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리뷰: 전체적인 감상평. http://johndony.blog.me/90159550788
두번째 리뷰: 종교와 이성, 종교와 믿음, 영화의 메세지 분석 http://johndony.blog.me/90160812506
세번째 리뷰: 이름과 식인섬의 의미. 믿음의 방향. http://johndony.blog.me/90161812730
* 다운로드해서 영화를 보신 분들 자꾸 잘못된 번역에 낚이시네요.
원작책과 영화의 번역은 ' 이 조사관의 경험으로 볼 때, 그의 이야기는 난파선 역사상 어느 사건과도 견줄 수 없다. 파텔만큼 오래 생존한 조난자는 없었다. 더구나 벵골 호랑이와 함께 생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가 맞습니다.
실제 대사는 Writer: [reading off the report] Mr. Patel's is an astounding story, courage and endurance unparalleled in the history of ship-wrecks. Very few castaways can claim to have survived so long at sea, and none in the company of an adult Bengal tiger. 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none 은 벵갈호랑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 문장의 Very few castaways 를 뜻합니다.
뭐 사실 중의적인 문장이라고 볼 수 있으니 '호랑이와 함께 생존한 사람은(파이말고는 or 파이를 포함하여) 없었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으나
'성인 호랑이는 없었다.'라는 번역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
영화 라이프오브파이를 상암CGV IMAX 3D로 재관람하고 왔습니다. 제일 명당자리로 꼽히는 E13,14에서 관람했습니다. 상암IMAX는 크기가 왕십리 IMAX 보단 더 작은 크기이고, 일반 상영관을 개조한 탓에 좌석간 기울기가 낮은편입니다. 4번째 줄인 D열은 올려다봐야하는 불편함이 있고, 눈 높이에 조금 더 맞는 건 F열이겠지만, 5번째 E열은 IMAX의 압도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라이프오브파이를 두번째 관람하니,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깊이있게 다가옵니다. 첫 관람에서는, 라이프오브파이의 결말이 단순히 관객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이고, 결국 중요한건 '믿음'이다.라는 단순한 결론을 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이있는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영화의 흐름에 따른 줄거리보단, 각각의 관전포인트 중심으로 설명해봅니다. 참, 저는 원작소설 파이이야기를 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작의 심오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년시절 파이이야기]
인도 소년과 뱅골 호랑이의 태평양 표류기. 영화의 초반엔 주인공 '파이'의 유년기에 대해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스케일 큰 조난영화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유년시절의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빠트릴 게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을 보여줍니다. 파이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데,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그 바탕이 됩니다.
1. '파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파이의 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 입니다. 프랑스의 황홀한 수영장을 본 따 붙여진 이름이죠. 마치 하늘에서 수영하는 느낌을 주는 그 수영장의 맑은 물처럼 맑은 영혼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영어 오줌싸다 라는 뜻의 '피싱'과 발음이 비슷해서 내내 오줌싸개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곤 합니다. 새학기가 되자 파이는 스스로 '피신 몰리토 파텔' 줄여서 '파이'라는 닉네임을 만들고 매 수업시간마다 그 닉네임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수학적으로는 원주와 지름의 비율을 뜻하는 'π' . 라고 말이죠. 수학적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무한소수인 '파이'를 칠판 세개가 넘도록 외워 쓰고 결국 '전설의 파이'로 학교에서 유명해지게 되죠.
'π', '파이'라는 이름은 의미가 있습니다. 말끔하게 정의되지 않고 무한한 값을 가지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파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닉네임입니다. 종교와 과학, 본능과 이성, 감정과 이성, 인간과 동물.. 그 무엇하나 확실히 규명지을 수 없는 문제들을 앞으로 보여줍니다.
2. 종교 vs 과학. 모든 종교를 다 믿는 '파이'
파이의 어머니는 연이 끊어진 가족과의 유일한 매개체로 신을 믿습니다. 반면, 종교보단 서양의학에 의해 구원을 받은 (소아마비로) 파이의 아버지는 종교보단 '과학'을 더 믿습니다.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 우연히 접하게 된 여러 종교에게서 한가지씩 매력을 느낀 파이는 모든 종교를 다 믿기 시작합니다. 힌두교에서 믿음을, 천주교에서 사랑을, 이슬람교에선 안정을.. 그런 파이에게 아버지는 감성보단 '이성'을 믿고 나아가라 조언을 하고, 어머니는 과학이 증명하지 못한 마음을 믿으라고 조언합니다.
종교 vs 과학. 어른이 된 파이는 대학에선 유대교의 신비를 가르칩니다. 그런 파이를 인터뷰하는 소설가가 묻습니다. 종교에 대한 '의심'은 해본 적 없냐고. 그러자 파이가 대답하죠. '층층마다 수많은 의심의 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은 믿음을 더 견고하게 만듭니다.'
