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기도의 은혜와 능력 1, 정원

반응형
728x170

2학년 때 영선이를 따라 자대 4층 기도실을 다닌 이후

다시 한 번 방언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 귀한 책이다.



방언기도의 은혜와 능력. 1

저자
정원 지음
출판사
영성의숲 | 2012-05-2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당신이 아직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부디 사모하시기를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

방언기도는 영감을 일으킨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영감이 예민해집니다. 방언통역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주님께 무엇을 묻거나 주님의 음성을 기다릴 때 어떤 메시지가 강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전혀 모르거나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방언을 해도 그러한 감동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통한 영감은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우쳐주는 것이지 새로운 계시나 지식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 평화를 경험하면서 나는 그때까지 너무나 많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완전한 평화를 모르고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영의 흐름과 소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

능력이 임할 때 거기에는 책임이 있으며 조심하지 않으면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부족하고 낮은 마음이 부족한 사람이 권능을 얻게 된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칫하면 재앙의 도구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

나에게 은혜가 임하고 그 은혜가 나를 사로잡았을 때 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느꼈습니다. 은총이 임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인을 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나의 사람이다. 내가 이 사람을 보호한다. 아무도 이 사람을 건드릴 수 없다.'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

(별표)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주님을 누리며 주님이 시키시는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인생에서 최고의 거치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하신 분이신지 알게 된 이후에 기도보다 더 내 마음을 뛰게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


-

기도에는 단계와 과정이 있는데 묵상기도와 같은 것은 깊은 기도이며 수준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발성기도로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면 영이 눌리기 쉽습니다. 나에게는 발성의 훈련이 거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부르짖고 발성하고 그렇게 나아가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영적인 세계는 경험이 없이 논리나 상식이나 추론에 의존해서 결론을 내리면, 당시에는 맞는 것 같지만 실제의 경험 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경험자에게 배우는 것은 아주 귀한 일인 것입니다. 


-

방언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의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악보가 있을 때 연주자가 그것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크게, 작게, 빠르게, 천천히, 강하게, 부드럽게 연주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악보를 따라서 연주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속에서 일어나는 영의 소리, 영의 감동은 겉사람의 마음에 속한 것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겉사람의 인격처럼 거칠고 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은 방언을 하면 할수록 풍성해지고 충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성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지적해주고 새로운 영감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계속 방언을 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영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감! 예술가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영감이라니!!!!! 유레카)


-

방언을 하면 할수록 내안에서 일종의 네비게이션 같은 장치가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지시하고 만약에 바른 위치를 이탈하면 속에서 경고메시지가 뜨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충동이나 감동은 엘리야가 기도할 때 일어났던 작은 손만한 구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작고 미세한 느낌이었고, 얼마든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신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귀를 기울이면 그 작은 구름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나는 차츰 이 내적인 감각이나 신호가 성령께서 나를 사로잡으시고 순종시키시는 훈련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차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막으시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시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서 입술과 혀를 주님께 의탁해서 그분이 우리를 지배하시는 것이 증가되도록 해야 해. 그렇게 우리가 꾸준히 성령과 협력할수록 그 영의 역사가 증가되는 것이지 한 순간의 일방적이고 강권적인 체험을 통해서 우리의 영이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야"


-

나는 헌신과 자아포기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님이 은총을 베풀어주실 수 있으며, 은총의 경험 후에도 지식이나 헌신도가 저절로 증가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세속적인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사적인 경험과 영적 성숙도는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은혜의 길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예상하고 선택하는 것은 각자 본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지만 기존세력과의 갈등을 원치 않으며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 것도, 또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도 개인이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은혜의 길을 경험하고 주님과의 새로운 친밀한 관계를 사모하고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그 길이 쉽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며 적지 않은 갈등과 분쟁과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성령은 결코 우리의 의지를 억압하고 일방적으로 운행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사모하고 헌신하는 만큼만 우리를 사로잡으십니다.


-

생각이란, 기도에 있어서 장애요인이 될 때가 많이 있습ㄴ다. 생각은 영의 영역이 아닙니다. 생각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하면 영의 기능이 막히게 되어 기도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

강력한 소리로 성경읽기를 훈련하라

말씀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고 묵상하는 것과 소리를 내어서 읽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분명하고 강한 소리로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은 우리의 영을 활성화시킵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말씀의 영, 기운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합니다.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것과 속으로 기도하는 것은 여으이 자유함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은 다 소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소리를 내는 것을 통하여 영의 움직임, 흐름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성경의 저자는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과 숨결이 있는 성경을 큰 소리로 읽을 때 그것은 우리의 영을 뜨겁게 하고 감동시킵니다. 시편에는 기도문이 많이 있는데, 시편의 기도문을 본인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뜨겁게 읽는 것은 영을 충만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온도를 뜨겁게 올라가게 합니다. 


-

누구나 그 안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안에 영이 있으며 그 영은 그들의 겉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겉사람에는 자아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그들의 깊은 속에 있는 영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안에 자신이 알지 못할 뿐,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영이 갇혀 있고 깨어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바깥으로 나오게 되면 누구나 하나님을 간절하게 사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문화사역! 그리고 내 옛날얘기 듣는 느낌 ㅋㅋ)


-

방언은 자기 영의 상태를 보여준다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 차분한 상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방언의 경험이 많은 이들은 사람들의 방언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영적 상태나 감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혼이 강할 때 주님께 굴복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경험하고 통과할수록 지적인 사람은 자기의 생각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정서적인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따르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려고 합니다. 의지적인 사람은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사람의 혼은 많은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 비로소 낮아져서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게 됩니다. 

의지가 발달한 이들은 열심히 비전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의지가 주님께 드려지지 않았을 때는 거칠고 사납고 공격적인 열매들도 같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 이렇게 혼의 기질들은 그것이 주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기질적인 우상이 되어 주님을 방해하고 영을 방해하게 됩니다. 어떤이는 이성이, 어떤 이는 감정이, 어떤 이는 의지가 주님과 영을 방해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의 이성으로 완저니 이해되고 납득될 때까지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정이 흥분될 때까지 주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막으셔도 자기 의지와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이것이 혼이 강한 사람들이 주를 잘 따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밤에 쉬는 것은 몸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쉬는 것은 의식입니다. 생각의 활동이 멈춥니다. 이성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혼이 활동을 멈추고 안식하면 영이 일어나 영계의 에너지를 수신합니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이 휴식이 됩니다.


-

방언글씨

방언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 있으면 방언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종이에 펜을 잡고 있으면 손이 저절로 움직여져서 글씨가 되곤 했습니다. 글씨의 모양은 영어 필기체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우와 신기 나도 해보고 싶다)


-

생각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머리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자기를 끌고 다닙니다. 이들이 기도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지금 할 필요가 없는 생각이 갑자기 그를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를 멈추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갑니다.

(와 조심하자)











반응형

Nowhere Cafe

삶을 풍요롭게하는 덕질을 추구합니다

    이미지 맵

    Library/Book 다른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