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홉 (약19금) 주드 감성 날라리 윤기 x 알바생 호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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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슈가x제이홉) 빙의글 (약19금)
 
(1편에 이어지는 내용)

석은 도로를 빠져나가는 민의 차를 마지막까지 느리게 쳐다보았어. 그리고 걸음을 느리게 돌렸지. 여기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 역이 어딜까.

 

차를 몰고, 요란하게 달리던 민이 드디어 갈 곳을 정하고,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어. 그리고 이태원으로 향했어. 민이 가는 곳은 친한 후배이자, 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바였고, 낮에는 커피를 팔고, 저녁에는 술을 팔았지. 바로 짐인의 가게였어. 근처 유료 주차장에 두 칸을 빌려 차를 세우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짐인의 가게로 들어섰지. 어두운 초록빛 조명이 은은하게 수채화 물감처럼 퍼져 있었고, 무뚝뚝하게 걸어가 바에 주저 앉듯 자리를 차지하고, 뭐 어쩌라고? 하는 듯 위를 올려다보니, 칵테일을 만들고 있던 짐인이 웃기다는 듯 민을 바라봤어.

 

" 민뉸기네. "

" .... " 

" 한 건 했다면서요? "

" 시발놈들은 참 남 얘기하는거 좋아해? "

 

짐인이 다른 바에 앉은 손님에게 칵테일을 마저 내려주고, 노래를 바꿔 틀었어. 제목은 sad sunset.

 

" 베가 시칠리아를 희상이 형 한테 아낌없이 그대로 부어줬다면서요. "

" 하기사, 그런 놈 한테 다 쓰기엔 비싸긴 했어. "

" 아이고 웃기다. 진짜. "

" 개새끼. 그 와인병으로 대가리를 깨놨어야 했는데. "

 

위스키를 한 잔 따라주자, 온더락의 얼음이 민망하리 만치 바로 비워버린 민은 정말로 아깝다는 얼굴로, 아까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어. 

 

" 그래서 누구예요? "

" 누구?! " 

" 와인을 괜히 붓진 않았을거잖아요? 옆에 누가 있었다면서요? "

 

민은 잠깐 제 손목시계를 보더니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어.

 

" 거기서 나온지 이제 삼십분 조금 넘었어. 근데 그 사이에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가 퍼져? "

" 원래 다 그렇잖아요. 민뉸기가, 애인이 있을린 없고. 뭐 아끼는 사람인가? "

 

 

 

석에 대한 이야기라면 할 말은 없었어. 

 

만난지 얼마 안됐고, 돈 벌려고 자신의 집에서 청소랑 운전을 하는 젊고 열심히 사는 대학생. 사실 그게 다지. 그 이야기를 중얼중얼 하자, 무슨 동화라도 듣는 어린애 같은 표정의 짐인이었어.

 

그러다가 그 자리에서 석의 행색을 보고, 무시하면서 자신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했던 희상이 이야기 까지 하면서 와인을  붓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게 되었어. 짐인이 앞에서는 예전부터 속 마음이 술술 나왔어. 그렇게 말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지. 결국 밥 이야기 까지 하고 말았어. 

 

" 내가 밥 먹자니까, 싫다고 하더라? 근데 지 친구가 전화오니깐 그 쪽으로 가서 같이 먹겠대. 아니, 참나.. 나 같은 새끼랑은 밥도 먹기 싫다. 그런건가봐. "

 

" 뉸기야, 사는게 무료하지? "

" ...뭐?! "

" 이 말 기억 안 나요? "

" ..... "

 

석찐이 출국하기 직전, 민에게 했던 말이었어. 곧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갈 사람이 갑자기 뒤돌아, 그에게 했던 말이야.

 

[ 뉸기야, 사는게 무료하지? 너 처럼, 부족한게 없어서 사는게 희미한 놈들은, 어디서 어떻게 뒷통수 잡힐지 몰라. 조심해. ]

 

뭔가 싶어서 그냥 무시하고 흘려보냈던 말이지.

 

" 갑자기 그 얘긴 왜 해? "

" 미뉸기, 뒷통수 잡혔네? "

 

짐인이 계속해서 웃자, 민은 속이 타기 시작했어. 결국 옆에 놓인 생수 한 병을 집어, 다 비우고 나서야, 먼 곳으로 흩어진 정신을 잡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감정은 요동치고 있었어. 