3. 본능 vs 이성. 호랑이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에서 최고 인기스타는 '리처드파커' 뱅골 호랑이입니다. 원래 이름은 '목마름'이었지만 사냥꾼과 서류상으로 이름이 바뀌어 '리처드 파커'로 불리우게되죠. 어린 파이는 호랑이의 눈에서 영혼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게 호랑이에게 인사를 하려다 손이 잘릴지도 모르는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하죠. 그런 파이를 아버지가 냉혹하게 가르칩니다. 호랑이가 사슴을 죽이는 모습을 보게하여 호랑이의 눈에 비친건 파이 자신이었을 뿐, 호랑이는 친구가 될 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는 걸 알게해주죠.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은 훝날 호랑이와 조난을 당한 파이가 살아남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파이의 표류기]
캐나다행 일본 화물선이 폭풍우로 침몰하고 파이와 동물들은 구조보트에 살아남습니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 벵골호랑이 리처드파커, 하이에나, 바나나 더미를 타고 떠밀려 온 어미 오랑우탄. 인간1명과 동물 넷은 어색한 공존을 시작합니다. 하이에나는 얼룩말을 공격해서 죽이고, 파이를 지켜줄 수 있을 줄 알았던 어미 오랑우탄마저 죽이고 맙니다. 나약한 인간인 파이는 그저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벵골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하이에나를 죽이고 맙니다. 리처드파커와 파이의 표류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 폭풍에서의 무모함. 이성 vs 종교.
파이는 영화내내 보여준 두번의 폭풍우(= 신으로 대변되는 폭풍우)에서 두번 다 무모한 행동을 합니다. 이성과 종교의 부딪힘입니다. 그러나 신에 대한 파이의 무모함은 아이러닉하게도 한번은 파이를 살리고, 한번은 죽일뻔 합니다.
동물들을 북미에 팔고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해 출발한 일본 화물선. 파이는 폭풍우가 왔다는 걸 깨닫고 다 자는 밤중에 홀로 폭풍우가 왔다는 것을 알고 홀로 배 갑판에 나가 '신이시여 마구마구 뿌려라' 라고 외치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곧 그 폭풍우로 인해 화물선이 침몰하고 가족 모두를 잃게 되고 파이 홀로 구명보트에 살아남게 되죠. 형 '라비'의 폭풍을 우숩게 알지 말라는 조언(=이성)을 무시하고 홀로 나섰던 무모함(=종교)이 오히려 파이의 생명을 구한것입니다.
두번째 폭풍우는 표류하던 중에 나타납니다. 기나긴 표류로 인해 심신이 지친 파이와 뱅골호랑이. 폭풍우가 몰아치자 파이는 다시 한번 무모한 행동을 합니다. 번쩍대며 비를 뿌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신의 위대함을 보라 외치고, 리처드파커가 신의 위대함을 볼 수 있도록 배에 있는 천을 모두 걷어버립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게 맹목적으로 신의 찬양하다가 이내 이성을 차리고 배를 몽땅 천으로 씌워버리죠. 파이의 무모한 행동(=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행동)은 파이와 리처드파커를 죽일 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이성) 다시 자신과 리처드파커의 목숨을 구합니다.
괄호글로 덧붙였듯이 이 폭풍우에 대한 무모함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앞서 유년시절 아버지는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행동은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다고 조언을 했죠. 어머니는 과학은 마음을 설명할 수 없지만 믿음은 그것을 알려준다고 조언합니다. 두번의 폭풍우에서 파이를 살린 것은 어느 하나가 아닙니다. 이성과 믿음 그 둘 모두 파이의 생명을 구하죠.
2. 리처드 파커 vs 파이. 본능과 이성의 싸움.
유년시절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호랑이가 무서운 동물이라는 것을 파이는 잘 압니다. 그래서 차마 호랑이가 탄 보트엔 다가가지 못하고, 갑판나무를 떼어 만들고, 구명조끼로 지지시킨 뗏목에서 살죠. 그러나 호랑이는 수영을 잘 합니다. 언제 뗏목까지 수영해 자신을 잡아먹을 지 모르는 상황이죠. 결국 파이는 호랑이를 먹여살리기로 결정합니다. 호랑이의 본능이, 파이의 생존본능을 일깨운 셈입니다. 뗏목에서 파이는 스스로 낚시를 하고, 빗물을 받아 리처드파커를 먹이게 되죠. 구조보트에서 발견한 생존지침서를 읽으며 점점차 적응을 해 나갑니다.
호랑이와 보트는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과 본능으로 대변되고 파이와 뗏목은 살기위한 생존본능과 이성으로 대변됩니다.
3. 리처드 파커와의 교류, 공생.
