래 분들은 한창 구직하거나 취직해서 자리를 잡을 텐데, 다른 길을 걷는다는 불안함은 없었나요?

 

처지는 비슷해요. 사람들은 제가 하고 싶은걸 하고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저도 제가 제일 불안해요. 다음달에 영어학원에 등록할 거예요.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대학원에 가려면 영어 성적이 있어야 된대요.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지만 그게 정말 평생 지속될 정도의 안정감과 열정을 줄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는 거죠. 누구나 그런 순간은 많은 것 같아요.

 

대학원은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지금은 고고학을 하고 싶은데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섬에서 생각한 건데, 제가 계속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그 전문성이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 하는 지속성을 주는 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나름 준비하려고 다음달에 영어학원도 끊고요.(웃음) 제 강연을 들었던 친구가 영어 학원에서 저를 만나면 웃기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상하거나 웃기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필요한 게 영어면 학원에 갈 수도 있죠.

 

주변에서 말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네, 이병률 작가님이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스스로 얽어매려고 하냐’며 적극 말리셨어요. 고고학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저랑은 안 맞을 것 같다고요.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여전히 고민중이에요. 바뀔수도 있는 거겠죠.

 

마음과 생각을 버리는 시간

 

사막을 횡단할 때, 버리는 삶을 말하신 적이 있어요.

 

실제로 물리적인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 책, 엠피쓰리, 카메라 다 들고 가는데 하루도 안 지나서 너무 무거운 거예요.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음식과 물건을 다 버렸죠. 정신적으로는 사막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히 결론을 내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갔더니 진짜 아무 생각도 안들고, 아무 생각 안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비유하자면 뇌가 정지 상태였다가 골인 지점부터 심폐소생술로 새로 태어난 느낌이 좋았어요. 그것 때문에 무인도도 갔던 것 같아요.

 

엄홍길 대장과 히말라야 등반도 하셨죠. 엄홍길 대장님은 어떠셨나요?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어요. 정말 대장이라는 호칭답게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었고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처음 산을 갔지만 같이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병률 작가님과 손미나 작가님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이병률 작가님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처음 만났어요. 한달 반 가까이를 같은 기차, 같은 칸, 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죠. 손미나 작가님은 친해져서 지금은 누나라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 골든벨에 나가서 처음 뵈었어요. 그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져서 사막마라톤 펀딩할 때도 선뜻 도와주고 싶다고 추천의 말도 써 주시고, 손미나앤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 때 같이 했으면 좋겠다 해서 같은 회사에서 일년정도 일을 했어요.

 

이병률 작가님하고 같이 간 무인도 이야기도 나옵니다.

 

같이 무인도에 들어가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어쨌든 생존을 하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제가 다 해야 할줄 알았어요. 예상 밖으로 글하고는 안 어울리게 터프한 모습을 많이 봤어요. 새가 가까이 오면 잡아서 칼질하고 내장 빼내고, 숯검댕을 온 얼굴에 묻히면서 먹고요(웃음).

 

 

 

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

 

탐험문학이라는 분야를 만들고 싶다고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책을 구분하는 카테고리가 있잖아요. 이탈리아를 가고 싶으면 가이드북은 여행 카테고리에, 문학에는 에세이가, 지도는 지도 코너에 나뉘어 있는데, 어딘가 가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분야를 총망라한 코너나 테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여행의 기록을 일기처럼도 적어보고, 가이드북처럼 정보도 정리해 보면서 그걸 위해 연습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창업이나 공연 기획 등 다른 분야도 관심이 많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좋아하는 것들, 하고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작년에는 친구랑 셰어 하우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신문사를 들어가 볼까, 싶었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해도 이런 종류의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창업을 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느꼈고요. 글은 계속 좋아하는 걸로 남겨두고 현실적으로 먹고 살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단계예요.

 

 ‘이카루스 무인도 탐험대’와 ‘섬청년탐사대’에서도 활동하고 계세요.

 

섬을 다녀 보니 섬마다 특별해서 관광자원화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섬을 다니면서 일종의 가이드북이나 정보지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간 김에 쓰레기를 같이 주으면서 섬에 사는 분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한달에 한번, 같이 무인도를 가는 프로그램을 만든 게 ‘섬청년탐사대’예요. 재능기부를 하고 쓰레기를 줍는 일에 자기 돈 내고 하는 건데 신기하게도 많이 찾아오세요.

 

사람들이 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요?

 

자꾸 비교해서 그런 것 같아요. 섬에 있으면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이 최소한의 충족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도시는 너무 화려하잖아요. 멋있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멋있어지고 싶다고 은연중에 비교를 계속 하는 사회인 것 같아요. 끝이 없고, 지칠 수밖에 없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묻고 답변을 생각할 여유가 없고요. 그래서 그 답을 무인도에서 내려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뻔한 질문이지만 책 제목도 그렇고 물어봐야 할 것 같네요.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를 꼽아주시겠어요?

 

세 가지까지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굳이 꼽자면 책과 종이. 왜냐하면 불은 하다보면 피울수 있으니 성냥이나 라이터는 필요 없고, 칼이 있으면 좋지만 돌을 깎아서 뾰족한 부분으로도 충분히 칼로 쓸 수 있고요. 책도 읽다 보면 지겹고. 오히려 무인도에서는 생각이 무한히 넓어져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종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윤승철 저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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