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물 수출 조건과 실상 ①]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시작과 성장(2003년~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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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수출 조건과 실상 ①]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시작과 성장
(2003년~2016년)

 

 

신서희(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21. 2.

 

 

 

저작권 중개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2009년 겨울은 한국 책들의 수출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다. 수출을 전담하는 에이전트의 수가 점점 늘어나 에이전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고, 당시 초보 에이전트이자 영미 유럽 책의 수입을 담당하던 필자도 한국 소설 소개자료의 번역에 투입될 정도로 모두가 한국 저작물 수출에 장밋빛 기대를 걸었다. 그러한 기대는 예상보다 오래가지 못했지만, 한국 저작물 수출은 다양한 경로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 과정을 지켜봐 온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되짚어 보며, 그간의 한국어 저작물 수출 방식이 가진 한계와 그 극복 방안에 대해 제언해 보고자 한다.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시작과 성장 과정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초기 단계

 

1996년 베른 조약 가입 이후 우리나라 저작권법이 정비되면서, 해외와의 저작권 계약을 전담하는 저작권 중개 에이전시들이 국내에 하나둘씩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저작권 계약은 주로 해외 저작물의 수입, 그중에서도 영미 유럽권의 양질의 도서를 국내로 들여오는 계약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반전을 가져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2001년,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한국문학번역금고(1996년 설립)’를 모체로 한 한국문학번역원을 출범시켰으며,1) 비교적 언어의 장벽이 낮은 대만과 중국 등 중화권 지역을 대상으로 한국어 저작물 수출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2003년에는 MBC 창사 기념 특별기획드라마 <대장금>을 원작으로 한 소설 『대장금』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대만, 일본, 중국, 태국 등지로 수출되면서2) 한국어 저작물 역시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 동참했다. 이러한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 열기는 중화권을 넘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눈높이 수학」 시리즈를 비롯해 국내에서 유명한 유아 교육 교재들은 워크북 형태의 교재가 전무했던 중국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한국식 교육의 열풍을 가져오기도 했다.

 

 

1) 한국문학번역원 홈페이지, https://www.ltikorea.or.kr/kr/contents/about_ceo_1/view.do (2020. 01. 19. 마지막 방문).
2) 수출 지역에 대해서는 소설 『대장금』의 출판사인 은행나무 홈페이지 참조, http://ehbook.co.kr/book/216 (2020. 01. 19. 마지막 방문).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성장과 발전 – 아시아 문화권의 경우

 

이후로도 중화권과 동남아시아에서는 국내의 각종 어린이 전집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창작 그림책은 물론 『Who?』 시리즈를 비롯한 논픽션 전집, 수학 및 과학 교육서, 두뇌개발 워크북, 스티커북 등 영아에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유아동 전집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더불어 2010년도부터는 TOEIC과 TOEFL 교재 수출이 늘어나면서 중국 본토에서 한국 영어 교재의 상업성을 인정받아 다양한 어학책들이 수출되었으며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어 교육 교재의 수출이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한국어 저작물의 인기는 단행본으로까지 이어져 성인 대상 픽션과 논픽션 수출 역시 증가했다. 2015년에는 KBS 특별 기획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슈퍼 차이나』가 당시 한국 단행본 사상 최고가의 선인세로 중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성장과 발전 – 영미 유럽권의 경우

 