 

" ....궁금해. "

" 뭐가요. "

 

삶을 스쳐 온 많은 사람들 중에 크게 의미있던 사람들은 몇 없었어.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했지. 성적인 부분이 끌려 사람을 안을때에도 마찬가지야. 그냥 하룻밤이고 내일이면 안 볼 얼굴, 맡지 않아도 될 향기를. 

 

다시 생각나는, 누군가의 얼굴. 보고싶어서.. 알바건, 밥이건, 허접한 이유로 붙잡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이 잔상처럼, 이 곳의 조명에 녹아드는 것 같았어. 

 

" ...걘 날 별로 안 좋아해. 처음 날 봤을때 내가 거실에서 오럴 받고 있는 걸 봤거든. "

" .....아이구.. "

 

짐인은 저 형 어쩌면 좋아, 하는 심정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자 싶었어. 

 

" 그냥 돈 많은 양아치 새끼일걸. "

" ...그래서 뭐가 궁금해요? "

" .... "

 

민은 고개를 갸우뚱 했어. 

 

" 그 마음을, 잡고싶어. "

" 푸하하핫 "

" ... "

 

짐인이 웃으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입가에서 웃음이 나오는 걸 막질 못했고. 민은 이제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뒤로 몸을 기대며, 공중에 몸을 날리는 것 처럼 땅과 멀어졌어. 

 

" 민뉸기 입에서 저런 대사를 듣다니. "

" 왜 또 삼십분 내로 소문내지. "

 

그 무료하고, 잘난 민뉸기가 누굴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근데 아쉽게도 혹은 재밌게도 상대는 그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 푸핫.. 소문 안 내요. "

" .... "

" 진짜로요. "

" .... "

" 잘해줘요. 관심가는 만큼 잘 해주고, 예쁜 말 해주고.. 그럼 마음이 안 통할리가 있겠어요? "

 

 

민은 그렇게 짐인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 반하는 상대를 만나는거, 살면서 몇 없는 이벤트잖아요. "

 

민은 대리를 불러, 집으로 돌아왔어. 원래 둔감한 편인데 집으로 돌아오니 원래 집에서 느껴지지 않는 묘한향이 섞여있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집 안에서도 가끔 담배를 태웠기 때문에 좋은향은 아니었는데 석이가 환기 시키고, 탈취제를 뿌린 탓인지, 그런 익숙치 않는 것들이 느껴졌지. 민은 조용히 쇼파에 기대어 앉아서, 자신의 감정들을 침전 시켰어. 흙먼지들이 곧 자신의 아래로 내려가길 바랬지. 

 

왜 하루가 한달 같다는 말. 느껴본적 없는데 요 근래가 그랬었어. 그리고서 짐인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복기하고 있었어. 민은 테이블 위에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그냥 다시 원래 자리로 던져두었어. 그리고 벌러덩 누워버렸지. 남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해본적이 없어. 단 한 번도 그래본적이 없어서. 

 

" ..호섟이. "

 

조용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다른 이의 이름을 되뇌이는 일은 제법 쑥스러운 일이었어. 

민은 석에게 문자를 하나 남겼어. 썼다 지웠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몰라. 

 

[ 밥은 먹었어? ]

 

별 말 아닌 걸 적어두고, 한참을 머뭇거렸어.

전송버튼을 누르고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어. 초침소리 보다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지. 

 

[ 네. 먹었어요. 집엔 잘 들어가셨어요? ]

 

한 오분 뒤에 답장이 도착했어. 내용을 확인한 민은 그제야 푸스스ㅡ, 혼자 미소지었어.

 

밥은 누구랑 먹었어? 그 전화 온 친구랑? 보나마나, 허접한 곳 가서 별 거 아닌 거 먹었겠지. 그럴바에 나랑 좋은 곳 가서 좋은 거 먹지. 

 

하고싶은 말들이 폰을 잡은 손가락 사이로 넘쳐흘렀지만 아직은 못 할 말들이었어.

 

같은 시간, 민의 문자를 받은 석은, 민이 짐인에게 그랬듯, 친한친구 냄준에게 자신의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자신의 자취방에서 하룻밤 자기로 한 냄준이는 어깨 넘어로 민의 문자를 보더니 피식 웃었지.

 

" 그 사람은 무슨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도 찍냐? "

" 뭔 소리야. "

" 조심해. "

" 뭘. "

 

냄준은 젖은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면서 심드렁 하게 말했어.

