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꽃잎, 나뭇잎의 시간을 기억하는 법, 북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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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ING LEAVES UNDER BOOKS


내방 한구석에는 책들이 쌓여 이루어진 탑이 하나 있다. 지나다니며 힐끔힐끔 눈인사하곤 하는데, 그 인사는 책장 사이사이에 있을 나뭇잎들을 향한 것이다. 산책 겸 다니는 동네 작은 뒷산에서 그날 눈에 띈 나뭇잎을 책 사이에 넣어두면서 시작된 사소한 취미. 가을에 넣어놓은 작은 나뭇잎 하나와 한 계절이 지나 마주치는 반가움은 달콤하다. 그렇게 잎을 품은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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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의 시간을 기억하다
Remember the time of leaves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엄마들이 김장하듯, 나무는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분주하게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가을의 끝자락에 더 자주 숲으로 나선다. 하지만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나뭇잎이 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늘 아쉽고 안타깝다.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 서운함을 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된 나뭇잎 누르기는 이제 한 시절의 기억을 담아두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었다. 걷던 길에서 마주친 나무나, 작은 식물들 중 인상 깊은 것을 주워와 두꺼운 책장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다. 내 안테나에는 주로 곤충들이 먹은 길이 나 있거나, 그날의 내 눈에 색이나 모양이 특별하게 보이는 나뭇잎들이 잡힌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잎들을 누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점점 더 많은 녀석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이때 마음을 다잡는 것이 이 과정의 숨은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에 넣어둔 나뭇잎의 존재를 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그 사이에서 작은 잎 하나를 만나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더불어 겨울 잎들이 떨어진 산길로 다니며 책장 사이에 담아두던 그때의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 나무는 가지에 새로운 잎들을 달고 있는데, 내 책장 속엔 그들의 지난 시간이 담겨 있다니. 꽤 근사한 일이다. 나의 어린 시절 앨범을 꺼내어보듯, 한 식물의 시간을 꺼내어 본다. 나무와 나의 시간이 책장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곤충의 흔적이 있는 나뭇잎
Worms nibble green leaves



잎들을 말리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온전한 형태의 나뭇잎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잎 뒷면에 붙어 사각거리며 잎을 먹고 있는 나비의 애벌레와 눈이 마주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산초나무의 향기를 맡아볼까, 하고 다가섰다가 야무지게 식사를 하는 호랑나비 애벌레와 만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작은 산초 나뭇잎에 난 호랑나비 애벌레의 이빨 자국에 매료되었고, 그날 이후 나뭇잎들에 곤충의 흔적이 있으면 그것을 먹고 있을 곤충을 떠올리게 된다. 상처가 있는 잎들이 나에게는 ‘곤충’의 식사 자국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또 나무마다 그 잎을 먹이로 삼는 곤충들이 다 다르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도 새롭게 다가온다. 식물을 통해 곤충의 세계에 관심이 생기고, 그렇게 숲 전체가 하나로 느껴진다. 이제 흔적이 있는 나뭇잎을 만나게 되면 햇빛에 들어 비춰보며 곤충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 잠시 머물다간 흔적이 남아있는 나뭇잎이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잎들
There are lot of leaves about the city



01 화살나무 
도심 공원이나 화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붉은색의 단풍이 화려하게 들기 때문에 가을이면 더 눈에 띈다. 개체에 따라 변수가 많은 색이라 그 색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나뭇가지에 코르크 재질의 화살 깃 같은 줄기가 달려있어 구분이 비교적 쉽다.



02 싸리나무 
도로변이나 강둑 공터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잎이 동글동글해서 그 모양이 귀엽고, 노란색의 단풍은 아름다운 모습도 더한다. 벌레 먹은 잎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가을바람이 불면 잎들이 쉽게 땅에 떨어져서 주워서 말리기에 쉽다.



03 계수나무
아파트 단지에서 주의 깊게 보면 만날 수 있다. 동그란 형태의 잎들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새잎이 나올 때와 단풍이 들어 잎을 떨굴 시기가 오면 꼭 떠오르는 나무다.



04 꽃마리
낮고 작게 피는 식물로 냉이나 제비꽃들과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심의 보도블록 사이에서나 공터 등 볕이 잘 드는 흙이 있는 곳이라면 쉽게 보인다. 봄과 여름에 연한 하늘색으로 핀다. 꽃이 워낙 작아 잘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숙여 바라보면 그 깜찍함에 웃음 짓게 될 것이다.




05 아까시나무 
줄기에 달린 잎, 포도송이같이 주렁주렁 피는 꽃 그리고 사랑스러운 향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아까시나무. 어릴 때 가위바위보를 해서 잎을 따는 놀이는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단풍이 들어서는 살짝 건드려도 잎이 떨어지니, 말리기엔 제법 난도가 있다.



06 꿩의다리 
작은 뒷산 풀숲 사이에서 꿩의 다리 잎을 만나게 된 이후로 한동안 나의 관심사는 늘 꿩의다리였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실제 꿩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여리고 귀여운 식물이다. 잎이 줄기에서 뻗어 나와 만든 선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나뭇잎 누르기 방법
Method for pressing leaves



• 가벼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는 동네 작은 산책길을 하나 만든다.
• 산책하러 갈 때 그날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준비한다. (기왕이면 양장 제본된 책을 권한다)
•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날 산책길에서 마음에 드는 나뭇잎 하나를 골라 잘 펴 서 책 장 사이에 두고 눌러 덮는다.
• 집에 돌아와 빽빽하게 꼽힌 책장에 꽂거나, 다른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는다.
• 이삼일 지나면 한번 펴보고, 잘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한다. 이삼일 지나면 책장이 나뭇잎에서 나온 수분으로 쭈글거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다른 책에 옮겨 두거나, 다른 페이지에 꽂아 준다.
• 다시 나뭇잎이 잘 마르게 책장에 꽂거나 눌러둔다.
• 시간이 지나고 완전히 마르면 트레싱지에 모양을 잡아 라인 테이프로 붙여 고정한다. (수집한 날짜를 같이 적어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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