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입문서 기본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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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새ㅐㅇ명공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사 입문서로서 미술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처럼 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입문서이고 비전문적인 문체를 사용했으며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꼼꼼히 완독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다. 미술사를 보듬는 저자의 애정 어린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미술사를 둘러싼 배경적인 지식에 집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오늘의 감상자들로 하여금 명작들이 제작되었을 당시의 상황, 현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유구한 서양미술사를 설명하려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감상자로서 당시의 미술가들이 왜 그와 같은 작업을 했어야 했는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차 례 당시 미술가들의 작업장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체험은 아닐 것이다. 

 

  그의 미술사가 서양,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한계점을 인정하더라도 고대부터 근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유럽미술이 이룩한 찬란한 예술적 성취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 미술사에 대해서 자세하고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와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미술사는 ‘지금’이라는 시점에서도 계속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일 수도 있다.
 
<요약>
  책의 서론에서 저자는 ‘미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미술 감상자들이 개인적인 습관이나 편견을 버리고 예술가들의 제작의도에 관심을 갖고 작품 앞에 설 것을 권유하고 있다. 제작자나 감상자가 서로 다양하게 공유하고 있는 경험들에 대하여 서술하면서 미술이 무엇인지 설명해내고 있다.
  이 책은 총 2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미술사를 다루는 책들이 그러하듯 선사시대의 원시부족의 미술에서 출발하고 있다.
 
1. 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시대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미술을 했으며 미술과 마술은 서로 연관되어있고, 미술이 주술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장식적인 방법으로 신화의 인물상과 토템을 표현하는 체계를 발전시켜왔으나 장식자체가 미술의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술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2.영원을 위한 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피라미드와 미이라를 통해본 이집트 미술은 그들의 내세관이나 권력자들의 힘을 알 수 있게 하며 기하학적인 규칙성과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결합되어 있다. 이 시기의 미술은 감상하기 위한 미술이 아니라 표현대상이 영원히 살아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아름다움이 아닌 완전함을 지향하고 있으며 엄격한 규칙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사물은 가작 특징적인 각도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관념적 표현은 3000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미술 역시 왕의 전승을 기념하는 조형물에서 형상의 힘에 관한 그들의 믿음을 엿보게 하며 인간의 영속적인 삶을 위해 미술이 기능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3.자유를 향한 위대한 각성-기원전 7세기-5세기까지의 그리스
  신화의 땅 그리스의 미술은 석조신전의 건축양식, 사실감을 반영하고 있는 인체조각상, 원근감이 나타나고, 도자회화에서는 이미 단축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신들에 관한 전통과 전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편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과학과 철학 등에도 눈을 뜨게 되었고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리스 미술이 차갑고 무미건조하고 생기가 없다는 편견은 모조품들에 의한 것이고, 그리스 미술은 장엄하고 고요하며 힘이 느껴지는 조각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도리아 양식의 파르테논 신전(by 페리클레스)과 그 안의 현실감 넘치는 대리석 부조들이 그리스 미술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다.
 
4.아름다움의 세계-기원전 4세기-서기1세기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균형 잡히고 살아있는 듯한 조각은 육체표현에 있어서 이상화된 완벽함을 지향하고 있으며 주술적이고 종교적 연관성은 거의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시기에 이르러서 그리스 미술이 범세계적인 조형언어로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건축에 있어서는 이오니아식(날렵하고 가냘픈 느낌)의 소용돌이에 잎사귀 모양을 첨가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인 코린트 양식(Corinth)이 발전하게 되었고, 폼페이 벽화는 당시에 미술이 일상에 얼마나 깊고 높은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고, 헬레니즘의 진정한 승리를 증명하고 있으나 아직 완벽한 자연의 재현에 미치지는 못하였다.
 
