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음과 길 찾음, 유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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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08


저자의 날카로운 영적, 심리적 통찰력이 돋보였던 책.

죄와 우상에 대해 아주 적나라하게 돌직구를 날린다.

아주 속시원하고, 서늘하기도 하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책.

그리고 평소에 많이 고민했던 바를 

기똥차게 잘 풀어내어준 책.



길 잃음과 길 찾음

저자
유재혁 지음
출판사
TnD북스(티앤디북스) | 2014-01-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나는 예수를 믿는 데도 왜 항상 초조한가? 나는 왜 벌을 받을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거의 일년 전 책을 정리하느라 이제서 다시 봤는데,

뒤통수를 떡 맞은 기분이다.

주일설교 하나 들은 기분이고.

반성하고 싶은 기분이다.

어떻게 이렇게 내 상태에 딱 맞는 내용이 써 있었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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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종)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죄의 속성에 관한 아주 심오하면서도 보편적인 진리이다. 바로 죄는 그 죄를 짓는 사람들을 죄의 노예가 되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모든 죄는 일정 기간 동안 반복하면 중독성을 갖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스스로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이러한 결심을 가장 좋아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사탄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에게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능력과 힘이 없다. 죄를 벗어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결심이나 의지에 달려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적인 결심이나 의지로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더 갈라놓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을 의지할 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육신의 행실, 즉 죄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죄의 힘과 능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주님의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을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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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

하나님은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이 감정은 스스로가 처한 상화으이 종류와 그 정도를 알려주는 신호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의 정상적인 활동은 자신의 삶이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음에게 알려 주는 계기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평안과 기쁨과 감사는 우리의 영적인 여정이 올바른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가 되며, 반대로 불안과 근심과 불만은 그 여정이 어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특히나 지나친 감정의 동요, 예를 들어서 특별히 초조하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감정의 적신호들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무관심도 감정의 상태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무관심은 건강한 감정의 결핍을 의미하며 또 감정의 전달조차도 말라버린 상태여서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오히려 더 커다란 문제일 수 있다.

(but 부정적인 감정(예를들면 슬픔)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깝게도 만들어주고, 오만하고 미련한 사람들이 무지의 상태에서 즐겁고 행복하기도 쉽지 않은가? 감정=상태는 좀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는 지배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들을 통해서 자신이 영적으로 어떤 문제에 부딪혔는지 또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를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근본적인 치유와 회복이 가능하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감정의 신호들이 전달하려는 영적 상태를 파악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있어야 한다.

(아주아주 맞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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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사람들이 섬기는 대표적인 우상에는 돈, 성공,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외모, 인기, 명예, 존경, 영향력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러한 우상들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삶을 정신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컨트롤한다. 마음으로 섬기는 우상들의 종류는 다양할지 몰라도 그 역할과 기능은 거의 비슷하다. 우상이란 바로 이것만 얻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면 내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그 무엇이다. 사람이라면 삶에서 하나님 이상으로 갈망하는 것들을 최소한 한두 가지 이상씩 가진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인물, 존 칼빈(John Calvin)은 크리스천들이 섬기는 우상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우리 마음속의 우상과 그 악의 정체는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너무나 지나치게 원하는 것에 있다."


당신이 가장 갈망하는 것들이 당신을 가장 힘들고 괴롭게 한다. 우상을 쉽게 말하자면 "매일의 삶 가운데 가장 갈망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를 소망이나 꿈 또는 목표나 야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지나치게 갈망하는 것들이 하나님 대신에 마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르 차지하기 시작하는 초반에는 삶에 활력이 생기고 열정이 솟아오르기까지도 한다. 마음의 상상이 저절로 나의 갈망들을 찾아가며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어질 날을 상상하면서 가슴이 부풀기까지 한다. 자신의 꿈이나 성공을 꿈꾸고 갈망하는 상태가 대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헐 뜨든. 완전 내 얘기. 그래서 그렇게 많이도 꿈꾸고 좌절했나보다;)


