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단편 4개 모음 - 별을 먹는 토끼,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지민 X 정국)

반응형
728x170

남준 x 슈가 세기말 세계관 비밀요원 디스토피아 TXT #랩슈 #rm #suga

 

남준 x 슈가 세기말 세계관 비밀요원 디스토피아 TXT #랩슈 #rm #suga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Culture/Music 슈홉 19금 타래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txt 슈홉 19금 타래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txt 슈홉 단편 3개

blessingyear.tistory.com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Culture/Music

 

슈홉 시대물 사극 미래에서 기다릴게 - 슈가 X 제이홉 #sope #jhope #suga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6:09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blessingyear.tistory.com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래 txt 슈가 X 제이홉 #sope #suga #jhopeCulture/MusicNowhere Cafe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5:29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

blessingyear.tistory.com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래 txt 슈가 X 제이홉 #sope #suga #jhopeCulture/MusicNowhere Cafe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5:29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래 txt 슈가 X 제이홉 #sope #suga #jhope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5:29 BTS 방탄 프사 인장 헤더 아트워크 모음 - LOVE YOURSELF Tear HEADER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2:26 선택 안

blessingyear.tistory.com

 

뷔국 Vkook 첩보물 전력 & 고전 사극물 -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었다

뷔슙 좀비물 TXT & 방탄 슈가 대취타 믹스테잎 2차 창작물 모음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6 18:32 뷔슙 좀비물 TXT & 방탄 슈가 대취타 믹스테잎 2차 창작물 모음 미친거 아닙니까 솔직히 이거 무슨 영

blessingyear.tistory.com

 

뷔슙 좀비물 TXT & 방탄 슈가 대취타 믹스테잎 2차 창작물 모음

미친거 아닙니까 솔직히 이거 무슨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 오조오억개....... 생얼도 잘생긴 존잘 뷔 김태형 얼굴 위주 움짤 모음 스압 BTS 방탄소년단 GIFCulture/MusicNowhere Cafe2023-01-26 18:38 선택 안됨 R

blessingyear.tistory.com

 

슈홉 제이홉 X 슈가 - 도슨트 호석 도둑 윤기 설정 #jhope#suga

호섟이 미술관 도슨트로 일하는데,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브아피 방문으로 당장 내일 아침까지 자료 준비할게 있어서 갑작스레 야근을 하고, 뻐근한 목 주무르며 홀로 나오는 중간에 완전 무장을

blessingyear.tistory.com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

[랩진] 그래서 결혼식 날짜가 언제라고? 본보 브이라이브 vliveCulture/MusicNowhere Cafe2020-08-13 19:48 선택 안됨 #민윤기 #셀카반반 /아미 실검 축하해주는 #민윤기 / #앙팡맨 #전정국 #팬싸인회 / #김남준 #

blessingyear.tistory.com

 

[지정] 우리 형



ㅡ정국아, 형은 있잖아.







형은 꼭 서두가 길었다. 대부분 반박 한 번 못 할 잔소리 따위의 말을 할 적 마다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정국아 부르는 목소리에 결국 저에게 귀 기울일 것을 아는 똑똑한 사람이라.



나는 그네에 앉아 투정처럼 발을 구른다. 아무 말도 듣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귀가 떫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듣기 싫다는 말이었다.







ㅡ형은 네가 내 동생이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안개처럼 깔리는 목소리마다 짙은 술냄새가 났다. 멍한 눈빛부터 흐린 마지막 음절까지 형 다운 것이 하나 없어 나는 자꾸만 형이 낯설었다. 교복 타이 한 번 빠트린 적 없는 형에게서 보이는, 참 많이도 생소한 모습...







ㅡ형 술 마시니까 이상한 소리 한다.

ㅡ정국아.



ㅡ네가 동생이 아니었다면,



ㅡ내가 이 마음을 어떻게 다 감당 했을까, 그치...







쇠냄새 푸른 그네의 줄을 꽉 쥔 형이 모래처럼 푸스스 웃는다. 절레절레 가로젓는 머리칼마다 숨겨둔 진심이 파스스 떨어져 나온다. 나는 각질같은 형의 말들을 하나씩 제 맘으로 줍는다.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형.