 

" 너는 옛날부터 눈치가 너무 없어. "

" 뭐래... "

 

저렇게 온 몸으로 너에게 관심있어. 를 표현하고 있는 돈 많은 부자인 남자가 냄준의 귀에 좋게 들리진 않았어. 그들만의 리그.. 그런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 돈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치졸하고, 계획적이고, 속물적인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 그냥 다른 알바 구해. 늘 고수익인 일에는 그 만큼의 위험부담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왜 몰라? "

" .... "

" 그리고, 그 민뉸긴지 뭔지라는 사람도... "

" ...그 사람 취향까지는 뭐 나랑 상관없어.. "

" ? "

" 근데 그 사람,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냐. "

" 얼씨구. "

" 나도 진짜 바닥인 사람이었음, 다시 안 갔어. "

 

석은 베개 냄준에게 던지면서, 그만 잔소리하고 얼른 자. 하고 말았어. 베개를 잡아 든 냄준은 그래, 석이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어. 먼저 누워 눈을 감은 냄준과 달리, 석은 저녁의 일이 머릿속에서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어. 

 

그러니까, 민의 생각을 쉬이 지워낼 수가 없었어.

이상한 찰거머리 같은 남자임은 분명했거든.

 

드디어, 석이가 오는 날이었어. 민은 아침 댓바람 부터 일어나서 열시가 되기 전에 창문을 열어놓고, 부산스럽게 움직였지. 샤워를 정성껏하고, 밖으로 나와 드레스룸으로 가서 꾸민듯 안 꾸민 듯, 옅은 회색 린넨 셔츠에, 고급스런 재질의 면바지를 꺼내입고

여러개의 시계 중에 가죽소재로 된 것을 꼈다가, 집 안에서 시계를 끼고 있는건 너무 자연스럽지 않나? 고민을 수천번 하다가, 결국 다시 제자리에 뒀지. 그리고 크리드 향수를 꺼내 손목에 뿌렸다가, 너무 강한향은 아닌가 아차 싶었어. 샤워를 다시 할까?

 

그런데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고민을 계속 바보처럼 하고 있지? 마지막으로 왁스로 머리 매무새를 만지작 거리면서, 언제 현관문이 열릴까, 온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어. 

 

자신을 본다면 석이가 좋아하는 모습의 자신이었으면 좋겠어.

 

바락바락 악 쓰며, 작은 주먹 꼭 쥐고 열심히 사는 그 아이가, 미련 젖은 눈으로 자신을 봐줬으면 좋겠어. 그 생각까지 미칠때,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어. 민은 얼른 쇼파로 달려가서 잡지책 하나를 꺼내 읽는 척 했고, 가방을 벗으며 들어오던 석이가, 그런 민을 발견하고 짧게 인사했어. 그리고 이제는 익숙하게 청소를 하러, 욕실쪽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어차피 보지도 않았던 잡지책을 던지듯 내팽겨 치더니, 급하게 민이 석을 불렀어.

 

" 저기! "

" 네? "

" 오늘은 청소하지마. "

" 왜요? "

" ...내가 다 했어. "

" ...왜요...? "

 

반복되지만 의미가 다른 질문에 민은 또 쓴 입맛만 다시다가, 이젠 손짓까지 같이 하기 시작했어.

 

" 앉아봐. "

" ... 네. "

 

석이 어정쩡하게 쇼파에 와서 앉았어.

 

" 어... 그러니까.. 이렇게 집 까지 왔다갔다 하는 사이잖아. 너무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아서. 또 알아두면 좋잖아? 넌 이제 내 운전까지 하고. "

" ...아, 제가 뭐 따로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나요? "

" ...어.. 그게.. "

" 네. "

" ...그러니까. 나는 네가 좋아. "

" ...네? "

" ...아니!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좋다?! 뭐 그런 말이야. 열심히 살고, 밝고, 기죽지 않아서.. "

" ...네.. 감사.. 합니다. "

" 너는 어때? "

" 뭐가요? "

" 그러니까.. 이상향! 이럴지.. 혹은 이상형! 이랄지.. "

 

 

 

도통 그런 질문이 청소와 운전하는데 뭔 상관인지 연관성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지만, 뭔가 벽을 허물고 싶어하는 노력이 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 보지못한 모습이라 의아하고 새로웠어.