리처드파커와의 공생은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윌슨이라는 배구공을 친구삼아 살아남았던 톰행크스. 다른 점이 있다면, 리처드 파커는 파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라는 점.... 일기를 쓰고, 리처드 파커와 대화(혼잣말)을 나누며 살아가지만 호랑이와의 감정적인 교류는 보이진 않습니다. 강아지가 아닌 맹수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배고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호랑이가 강아지처럼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파이가 사람이 아닌 한마리의 맹수로 달라집니다. 리처드 파커를 훈련시키는 법을 터득한 것이죠. 갑판을 떼어다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리처드파커를 위협하고, 잡은 생선을 먹잇감을 주며 훈련을 시킵니다. 이제 파이는 맹수중의 맹수인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맹수가 된 셈입니다. 결국 한 배에서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두번째 폭풍우를 만난 후 코가 하얗게 다 까지도록 지쳐버린 리처드파커. 호랑이 머리를 자기 무릎에 올려두고, 우린 죽을거라며 오열하는 파이의 모습은 둘의 공생을 더욱 감동스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4. 모든 걸 다 포기했을 때, 다가온 희망.
우린 죽고 말거라며 오열을 하고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미어캣의 섬에 도착해있습니다. 거기엔 마실 물과, 신선한 식물과, 미어캣들이 삽니다. 신이 자길 버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지켜본 것 뿐이었다는 파이의 말. 삶을 포기하고 나니 희망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무인도는 알고보니 식인섬이었죠.
낮엔 희망을, 밤엔 강한 절망을 가져다 주는 섬. 우연히 나무열매 안에서 사람의 치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파이는 그 섬에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섬에서 평생을 살 수도 있을거란 희망은 꺾였지만, 생존에 필요한 물과 식물과 미어캣은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270여일의 대장정을 끝내고 멕시코 해변에서 구출됩니다.
식인섬의 풀 샷을 보여줬을 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식인섬이 바로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낮엔 희망, 밤엔 강한 절망을 주는 섬은 파이의 표류기 전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위해 호랑이를 먹여살리고, 호랑이보다 더한 맹수로 바뀌어나가고, 고기를 잡고 생존 방법을 터득하지만 결국 망망대해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전반을 보여주는건 아닐까 합니다.
( 제제의 해석; 식인섬의 의미 : http://johndony.blog.me/90161812730 ; 식인 섬은 힌두신 비슈누.) 어떤 분들은 식인섬이 말 그대로 파이의 식인을 뜻하는 거라고 하는데.. 저는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미어캣섬을 파이의 식인을 뜻하는 이유로는 보통, 여자 몸을 한 섬 = 파이의 엄마. 미어캣 = 파이 엄마의 시신에 생긴 구더기. 로 말씀하기도 하시네요.
[표류, 그 뒷이야기]
멕시코 해안에서 리처드파커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파이는 작별인사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첫사랑 아난디도, 엄마도 아빠도, 형 라비도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냈습니다. 어른이 된 파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 인생이란게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게 아닐까요'
1. 반전? 진실 vs 거짓. 두번째 이야기.
멕시코로 찾아온 일본 선박회사 조사관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조사관은 파이의 믿음에 대립하는 과학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증거와, 모두가 납득할 이야기를 요구합니다.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아'. 조사관의 이 한마디는 모든 관객을 벙찌게 만듭니다. 분명히 오랑우탄은 바나나더미를 타고 왔는데,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는다니??? 그럼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다 거짓이었다는건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죠. 의심의 싹이 트고 맙니다.
동물도 나오지 않고, 모두가 다 믿을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바라는 조사관에게 파이는 다른 이야기를 해줍니다. 주방장과, 행복한 불교신자 선원, 바나나더미를 타고 온 엄마, 그리고 파이. 그렇게 넷이 표류한 이야기. 행복한 불교신자는 다리를 다쳤고, 그를 주방장은 방관합니다. 그리고 선원의 시체를 이용해 낚시를 합니다. 채식주의자인 파이의 어머니는 그런 주방장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다 싸움이 나고 주방장이 엄마를 죽이고 맙니다.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파이는 다음 날 주방장을 죽이고 홀로 표류를 시작합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일본 조사관들은 그저 얼른 나으라는 말을 하고 돌아갑니다. 환상적이고, 따듯하게 느껴졌던 동물과 미어캣섬 이야기, 살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죄를 저지르게 된 두번째 이야기. 여러분은 어떤 걸 믿습니까?
첫번째 이야기에서 생존자는 파이와 벵골호랑이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에서의 생존자는 파이 한사람이죠. 오랑우탄은 엄마, 얼룩말은 선원, 하이에나는 주방장으로 연결되는 두 이야기에서, 파이는 인간으로서의 파이이기도 하고, 리처드파커이기도 합니다. 만일 두번째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호랑이와 파이의 표류기는 이성과 본능, 이성과 종교, 과학과 종교의 대립과 공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뭐라고 딱히 규정짓기 어려운 이성, 본능, 감정, 과학, 종교... 영화가 내내 말하고 싶었던건 단순히 '믿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진실이건, 파이가 230여일을 표류하여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파이의 이름 π 처럼 무한히 계속되어 끝을 낼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절대적인지.