5. 세계의 정복자들-서기 1세기- 4세기: 로마, 불교, 유태교 및 기독교 미술 
  로마가 대 제국을 건설하게 되자 토목공학의 괄목할만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개선문과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건물에는 그리스양식과 로마식 구조(아치와 궁륭천장)가 혼재되어 있다. 또한 실물을 닮은 초상화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미술의 주제도 현실을 반영하여 위대한 영웅이야기를 즐겨 표현하게 된다. 그리스 로마미술은 세계 각지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인도의 조각에도 헬레니즘 영향이 나타나고 이집트 무덤에도 초상화를 매장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으며 유태교회당의 벽면에도 그리스 미술의 전통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고대 헬레니즘시대의 묘기에 만족하지 않고 명확하고 단순한 성경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6. 기로에 선 미술-5세기- 13세기: 로마와 비잔티움
  311년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국교화는 많은 예배자들을 위한 바실리카(Basilica)를 발달시킨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칙령을 내려 교회에서 조상의 우상화를 막기 위해서 조상을 금지했고, 그림도 명확 단순하게 본질적인 요소만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미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는 도구여야 한다고 강요하였다. 이런 동로마 교회의 성상파괴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종교 미술은 쇠퇴하게 되고 비잔틴 교회는 성상을 그리는 화가에게 엄격한 규칙을 정하고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 시기에 모자이크화가 발전하게 된 것도 이런 시대적 상황의 반영일 것이다.
 
7. 동방의 미술- 2세기-13세기: 이슬람과 중국
  이슬람도 기독교보다 더욱 형상에 엄격했으므로 이슬람의 예술가들은 현실세계의 사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선과 색채를 활용한 환상의 세계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는데, 각종 문양이나 아라베스크 같은 장식들이 발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과거의 황금시절의 위대함을 상기시켜주는 수단으로 미술이 사용되었으며 명상의 실천을 위한 도구로서 곡선적이고 운필의 숙련으로 이루어지는 미술이 발전하게 되었으나 미술이 공식화되고 반복적이며 획일화되어가는 부정적인 현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8. 혼돈기의 서양미술-6세기-11세기: 유럽
  500년에서 1000년을 미술사에서 암흑의 시기로 분류하는데 이는 분명하고 통일적인 양식이 생겨나지 않았으며 수많은 서로 다른 양식들이 갈등을 일으켜 혼돈된 상태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야만족(고트, 반달, 색슨, 바이킹족)의 침략으로 더욱 고대미술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반면 이들 야만족들은 공예적인 탁월한 솜씨를 지니고 있어서 필사본 삽화들에 있어서 기묘함은 이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9.전투적인 교회-12세기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정복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뿌리내리게 되었는데 육중한 각주가 받쳐주는 둥근 아치들이 중후한 힘을 느끼게 하고 장식성을 배제됐으며 견고하고 잇달은 벽과 탑, 궁륭을 지탱하기 위한 높고 무거운 벽과 기둥이 특징적인 건축양식이었다. 12세기는 십자군운동으로 인해 비잔틴 미술과의 접촉이 늘어나게 되고 동방교회의 장엄하고 성스러운 성상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미술가들은 자연계를 모방하지 않는데서 얻는 자유를 토대로 초자연적인 세계의 관념을 전달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었다.
 
10. 교회의 승리-13세기
  이 시기에 출현한 고딕양식은 궁륭을 지탱하는 육중한 벽과 기둥을 없애고 창문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건축기술(버팀목이 필요했음: 공중부벽)을 발전시켜 유리와 스텐드글래스가 발달하게 되었고 건물은 마치 천상의 환상적인 세계를 느끼게 하는 초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고딕의 예술가들은 조각에 있어서 고대의 공식들을 이해하고 되살리려고 하였으며 실감나는 표현을 위해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지오토(Giotto)의 출현은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굵은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지오토는 비잔틴과 북유럽 대성당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 틀을 깨고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고 단축법을 구사하는 등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펼쳐 보인 화가였다.
 
11. 귀족과 시민-14세기
  13세기가 거대한 대성당의 시기였고 성당이 미술의 구심점이 되었으나 점점 도시가 발달하면서 시민들이 봉건영주의 권력으로부터 이탈되기 시작했으며 귀족들은 장원에서 격리되어 살기보다는 안락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미술에 있어서도 장대한 것보다는 세련된 것을 추구하여 고딕의 장엄한 외관에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게 되고 성당뿐만 아니라 관공서, 대학 등의 많은 건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장식물들은 귀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우아하고 섬세한 세부묘사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나의 화가들은 비잔틴 고딕이라는 북유럽적인 전통에 지오토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공간감과 오행감이 드러나는 화면을 구사하였고 자연을 주제로 실물과 유사한 묘사를 많이 했으며 진정한 의미의 초상화도 발달하게 되었다. 화가들은 고대의 공식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얻은 지식을 종교미술에 적용시켜나가기 시작하였으며 시각의 법칙을 개척했고 인체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탐구하기 시작함으로써 중세의 미술의 종말을 앞당겼다. 한편, 14세기 말에 국가간 상호 교류를 통해 형성된 양식을 ‘국제적 양식’이라고 한다. 
 