우리가 친형제가 아닌 것은 코흘리개 적의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형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나의 형으로 꽁꽁 붙들어 매고 있어.







내가 형의 동생이 아니게 되면,

그 때의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슬리퍼 앞으로 비죽 나온 발가락이 시려웠다. 형의 표정이 새벽녘처럼 서늘하게 가라앉은 탓이었다.






\

안녕하세요! 글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댓글 남겨요ㅠㅡㅠ 첫 문장부터 정국이의 독백..,, 첫 문단부터 정말 너무 좋았어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지민이와 듣기 싫다며 발을 구르는 정국이.. 진짜 둘의 분위기가 쫙 저에게 스며들면서 너무 좋았어요.. 정국이가 저의 이름을 부르는 지민이를 보고 똑똑하다고 표현한 점도 진짜 좋았구요 또 '귀가 떫다' 라는 표현에 진짜 감탄했어요 그리고 지민이의 취중진담.. 취중진담이라는 표현이 맞을까요, 술의 힘을 빌려 현재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부분이 진짜 인상 깊었어요 대사 끝의 '그치... ' 가 제 마음을 더 치고 간 것 같아요... 그리고 쇠냄새 라고 시작되는 문단은 정말 진짜 하나 빠트릴 것 없이 너무 좋아요 모래처럼 웃는다 머리칼마다 숨겨둔 진심 각질같은 형의 말들을 하나씩 제 맘으로 줍는다 ..... 아 진짜 너무 좋아요ㅠㅡㅠ 반달님의 표현법에 항상 감탄하곤 했었는데 이 문단에서 정말 또다시 감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하면서 형제가 아니면? 을 가정해보는 부분도 진짜 좋았어요 정국이의 마음이 약간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맨 마지막 문단, 결말도 글의 분위기처럼 담담한 듯 차분하게 표현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ㅠㅡㅠ 정국이의 슬리퍼 라는 부분에서 둘이 어떻게 그네에 앉게 되었는지 앞 상황을 예측해보는 것도 재밌었구요.. 지민이가 정국이를 불러냈을지, 늦는 지민이를 정국이가 마중 나간 건지 두 상황으로 생각해봤는데 어느 쪽이든 좋았어요.. 쓰고보니 좋았다라는 말 밖에 없네요.. 근데 진짜 너무 다 좋았어요ㅠㅠ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제가 밉습니다..,, 반달님을 기다리게 하는 버스를 미워해야 할지, 덕분에 좋은 글을 만나게 되어서 버스를 칭찬해야 할지 약간 혼란스럽네요 부디 안전하게 버스 타셨기를 바라고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남은 주말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나는 요즘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해.

 

아, 무작정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게꼭 정국이 같다. 라고.

 

반달발을 딛는 오르막이 미끄러웠다. 며칠 내내 쏟아지던 눈이 먼지가 잔뜩 낀 채로 딱딱하게 굳어 종종걸음을 해야만 하는 계절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젠 정말 연탄재라도 부셔야지 이거 안 되겠네. 뽀얀 입김 사이로 혼잣말이 중얼 숨결처럼 터져 나온다. 아직도 집까지는 한참이었다. 앞으로 몇 발자국을 더 헛디뎌야 집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 배고프다. 계란 넣은 라면이 먹고 싶어. 이런 의미 없는 생각을 마흔 여덟 번 정도를 더 반복하면 아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지민이 사는 곳은 어둠이 이르게 찾아오는 동네였다. 다른 곳보다 태양과 가까운 곳임에도 그랬다. 달과 별과도 다른 곳보다 가까워서 일까. 생명을 다 해가는 가로등 불빛이 위태롭게 깜빡이고, 사람들은 모두 연탄의 열기가 들끓는 집안으로 일찍이 숨어 들었다.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길고 고독한 어둠을 견디기 위해 준비를 한다. 벽이 얇은 집집마다서 비집고 나오는 왁자지껄한 TV소리가, 주파가 약한 라디오 소리가 지민의 깊은 밤길을 함께 했다. 그럭저럭, 지민은 외롭지 않다 생각할 수 있었다.아까도 말했듯 완연히 어둠이 가라앉은 시각에 이곳에서 사람을 마주치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음 그래, 조금 달랐다. 한 눈에 봐도 이곳이 초행길인 하얀 물체가 서 있는 곳에서 한 바퀴 원을 빙글 그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기 때문에. 입김이 어둠을 조각조각 가르는 이 추운 날, 고작해야 하얀 후드셔츠만 하나 입은 채로 시선을 배회하던 그 인영이 문득 지민을 마주한 곳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감추지 못한 반가운 발걸음을 주춤거리며 살살 옮긴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히, 하지만 정확히 지민을 향해서.      

