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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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시간에 찾아온 그다. 언제나 느끼지만 차려입은 정장이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아무래도 여기가 회사 내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라 오는 손님들은 언제나 얼굴에 졸음이 가득한 사람들뿐이었는데 이 사람은 이른 시간에도 얼굴에 졸음은커녕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높은 직책인 것 같은데, 또 얼굴 보면 내 또래 같기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네? 네. 네.""머리 바꾸셨네요.""아? 네네. 바꿨, 바꿨습니다. 커피 금방 내려드릴게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급하게 허둥거리며 뒤를 돌자, 남자가 푸스스 웃는다.


"계산도 안 하고 커피 만들어줘요?""아뇨. 아뇨. 아 죄송. 카드 주세요."



새빨개진 얼굴로 카드를 받아 계산을 마치고 뒤를 돌아 샷 내리는 기계 앞에 섰다. 떨지 말자. 떨지 말자.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기계를 다루려는데도 손끝이 덜덜 떨린다. 티 나는 거 아니겠지. 어제 밝은 머리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바꾼 건데.



"근데 제 생각보다 밝은 머리가,"



뭐야. 안 어울린다고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이 머리하려고 이곳저곳 미용실 찾아서.



"더 잘 어울리네요."



아, 정말.




"어디 아파요? 귀가 되게 빨갛네.""....아닙니다."



다 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카페에서 처음 그 남자를 만난 건 내가 일한 지 2개월쯤 됐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페 알바가 처음이라 실수가 좀 잦았던 시기였는데 그날도 역시 남자의 주문과 다른 사람의 주문을 헷갈려서 카페 모카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내밀었던 게 처음 그와의 대화 이유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는 내 말에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남자. 그리고 더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는데 안 가져가냐며 독촉 아닌 독촉을 해대던 나.



'저는 카페모카를 시켰는데.''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어드릴게요.''아니에요. 저 아메리카노도 잘 먹어요.'


그 당시 하도 진상 고객들한테 치여서 그가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도 으레 겁을 먹고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가며 사죄를 했었다. 그리고 웃으며 내 손에서 아메리카노를 가져가던 남자.




'맛있네요.''...아..''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그럼 수고해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벌게진 얼굴로 애꿎은 카운터만 행주로 벅벅 문질러 닦았던 기억이 난다.



"..... 근데 왜 카페모카는 안 드시지."



원래 카페 모카만 드셨던 분 같은데.



"한 번, 물어볼까?"



머릿속으로 그와의 대화를 혼자 상상하다가 나 혼자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몸을 배배 꼬았다. 어떡해. 막 웃으면서 이유 얘기해줄 거 아냐. 어떡해! 못해. 난 못해!




".... 진짜 젊어 보이는데 몇 살일까."



그러다 나는 익! 하고 요상한 소리를 내며 카운터 밑으로 숨었다. 계속 그 남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의 당사자인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숨으면 더 이상하잖아! 그래서 괜히 떨어진 티슈를 주워 일어난 척을 했다. 큼, 헛기침을 하고 일어나니 남자의 뒤에,




"너 뭐 마실 거야?""나, 카페모카.""카페모카 하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아침에 아메리카노 먹었는데 또 마시게?""어. 요새 좀 피곤하더라.""....""주문이요?"



남자와 함께 들어온 여자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내 앞으로 내밀어진 카드가 보였다.




"아, 네. 카페모카랑 아메리카노 맞으시죠?""괜찮아요?""네. 예예. 괜찮아요.""나 저기 먼저 앉아있는다?""어."




카페모카를 시키는 여자와,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남자. 혹시 남자가 카페모카를 먹었던 이유가 저 여자 때문이었을까.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남자에게 말을 건네고 또 그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한다.



"금방 갖다 드릴게요.""아녜요. 여기 서 있다가 나오면 가지고 갈게요."




남자는 여전히 똑같이 친절한데.




"...."



어쩐지 차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궁상맞게.


* * *

다음 파트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평소보다 더 지친 마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자꾸 오후 즈음에 카페에 왔던 남자가 떠올랐다. 옆에 있던 여자는 누굴까. 되게 편한 사이인 것 같은데. 애인이겠지? 맞아. 그렇게 친절하고 멋진 사람인데 옆에 애인이 없을 리가. 괜히 혼자 설레고 혼자 이러고. 진짜 멍청해. 바보 같아. 한심하다.




"술 마시고 싶다.""...나도."



어라?남자가 손에 차 키를 흔들며 웃는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나도 오늘 술 먹고 싶어서 동지 찾고 있었는데, 잘 됐네요."".... 아뇨."




당연히 내 입에서 예스가 나오리라 예상했는지 남자는 밝게 웃으며 나와 발을 맞춰 걸으려다 단호하게 나온 나의 부정적인 대답에 딱 멈춰 섰다.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해서요.""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아까부터 표정 안 좋던데.""아닙니다. 걱정 감사해요. 죄송하지만 먼저 갈게요."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때문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진 모른다. 이젠 알고 싶어 해서도 안되겠지만.

* * *


".... 아휴 아휴, 괜히 기대했어. 괜히. 나는 바보야."



자책을 하며 술 한 잔.



"아냐, 진짜 객관적으로 봐도 나한테 관심 있어 보였단 말이야."



그를 원망하며 술 한 잔.



"아냐, 다 내 탓이지. 다아- 내 탓이야."