12. 현실성의 정복-15세기 초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일찍이 회화에 있어서 지오토가 댕긴 불이었다. 르네상스는 고트, 반달족에 의해 붕괴되기 이전의 위대했던 로마를 부흥시키자는 운동이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고전적 건축물들을 연구하고 이를 응용하여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만들었으며 원근법의 창시자로도 알려져있다. 마사치오의 벽화도 완벽한 환영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으며, 도나텔로는 생명감과 활력이 넘치는 실제적인 조각 작품을 제작하였다. 북유럽의 클라우스 슬뤼테르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제작하였고 얀 반 아이크의 사실적이고 치밀한 최초의 유화작품들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3.전통과 혁신1-15세기 후반: 이탈리아
  중세 말기에 이르러 시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도시가 발전되고  Guild가 형성되었으며 타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역마다 회화유파가 생겨났다. 건축가 알베르티는 고전적인 형식과 재래식 건물의 절충을 시도했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고딕전통과 근대적 형식 사이의 절충은 15세기 중엽의 많은 대가들의 특징이 되었다. 조각가 로렌쪼 기베르티, 화가 프라 안젤리코, 파올로 웃첼로, 만테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보티첼리 등이 이 시기를 장식했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단축법이나 원근법, 오행감등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했으며 정확한 소묘, 빛의 효과 등에 주목하였다.
 
14. 전통과 혁신2-15세기 북유럽
  영국에서는 알프스 이남의 이탈리아와 달리 아직 중세미술가들로서 고딕전통에 충실하고 있었다. 건축에 있어서도 곡선과 아치보다 직선을 더 자주 사용하는 이른 바 ‘수직양식’이 일반적이었다. 베노초 고촐리, 장푸케, 로지에르 반 데르 웨이든 같은 북유럽의 미술가들은 미술의 새로운 요구와 미술이 오랫동안 복무해온 종교적인 목적을 융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목판화와 동판화가 등장하여 회화의 대량복제가 이루어졌으며 전 유럽에 르네상스 미술이 활성화 되는데 기여했다.
 
15.조화의 달성-16세기 초: 토스카나와 로마
  16세기는 르네상스가 가장 찬란했던 시대이며 수많은 거장의 세기라 할 수 있다. 회화사에서 너무도 위대한 다빈치, 미켈란 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를 비롯, 코레조, 조르죠네, 뒤러, 홀바인 등이 활약했고 건축가 브라만테는 건축에 있어서 그리스 고전기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다. 화가들은 대가들의 공방에서 도제식으로 양성되었으며 미술을 위해 수학이나 해부학에도 열정적인 관심을 가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확하게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최후의 만찬은 사실성과 종교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천재성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였으며 르브루의 대표적인 작품 모나리자는 신비한 미소와 더불어 여기에 사용된 스푸마토 기법은 인물묘사에 있어서 사실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켈란젤로는 시체를 해부하거나 인체모델을 직접 소묘하면서 인체의 구조를 탐구하였으며 이를 그의 예술에 적용시켰다. 교황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제작된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는 그의 천재성을 의심할 수 없게 했다. 라파엘로는 성모상의 전형을 확립했고 요정 갈라테아에서 보듯 동적 화면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구성하는 탁월함을 선보였다.
 
16. 빛과 색채-16세기 초 베네치아 북부 이탈리아
  피렌체와는 달리 베네치아미술가(조반니 벨리니,조르죠네,티치아노,코레지오,베로네제 등)들은 색채와 빛을 이용하여 화면전체의 통일성을 부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빛에 의한 강렬한 명암법을 구사한 베네치아의 전통을 인상주의에 연결시키기도 한다.
 