 

“여기가 어디야?”“네?”아마도 그저께였나, 밤새도록 펑펑 내리던 소복한 눈처럼 경쾌한 목소리가 지민을 향해 쏟아졌다. 전혀 의중을 알 수 없는 물음표 가득한 질문을 안겨주면서. 지민이 금방 답을 찾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상대의 새하얀 목소리가 다시금 고요한 골목을 울린다.“여기 이름이 뭐냐구.”“여기… 이름 같은 거 없는데. 그냥 달동네지.”“아, 됐다. 찾았다.”갈수록 의미 모를 말을 하는 말간 얼굴은 주홍빛 가로등 아래서도 하얗게 빛이 났다.

사방의 모두가 낡은 다홍으로 거칠게 물들어 갈 때, 혼자만은 달빛에 듬뿍 물든 것처럼. 그 와중에도 발갛게 얼어버린 코끝은 꼭 알록달록. 그래,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있잖아. 나 길을 잃었어.”“….”“그래서 우리 집을 찾아야 해.”아니, 정말로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일지도.뭐랄까, 지민은 제 눈앞의 소년이 마치 계절감을 상실한 어린 왕자 같다 생각했다. 사방이 얼어붙은 겨울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으면서도 추운 줄도 모르는 듯 모락모락 따뜻한 입김으로 휘감긴 온도와, 아무리 생각 해 봐도 스무고개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것이 꼭 어른인 지민에게는 닿을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그 순간 지민은 아주 당연하게도 생각했다.  너는 아마,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에서 달려 나온 아이일 것이라고.

 

 

* * *

 

 

같이 갈래? 혹은 같이 갈래! 따위의 대화도 없이 둘은 자연스레 함께 걸었다. 미끄러운 좁은 길을 굳이 나란히 걸으며 소년이 꺼낸 이야기는 순간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달에서 왔어. 거기가 우리 집이야.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가는 목소리에는 아무리 의심을 하려 해 봐도 진심만 가득이었다. 말했지 않은가. 이 소년은 너무도 당연하게 동화 속에서 달려 나온 아이 같았다고.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 자신이 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러다 어쩌다 지구까지, 그리고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농담이나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저렇게나 열심히 조잘거리는데.“그래서 네가 달에서 왔다고?”“응. 그래서 달을 찾아 온 거야.”“그런데 왜 여길 와?”“여기가 달이라고 했잖아. 달동네.

 

”달을 찾아 달동네에 나타난 소년. 이곳에 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로 연거푸 허탕을 치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몇 번이고 달의 발자취를 물어 여기까지, 그리고 지민에게까지 빛 그림자를 주렁주렁 달고서는 닿은 것이었다. 드디어 달을 찾았다는 듯 개운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서는. 지민은 소년에게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적당한 언어가 없어 발길 만큼이나 침묵은 더 길어졌고,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골목길은 두어번 정도 더 발을 헛디디게 했다. 지민이 헛디디면, 소년도 따라 헛디디며. 백서른여섯걸음, 백서른일곱걸음. 그렇게 하늘까지 닿을 것 같던 둘의 발길이 드디어 멈춘 곳은 동네의 끝자락이었다.