2. 반전에 반전. 바나나 더미는 물에 뜨나요?
이번 관람에서 저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일본 조사관들에게 두번째 이야기를 말해주면서 파이는 분명히 엄마가 바나나더미를 타고왔다는 말을 하죠. 일전에 오랑우탄 이야기를 듣고나서 조사관은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두번째 이야기에서 파이의 엄마가 바나나를 타고 왔다는 말은 그냥 지나가죠. 아마 많은 관객들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바나나가 물에 뜨지 않는다면, 파이의 엄마도 구조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걸 알아챈 사람들이 많지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의심'의 싹이 텃기 때문 아닐까요? 동물들이 나오고 호랑이와 공생을 하고, 미어캣이 나오는 식인섬 이야기는 누구도 한번에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진짜일까 아닐까? 하던 와중에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는다'라는 말은 돌직구가 되어 날아옵니다. 그러나 사람 이야기. 정말 있을법도 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엄마가 바나나를 타고왔다는 말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번 의심을 시작하니 으레 두번째 이야기는 진실일 수도 있겠다. 하는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의도적인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니, 뭐가 진짜 이야기인지는 정말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짜일 것 같은 사람이야기도, 환상적인 동물이야기도......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현실에도 있을 법한 비극적이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죽고 죽이는 두번째이야기),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동고동락하며 표류하고 식인섬이 나오는 환상적인 동화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됩니다. 마지막에 어른 파이도 작가에게 말합니다. 이제 이 스토리는 당신의 것이니, 해피엔딩이 될지도 당신의 몫이다. 라고요. 이안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이 영화의 엔딩도 관객에게 달렸음을 알려줍니다.
[내 마음대로 결말]
이러나 저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말 하고 싶은 건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믿음을 종교라는 색채로 표현했을 뿐.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는 늘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 믿음을 견고히 만드는 건 '의심'입니다. 극중 어른 파이도 이야기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수많은 의심의 방이 있어서, 믿음은 더 견고해진다고..... 이런 주제의식 처럼, 영화에서도 의심의 싹을 제공합니다. '바나나는 물이 뜨지 않아'라는 의심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으므로, 오랑우탄(=엄마)가 바나나 더미를 타고 보트에 합류했다는 것은 거짓이고 따라서 파이의 이야기도 거짓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작가와, 일본 조사관은 믿음을 택합니다. (다운받아 불법자막으로 보신 분들 많이 낚이셨는데, 보고서의 마지막 말은 문장 두개를 연결지어야 하므로 호랑이가 없다는 건 아니고요,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역시 각자 마음대로...)
'두 이야기 모두 배가 침몰하고, 가족을 잃고 나는 고통 받는다. 그러나 증명할 길이 없다. 두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더 맘에 드나요?'라는 파이의 질문에 작가는 동물 이야기가 더 맘에 든다고 합니다. 파이도 고맙다고 말하죠. 일본 조사관들은? 이야기의 마지막, 화물선 침몰 관련 보고서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p.s. 그의 이야기는 매우 놀랍다. 그는 표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생존했으며, 뱅골 호랑이와 함께한 자도 그가 유일하다.'라고. 일본의 조사관들도 결국 두 이야기를 다 듣고 파이와 리처드파크가 함께한 첫번째 이야기를 택한 것입니다. 의심 그리고 믿음이죠. 견고한 믿음. 신이 존재한다는 것도 결국 믿음의 이야기이다.
삶이란 π와 같습니다. 제대로 정의할 수도, 끝을 낼 수도 없습니다. 이성과 감성, 종교와 과학, 믿음과 이성 등등. 볼 수도 만질 수도 증명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의심은 나쁜게 아니죠. 의심을 함으로 써 비로소 믿을 수 있습니다. 라이프오브파이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었나, 추측해봅니다. 여러분은 둘 중 어떤 이야기를 믿습니까?
[아름답고 황홀한 영상]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영화가 3D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합니다. 제목 라이프오프파이 처럼 이 영화는 π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 드는 '피신 몰리토 수영장.' 현실적이며 관객을 압도해버리는 폭풍우. 지면에 가깝게 두어 동물의 시선에 충실한 동물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태평양. 해파리와 고래, 심야 생물로 화려한 태평양의 아름다움 등등... 이 영화는 3D, 이왕이면 IMAX 로 강추합니다!
p.s 원작에선 첫번째 이야기 후 일본 조사관이 바나나가 물에 뜨는지 실험을 한대요.
물에 뜨는걸 확인하고 두번째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궁금증에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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