17. 새로운 지식의 확산-16세기 초 독일과 네덜란드
  북유럽에서도 이탈리아가 이룩한 예술적 성취들에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뒤러는 끈기 있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고 많은 목판화와 동판화를 남겼다. 그뤼네발트는 미술로서 종교적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여 미술적 아름다움이나 형태에 그다지 유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며, 알트 도르퍼는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풍경만으로도 미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꺠닫게 해주었다.
  이 시기의 네덜란드는 15세기만큼 대가들이 출현하지는 않았으나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지옥도를 통해서 중세인의 공포심을 실감나게 묘사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18. 미술의 위기-16세기 후반: 유럽
  이 시기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선배 대가들의 작품을 단순히 모방하려는 행태가 만연했으나 그러면서도 독창적이고 흥미를 끄는 비범한 것을 만들려는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파르미자니노는 인체비례를 무시하고 마돈나의 목을 길게 그렸고 틴토레토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빛과 어둠, 원경과 근경, 조화가 결여된 몸짓과 동작을 통해서 기묘한 느낌을 자아내고자 했다. 특히 엘그레코는 자연적인 형태와 색채를 무시하고 감동적이고 극단적인 환상을 창조하는데 성공하였다. 곰브리치는 메너리즘의 시기의 미술가들을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라고 보았다. 사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자 했고 과거의 전설과 신화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북유럽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 조각이나 그림을 두는 것을 금지하여 화가들의 수입원이 차단되고 예술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교회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초상화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홀바인은 독일출신 영국의 궁정화가로서 세부묘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인습적인 아름다움을 다소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교회가 반대하지 않을 만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브뢰헬의 풍속화가 대표적이다.
 
19. 발전하는 시각세계-17세기 전반: 가톨릭교회의 유럽
  가톨릭 국가들을 중심으로 바로크시대가 열렸다. 건축가 자코모 델타 포르타는 호화롭고 다채롭고 장엄하게 보이도록 건물을 설계했으며, 회화는 고전적인 신화를 그림의 주제로 부활시키고 신앙교육을 위해 제단화를 구성하는데 힘썼던 ‘카라치 화파’와 인물들을 보다 진실되고 실감나게 표현하려고 했던 ‘카라바조 화파’가 활약하였다.
  귀도레니는 현실보다 더욱 완벽한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하였고, 푸생은 고대 조각상들을 연구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고대도시들에 대한 주제를 환기시켰으며 클로드 로랭은 자연의 사실적인 표현에 집착하였다. 특히 루벤스는 사물의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고 더 많은 움직임과 빛, 공간감, 더 많은 인물로 화면을 구성하였는데 그의 미술은 궁전의 사치와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고 미화하는데 적합했을 것이다. 루벤스의 제자 반 다이크는 귀족적인 품위와 신사적인 유유자적한 태도의 이상을 그림 속에 구체화 하였고,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즈는 자연주의 방침을 흡수하여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을 냉정하게 관찰하였는데 그의 역작 라스 메니나스의 위대함에 대해서 곰브리치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20. 자연의 거울-17세기 네덜란드
  17세기 신교국가 네덜란드는 호사스러운 허식을 배격하였고 바로크 양식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교사회에서 초상화나 풍경화, 정물화는 종교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왔으므로 프란스 할스 같은 화가는 생동감 넘치는 스냅사진과 같은 초상화를 구사하였으며, 블리헤르나 얀 반 호이엔과 같은 풍경화가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화들을 남겼다. 특히 렘브란트의 초상화는 빛을 처리하는 탁월한 솜씨와 함께 인물의 깊숙한 내면을 느끼게 해준다. 베르메르의 회화도 질감과 색감 형태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매우 전문화된 영역이었다.
 
21. 권력과 영광의 예술1-17세기 후반-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교회들은 흥겹게 보이려고 눈부신 장식을 하였고 화려함과 운동감이 가득하고 빛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환영을 구현하고 있었다. 베르니니의 조각, 보로미니의 산타 아그네스 성당,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의 천정화,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가 이 시기 미술의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다.
 
22. 권력과 영광의 예술2-17세기 말-18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루이 14세는 왕권의 화려함과 영화를 과시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가 건설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다뉴브강변의 ‘멜크 수도원’은 천국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앙투안 바토의 회화는 이미 로코코 취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로코코라 함은 바로크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들뜬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의 유행을 일컫는다.
 
23.야성의 시대-18세기 영국과 프랑스
  18세기 가톨릭 국가에서 바로크 양식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으나 청교도적인 전통이 강한 영국은 고전 건축의 엄격한 규칙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교회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의 미술발전이 더뎠고 주로 외국의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다. 미술이론가이기도 한 레이놀즈 경은 보통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게인즈버러는 영국의 미술은 신처럼 군림하는 통치자들의 권력과 영광을 과시하는데 덜 이용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서민생활의 평온한 광경을 그렸던 샤르뎅을 비롯 조각가 장 앙투안 우동, 프라고나르가 활약하였다.
 