또 자책을 하며 술 한 잔.
돈도 많이 없어서 그럴듯한 술 집도 못 가고 카페 근처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는 어묵 2개가 전부였는데 벌써 다 먹고 국물만 남았다. 텅텅 빈 그릇이 꼭 내 마음 같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저으 아주 큰 착각. 어?"




내 손에 들린 잔을 누군가 채가서 사납게 고개를 들어보니 그 남자다. 내게서 뺏은 잔을 본인이 꺾어 마시더니 눈썹만 잠깐 구기고 만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물었다.




"뭐예요?""오늘 몸 안 좋다면서, 여기서 왜 술 마시고 있어요?""제 맘인데요.""갑자기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요? 나 뭐 잘못했나.""잘못한 거 없어요.""근데 왜.""그냥 제가 오늘 일이 좀 힘들어서 예민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만 가주실래요."



가달라는 나의 말에도 남자는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선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줌마 여기 닭발이랑 어묵탕 좀 더 갖다 주세요.""뭐 하세요 지금?""저도 술 마시려고요.""다른 테이블 많은데 저기 가세요.""난 여기서 먹고 싶은데."



남자가 말을 마치고 미간을 찌푸리며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끌어내린다. 그걸 또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술 병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고개를 꺾어 들이킨다.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자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느껴졌다.




"술 잘 마셔요?""저한테 더 이상 질문하지 마세요.""....""밝은 머리 잘 어울린다는 말도 하지 마요. 내일 어두운색으로 염색할 거니까.""....""그리고 이제 카페모카로 제대로 잘 만들어 드릴 테니까. 아메리카노 그만 드시고요."




남자가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또 술 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고 또 한 잔.




"그쪽이 속상한 이유.""....""알려주면 안 됩니까?"



참나.



"그거 그쪽이 알아서 뭐 하시게요.""꼭 나 때문에 속상한 것 같아서요.""오해예요.""오늘 오후에 저 보고 나서부터 표정 안 좋았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짜게 입을 다물었다. 묵비권이다. 대답 없이 또 술이나 따르려고 했는데 손목을 잡는다.




"아니에요?""...""정말?""자꾸 왜 이러시는데요. 애인도 있으신 분이."



내 말에 그 표정이 세상 제일 황당한 것을 들었다는 듯 구겨진다.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인이 생겼나요, 저?""오늘 같이 오신 여자분이요! 누굴 바보로 알고 지금.."




짜증이 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남자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술을 마저 따랐다. 남자가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곧 박 터지는 소리를 낸다. 아! 그리고는 그 표정이 한 번에 허물어내린다.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로 계속 웃는다.




"오늘 본 여자는, 제 여동생인데요.""그래요! 여동생! 여동생? 예?...""제 여동생이 제 애인 같아 보여서 기분이 안 좋았던 거예요?"



여동생.. 이요..?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거예요?""아니,아닌데요.""맞는 것 같은데.""...친...동생이요?""네.""남매가 같은 회사에 다녀요?"




느리게 질문을 던지자 어깨를 으쓱한다.




"같은 회사는 아닌데, 오늘 미팅이 있어서 잠깐 만났죠.""....""아, 그 소개팅할 때 그 미팅 아니고. 회사 비즈니스 상 미팅 있죠."





장난스럽게 덧붙이는 말. 날 놀리려 하는 말이 분명한데 대꾸할 수가 없어서 쓴 침만 삼켰다.




"그럼 이제 오해 풀렸어요?""오해 안 했거든요!""표정 되게 좋아졌는데 지금.""아니거든요!""그럼 이제 나 애인도 없다는 거 확실해졌고, 그쪽도 나 애인 있는 거로 오해하고 기분 안 좋아졌다는 거 보면 나랑 비슷한 마음으로 날 봤던 것 같고."


남자가 조곤조곤 말을 덧붙이다가 안도가 섞인 한숨을 뱉는다.

 



"아, 이제야 마음 놓고 웃겠네."


-"저사람이야?""응."표정 되게 안 좋은데, 어디 아프신 거 아니야?"그러게, 항상 웃는 얼굴이었는데 어디가 좀 안 좋은가. 약이라도 사다줘야할까.""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데.""오늘 끝나고 술 한 잔 하자고 할까? 어때? 괜찮은 것 같아?""표정봐라, 진짜 오빠 지금 표정 약간 토나와.""왜, 내 표정이 뭐.""오빠 회사 직원들이 보면 놀라 자빠지겠다. 회사에서 제일 까칠하고 예민한 이사님이 이렇게 멍청이마냥 헤벌쭉 웃는 꼴이라니.""....웃음이 자꾸 나는데 어떡하냐. 귀엽잖아 꼬물꼬물. 샷 내릴때 정말 귀여워. 내가 그래서 요새 자꾸 아메리카노만 마셔. 샷 기계 앞에서 종종거리는게 귀여워서.""으, 내 앞에서 팔불출 보이지마.""머릿속은 벌써 데리고 양가 상견례까지 다 했어.""좀 미저리같네. 이제 올라가자. 오빠 짝 사랑도 잘 봤고, 이제 일하셔야죠. 이사님.""잘 봐봐. 진짜 너무 귀엽지. 저거 검정 앞치마, 진짜 정말 귀여워. 그때는 손 데였는지 노란 밴드를 검지에 감고 있는데. 안쓰러우면서도 그 밴드가 얼마나 잘 어울려 보이는지.""그만 하고 이제 좀 올라가시죠. 이사님.""아, 야. 좀만 더 있다 가자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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