한국어 저작물 수출은 아시아권을 넘어 영미 유럽권까지 이어졌다. 다만 아시아권에서의 한국어 저작물 수출이 유아동 전집으로 시작해 어학 교재, 단행본 등 장르 구분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면, 영미 유럽권으로의 수출은 주로 한국 문학에 한정되어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아동 책의 경우, ‘창작’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영미 유럽권의 경향과 달리 우리나라의 영유아 대상 책은 ‘지식 전달’과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부정적 요인이었다.3) 또한 성인 대상 단행본의 경우, 문학은 문화적, 사회적 차이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있지만, 논픽션은 문화적, 정서적, 사회적 차이의 괴리가 문학보다 크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문학의 경우 ‘세계 문학’의 범주에서 영미 유럽권에서도 다양한 문화의 책을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반면, 논픽션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서보다는 자체 제작이나 같은 문화권 저자의 책을 선호한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영미 유럽권에의 한국 문학 수출은 2009년을 전후로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 김영하, 신경숙 등 국내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해외 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국내에서만 170만 부 가까이 판매된 데 이어 미국의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Random House의 문학 전문 임프린트 Knopf과 계약해 출간 몇 년 만에 초판 10만 부4)를 모두 판매하고 2쇄에 들어가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는 물론 이스라엘, 터키, 폴란드, 레바논, 러시아 등 그간 한국어 저작물의 진출이 쉽지 않았던 지역에까지 수출되며 한국어 저작물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또한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엘레나 페란트를 제치고 국내 최초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3) 다만 <<마당을 나온 암탉>>과 같이 문학성과 창작성을 겸비한 아동 픽션의 경우에는 영미 유럽 시장에서도 인정받아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28개국에 계약되었다.
4) 초판 10만 부는 미국 현지에서도 특히 기대되는 대형 타이틀에만 허용되는 수치이다.

 

 

 

초기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한계

 

높은 아시아 지역 수출 의존도

 

중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초기부터 한국 저작 수출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2013년에서 2015년까지 아시아 지역에 이루어진 도서 저작권 수출은 5,402건으로 전체 6,298건 중 85.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5) 아시아 지역에 수출이 집중되는 이유는 정서적, 문화적 차이가 적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언어이다.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는 한국어로 된 저작물을 무리 없이 검토하고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이 비교적 충분하다. 따라서 한국 출판사나 에이전시에서는 별도의 외국어 소개자료나 번역 샘플 없이도 도서를 소개하기 용이하다.

 

반면 영미 유럽권을 포함한 기타 지역에서는 한국어를 자국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이 적다. 따라서 현지 출판사는 한국어 출판물을 검토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함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수출 초기에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번역자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점은 조금씩 보완되었다. 또한 영문 번역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어→영어→자국어 단계를 거치는 이중 번역이 가능했기 때문에 수출 가능성이 커졌다.

 

 

5)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출판산업 실태조사」, 2016, 559면.

 

 

 

낮은 부가가치 창출로 인한 인력의 한계

 

아시아 지역의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곧 아시아 지역에서 선호하는 도서로 수출 업무가 편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의 수출을 견인한 것은 앞서 말했듯 유아동 대상 전집이다. 전집 수출은 한 번에 수십 권을 계약함으로써 높은 선인세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집을 구성하는 도서 한 권당의 선인세가 매우 낮고, 또한 계약 이후 인세 계산 등 관리를 위한 업무가 일반 단행본에 비해 굉장히 많다는 단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전집 수출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업무 강도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에이전시나 출판사가 수출과 관련된 인력을 구조 조정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초기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은 아시아를 시작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한국어 저작물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한국인 최초의 영미권 문학상 수상자가 등장했고, 그간 한국어 저작물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나라에까지 우리 책들이 알려지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저작물 수출 종수의 증가’나 ‘저작물 수출 대상 국가’의 증가가 에이전시나 출판사, 궁극적으로 저자의 수익 실현으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에 집중된 저작물 수출은 그 성과가 정치적, 경제적 현안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초기 한국어 저작물 수출이 가졌던 한계가 어떠한 문제로 나타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 관계자들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4월 호에 계속)

 

* 본 연재는 출판 저작물을 수출하는 최전선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의 경험담을 통하여 도서저작권 수출의 최신 트렌드와 사례를 공유하고, K-Book의 지속적인 성공 전략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신서희(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09년부터 출판 저작권 중개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에서 근무했으며,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를 거쳐 2018년부터 다시 ㈜임프리마 코리아로 복귀했다. 도서 저작권 업무를 비롯해 미술, 사진, 영상, 공연과 관련된 저작권 실무를 두루 경험했으며, 현재는 한국 도서 해외 수출과 영미 유럽권 도서 국내 수입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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