우상은 만족과 쉼을 주기는커녕 우리를 쉴 수 없는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우상은 우리를 이렇게 닦달한다. "뭐하고 있는 거야. 나를 소유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나를 얻지 못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말거야. 그러면 남들이 뭐라고 비웃겠어. 그러니 뭔가 해봐 이 패배자야!" 이렇듯 처음에는 내가 우상들을 선택하지만 나중에는 그 우상들이 나의 삶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폭군이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평강과 쉼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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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뿌리 - 숨은 동기)

표면적인 우상들은 물론, 겉으로 훌륭해 보이는 행동 뒤에도 다른 우상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숨은 우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의 숨은 동기를 알아야 한다. 우상의 진정한 모습과 그 뿌리를 알려면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진정한 마음의 동기를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우상들을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사람들이 섬기는 대표적인 표면적 우상에는 돈, 성공, 사업, 특기나 재주, 사역(교회 사역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등이 있다. 더 깊숙한 우상에는 인정이나 존경을 받으려는 욕구, 인기에 대한 갈망, 안락한 삶, 주위 사람들이나 상황을 컨트롤하려는 집착 등이 있다. "나는 왜 ㅇㅇㅇ을 열심히 하고 있는가?" "나는 왜 ㅇㅇㅇ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가?" "나는 언제 불안하고 화가 나는가?"(우상들을 이룰 수 없을 때 우리는 대부분 불안해지거나 화가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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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를 하는 가장 깊숙한 마음의 동기

우리가 섬기는 표면적 우상들 뒤에 깊숙하게 숨어있는 우상들은 결국 한가지 우상으로 집결된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내는 우상은 한 가지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목적과 갈망을 이루어서 궁극적으로는 스스로가 영광을 취하고 싶은 욕망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우상이다. 인간의 죄의 본성과 그에 따른 우상숭배의 뿌리는 결국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높아지고 남의 시선을 끌어서 영광을 얻고 누리고 싶은 욕망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 우상이다. 

(여기서 진짜 소름 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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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우상)

많은 경우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장기나 특기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을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은 누구를 제치고서라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기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일이나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봉사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회 내에서도 자신의 존재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기와 영광을 구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영광스럽게 되기를 먼저 구하여야 한다.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로 주님을 섬기는 일은 선한 일이다. 그러나 내면의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인기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인지를 수시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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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우상)

크리스천의 삶에서 모든 인간 관계는 그것이 친구이든 연인이든 배우자이든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연인 사이에서 내가 상대의 궁극적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려는 것은 그 상대방에게 나를 하나님의 위치에 갖다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성경적이고 원활한 관계의 형성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실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자리매김을 해나갈 수 있다. 


부부간의 사랑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은 바로 서로가 하나님을 가장 친밀하게 좇고 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크리스천 부부라면 상대방이 하나님과 가장 깊고 풍요로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상대가 나보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겸손의 마음으로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풍성하고 원만하며 단단한 관계를 서로 맺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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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의 죄)

자기중심적 삶의 추구가 진정한 행복의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정작 잘 모른다. 성취와 성공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고 영광을 얻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교만의 불편한 질주를 멈출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홀가분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되려는 노력도 다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쉼과 평안은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을 가능케 해주시려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을 겸손케 만들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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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겸손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그 궁극적인 열매가 너무다 달고 귀하기 때문에 때때로 하나님은 무자비하게 보일 정도로 우리를 낮추신다. 자기 중심적인 본능의 생생한 신경이 난도질당할 때의 아픔은 대단히 크지만 그 결고는 더 큰 안식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에 수술의 칼을 대신다. 때로는 실패를 주시고 때로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들을 거듭되는 절망으로 응답하시기가지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신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겸손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위치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그렇다면 진정한 겸손은 무엇일까? 겸손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원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조물주 앞에서 피조물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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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

크리스천이 자신이 아닌 주님을 중심에 놓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은 황폐해져 가지만 내가 죽고 주님이 중심이 되시는 삶은 평강과 만족과 감사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의 삶으로 풍성해져 간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이전에는 그토록 불가능하던 초조하지 않을 자유, 미워하지 않을 자유, 불안하지 않을 자유, 분노하지 않을 자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놀랍고도 신기한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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