 

" 저는.. "

" .... "

" 뭐 딱히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

 

민은 맥이 딱 하고 풀렸어. 대화를 제 쪽으로 돌리는 것도 힘이들고, 대답마저 기대와 너무 어긋나버리는거야. 어쩌다, 저런 목석같은 애 한테 마음이 쏠린건지...

 

민은 쇼파 뒤로 등을 기댔어. 날이 좋아서 햇살이 그대로 거실에 쏟아졌지. 민은 시큰둥 했어. 그런데 석은 하얀커튼 뒤로 숨어드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입이 벌어졌지.

 

" 오늘 날씨 진짜 좋아요. "

" 그러네. "

" 음... "

 

석이 조금 우물쭈물 하다가 조금 쑥쑤럽게 답했어. 

 

" 잘 모르겠지만, 이상형이라면.. 이렇게 좋은날씨에.. 또는 좋은 걸 보면 제 생각을 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거 생각하면 좀 마음 따뜻하잖아요. 좋은 걸 보면서 절 떠올리는 사람. "

 

민은 석의 대답을 듣고 진심으로 할 말을 잃었어. 시공간이 멈추는 기분이었지. 석은 이제 청소할게요. 또 궁금한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으시고요. 하고 일어섰지. 

 

민은 뒤를 돌아서 자신이 열어 둔 창문 밖의 하늘을 봤어.

바다가 증발해, 하늘로 올라간 탓일까.

 

하늘이 무척 푸르렀어. 그러고 보면 하늘을 보면서 날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드물었어. 그냥 하루가 매일 비슷하니 그런 것에 대한 감흥이 매우 적었지.

 

민에게 석은 느낌표 같은 사람이 되었어.

 

민은 무릎 위로 팔을 올려 턱을 괴며, 그 저녁때 일을 생각했어. 그렇게 너에게 밥을 먹이고 싶었던 것.

 

" 저기!! "

" 네에?! "

" 나랑 점심 안 먹을래..? "

 

민이 용기없이 물었어. 돌아 올 대답이 뻔하니까.

 

" ...바쁘면.. "

" 좋아요. "

" ... 그래.. "

" ... "

" ...진짜?! "

" 네. "

" 어어.. 그,그래. 하.. 할 일 해. 내가 잘 아는 집이 있거든. "

 

민은 그때부터 종로부터 용산 그리고 가로수길 부터 강남까지 자신이 알고있는 가장 좋은 식당을 머릿속으로 훑기시작했어.

 

어디를 가야, 제일 좋을까. 특별한 사람을 데리고 간다고 생각하니, 오류라고 걸린 듯 괜찮아 보였던 식당도 다 별로인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뭘 좋아하지? 내 맘 대로 정해도 되나. 혼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버린 민은, 고심 끝에 하나의 레스토랑을 생각해냈어. 거기라면 석이가 좋아할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났어. 

 

모르는 시간에, 또 모르는 내가.

 

해가 떠서 맑았지만,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이 어느새 내리는 비에 젖어 촉촉해지고 있었어. 석이가 청소를 하는 두 시간 동안, 민은 무심한 척,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지. 시뮬레이션을 그리듯,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함께하고 싶었거든. 석이가 마무리하고 도구를 정리할 때 쯤에는 마음에 긴장감이 스몄어. 청소를 다 하면 쏜살같이 그냥 나가버리던 애가, 가방을 쥐고서는 가만히 민을 바라보았어. 민이, 아 밥 먹으러 갈까... 어색하게 운을 띄우며, 같이 집을 나서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지.

 

민이 자연스레 운전석에 키를 꽂자, 석이 다급하게 말했어.

 

" 운전 제가 해야죠! "

" 어..?! "

" ....아... "

 

민은 제 손이 쥔 키를 바라보다가, 그냥 차 문을 열고 본인이 운전석에 앉았어. 뭔가싶어 일단 조수석에 따라올라서,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니, 민은 앞으로 얼굴을 고정 시킨채 느릿하게 말했어.

 

" 그냥, 내가 밥 먹자고 했으니, 내가 운전할게. 어차피 넌 길도 모르잖아. "

" 네비게이션 있잖아요? "

" ...됐어. "

 

핸들을 돌리며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와서 도로를 타기 시작했어. 석이는 유리라도 뿌린 듯 반짝이는 한강 위를 잠깐 넋을 놓고 바라보았어. 사실 지방출신에게 서울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란 제법 신기한거야. 늘 지하철에서 졸거나 또 버스를 타더라도 그 안에서 책을 본다던가, 시간을 쪼개 급하게 무언가를 외우곤 했었거든. 