24. 전통의 단절-18세기 말-19세기 초:영국, 미국, 프랑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미술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자극하였다. 미술가들은 양식의 변화를 의식하였고,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이 성행하였다. 18세기에는 아카데미에서 미술교육이 이루어졌으며 회원작품전도 갖는 등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도 화가 스스로 자유롭게 새로운 주제를 탐색하게 되었다. 다비드는 혁명정부의 공식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이면서도 왕실의 허영과 추악함을 드러내는 그림들과 기괴한 주제의 에퀴틴트를 남김으로써 개인적 환상의 세계에까지 주제를 확장시키는 공헌을 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터너와 컨스터블이 풍경화가로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25.끝없는 변혁-19세기
  산업혁명에 의해 장인기술이 무너지고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도시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도시에는 잡다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가득차게 되었으며, 화가는 전통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선택권을 더욱 넓혀갔으며 기존의 인습을 비판적으로 대담하게 검토하고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창조했다.
  보수파의 중심인 앵그르, 혁명가 들라크로아, 코로, 비르비죵파의 화가들, 라파엘 전파, 사실주의자 쿠르베 등이 이 시기에 제각기 자신들의 찬란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무엇보다도 인상주의자들의 새로운 시도는 온 유럽을 경멸과 열광으로 들끓게 했다.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을 태동시킨 조력자는 사진술의 발전과 일본 채색 목판화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26. 새로운 규범을 찾아서- 19세기 후반
  건축에 있어서 빅토르 오르타는 손으로 만든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르누보(Art Nouveau)운동을 촉발시켰다. 회화에 있어서는 세잔과 고흐, 고갱이라는 걸출한 화가들이 20세기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계보를 형성하는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다. 우선 세잔은 인상파의 감각적인 것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견고한 화면을 구축하려고 했으며 이 과정에서 색채와 형태들을 무시하는 실험을 감행했는데 훗날 입체파를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흐는 묘사보다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표현주의 미술의 동력을 제공하였고 고갱은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표현함으로써 포비즘에 영향을 주었다.
 
27. 실험적 미술-20세기 전반기
  20세기의 바우하우스는 건축에 있어서 실용성을 추구하여 장식들을 제거하였고, 고흐의 경우에서 보듯 표현주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유의 색채나 형태를 기꺼이 희생하였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을 개척하는 선구자가 되었고, 피카소, 클레, 파이닝어 등은 입체주의를, 마티스 같은 이는 야수파를, 기리코, 마그리트, 자코메티, 브랑쿠시, 달리 등은 초현실주의를 이끌거나 꽃피웠다. 이 밖에도 몬드리안, 칼더, 헨리무어, 루소, 샤갈 등이 20세기 미술의 실험에 동참하고 있었다.
 
28. 끝이 없는 이야기-모더니즘의 승리
  이 책의 마지막 장은 1950년 초판 후에 수 십 년이 지난 후에 덧붙여졌다. 이 장에서 곰브리치는 미술비평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모더니즘이 왜 근대이후의 미술사에서 승리를 거둘 수밖에 없었는지 요인분석을 통해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모더니즘 이후의 또 다른 추세 변화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재진행형의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감상자나 평론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현재의 미술흐름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결국 다시 오래된 과거 미술사가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서술로 끝을 맺고 있다.
 
<에필로그>
  모든 예술은 그 속에 동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과학 기술적 배경을 토대로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이 녹아서 성립되었다 할 수 있다. 이 책은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은 그러한 배경들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술사를 읽는 것은 결국 나를 읽는 것이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의미는 올바른 과거인식을 통해서 현재 내가 서 있는 좌표를 인식하고, 이 좌표의 종과 행으로 연결되어있는 수많은 역사적 지점들을 인식하는 것이며, 나아가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그렸고 그려야 할 작품들이 좌표를 상실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를 지닐 수 없다면 그저 부유하며 떠도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충분하고도 질 높은 ‘도판’에서 찾을 수 있겠다. 가장 최근에 인쇄된 증보판의 도판들은 원작의 색감과 밀도를 매우 충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도판이 전하는 명작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을 때가 잦았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연표와 지도 등은 긴 미술사를 조감하는데 매우 긴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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