 

없던 여유가 스미는 느낌.

 

" .. 저 대교 이름 다 외우세요? "

" 외우지. "

" 저 다리는 이름이 뭐예요? "

" 한남대교. "

" 와... "

 

밖의 풍경 쪽으로 몸을 완전히 밀착시켜서 어린아이가 처음 놀이공원이라도 간 듯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창가에 비춰보였어. 곧 도착하자 민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레스토랑 매니져는 그를 알아보고, 예약 된 자리로 안내해주었어. 자리에 앉은 석은 점심치고는 부담스러운 인테리어를 둘러보더니, 자신이 입은 옷을 한 번 내려다봤어.

 

익숙한 듯 민이 먼저 메뉴를 정하고 곧 음식이 나왔고, 석은 조금 불편감을 숨길 수 없어서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손도 같이 얼덜떨해졌어. 

 

" 편하게 해. "

" ... "

" 내가 불편해? 아니면 여기가 불편해? "

 

그렇게 안 생겨서 참 모든 말과 질문이 직진인 사람이라 생각했어. 석은 조금 체하는 기분이 들어서 물을 조금 마셨어.

 

" 아니... 그냥요. 점심치곤 너무.. "

" 아, 미안해. 먼저 물어볼 걸 그랬다. "

 

식사의 모습은 이상했어. 한 명은 불편한 듯 음식을 먹고 있었고 맞은 편 상대는 턱을 괴고 앉아, 그걸 감상하듯 바라바고 있었어. 석은 대화도 없이 지긋하게 다신에게 닿는 민의 시선이 어쩐지 집요하다고 생각했어.

 

" 왜 자꾸 보세요. "

" 예뻐서. "

" ...남자한테 예쁘다고 하는거 실례예요. "

" 그치만 사실인데. 나 거짓말 못 해. "

" 밥은 왜 안 드세요? "

" 배 안 고파. "

" 점심 먹자고 하셨잖아요. "

" 너 사주고싶어서. "

 

석이는 불쾌해졌어.

그래서 자신도 그처럼 솔직해 지기로 했지. 사실 거짓말 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 ...제가 불쌍해요? "

" 어? "

" 그래서 자꾸 과한 돈에, 과한 식사 대접해 주세요? "

" .... "

" 안 그러셔도 돼요. "

" 야. "

민에게 따라다니는 오해야 늘 상 있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어. 모르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에 본인의 심중이 흔들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문제는 좋아하는 상대방이 그런 말을 듣고 오해한다는 건, 두렵고 본인의 맘도 상하는 일이었지.

 

" ...오해하지마. 그런거 아니야. "

" 그런게 아니면, 그러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

" ..... "

" ....죄송해요. "

" 살면서 누구한테 먼저 밥 먹자 말 해본 적 없어. "

" ...네? "

"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하지만. "

 

석이 그제서야 피해다녔던 시선을 민에게 고정 시켰어. 아름다운 오후라고 생각했어.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세상 모든게 알맞게 돌아가는 기분.

 

" 나는 돈이 많고, 시간도 많아. "

" ... "

" 나는 지금 네가 필요한 것 같아. "

" 저기... "

" 네가 돈이 필요하다면 나는 나한테 차고 넘치는게 돈이니 너한테 주고싶어. 대신 네 시간이 필요해. "

" .... "

" 온전히 네가 필요해. 친구 전화에 나를 두고 뒤돌지 않았으면 해. "

석은 왜요? 라고 묻고싶었지만 돌아올 대답이 본인이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어. 세로로 가늘게 뜬, 만난지 얼마 안 된 남자의 속은 미로처럼 어지럽게 느껴졌지만, 명확해 보이는 출구 속에 자신의 이름이 걸려있다는 걸 알았거든.

 

" 너는 나를 이용해도 좋아. "

" 저기... "

" 사실 그래줬음 좋겠어. "

 

민은 그제야 웃더니 '진심이야'를 덧붙였다. 석은 더 이상 무언가를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포크를 내려놓고, 잠깐 창밖을 봤을때 자신의 얼굴을 또 빤히 보는, 민의 눈동자에 묘한 구속감이 느껴졌어.

 

뭐, 자기가 드라마 재벌2세 주인공인가. 뭐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그거 따라하는건가...

석은 얼른 자리를 정리하자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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