 

그저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이유로 덩그러니. 새카만 밤으로 이불을 덮은 동네가 곧 잠에 들 듯 고요히 눈앞에 펼쳐졌다. 아래로는 다닥다닥 작은 집들이 붙은 지민의 동네가 가득이고, 위로는 까마득한 아랫동네보다도 한참이나 더 넓은 하늘에 빛나는 달 하나가 겨우 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가림 하나 없이 모두 소년의 눈에 담긴 채로. 아래 위를 훑는 소년의 눈동자가 분주하다. 낯설고 신기함을 담뿍 담은 시선으로. 이내 하늘 위로 한참을 머무르는 눈빛을 보며 지민이 답을 알려주듯 입을 열었다.

 

“저게 달이야.”“….”“저기가 너희 집인데 너무 머네.”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하염없이 밤하늘을 시선으로 붓질했고, 그 위로는 가느다란 달을 두 눈 가득 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숨소리도 미동도 느껴지질 않아 지민은 순간 이대로 이 아이가 떠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달에 산다며. 그럼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소년은 한참이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눈을 깜빡, 깜빡. 시선을 쪼개가며 달을 바라보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지민이 추위에 얼어버린 입을 열어 소년에게 입김 쏟아져 내리는 말을 걸 때까지 마냥 우두커니 서서.“너 이름이 뭐야?”

 

그제야 고개가 지민에게로 돌아온다. 왠지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소년의 얼굴은 담담했다. “나? 나는 토끼야.”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마침표가 너무도 명확해 지민이 할 말을 잃자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냥 토끼야. 이름 같은 건 없어.”“….”“이것 봐. 나는 진짜 그냥 토끼인데.”소년은 쓰고 있던 후드를 젖히고서는 폭신해 보이는 머리칼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새카맣게 쏟아지는 머리칼을 헤집듯 만지더니 무언가를 돌돌돌 펼치듯 꺼냈다. 입고 있는 옷 만큼이나 새하얀, 그것은 분명 토끼 귀였다. 이제는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그리고 너무도 잘 어울리는 토끼 소년.

 

지민은 그저 적당한 반응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을 뿐이었는데 되레 양 쪽 귀를 활짝 펼치고선 끄트머리를 쥔 손이 팔랑팔랑 제 귀를 흔들어 보이던 소년이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이게 아닌가, 방황하는 눈이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이 곳에서 지내려면 역시 이름이 있어야 할까?”“….”“그럼 저걸 이름으로 하는 건 어때? 다국? 정약? 정국?”제 귀를 양 손으로 꼭 붙든 채로 한 곳에 머문 소년의 시선을 따라 지민이 고개를 돌렸다. 아랫동네에 꺼지지 않은 낡은 간판들 사이에서 [다정 약국] 네 글자가 유독 짙녹색으로 빛나고 있던 참이었다.“그냥 정국으로 하자… 정국이로 해, 너.”그렇게 소년은, 너는, 내게 정국이가 되었다.

 

* *

 

정국의 생활은 정말 지민의 것과는 달랐다. 잠자는 자세부터 해서 수면 시간, 씻는 방법까지. 웅크려 엎드린 채로 잠든 정국이는 불편하지도 않은 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귀만 옴싹 거릴 뿐. 그렇게 꽁꽁 숨겨 두던 귀는 긴장이 풀리면 감출 수 없는지 잠만 들었다 하면 카펫이 깔리는 마냥 바닥으로 도르르 흘러 나왔다. 축 처져서는 바닥에 가득 흘러있는 토끼 귀가 제법 컸다. 지민은 그 귀를 밟지 않기 위해 넓지도 못 한 방 안을 까치발을 딛고 살금이며 움직여야 했다.  정말 토끼 같기도, 혹은 정말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지민은 생각했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낯설게 느낀 것은 “밥 먹어.”“난 이런 거 안 먹는데.”역시 밥을 먹는 것이었다.살아있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곤히 하루 내리를 자던 정국이 이틀 째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을 때, 지민은 출근 전에 일어나 다행이라며 서둘러 밥을 차렸다.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밥이라도 잘 먹여야겠다 싶어서.

 

평소 같으면 대충 라면으로 때웠을 식사도, 어젯밤 메뉴까지 고민 해 끓여놓았던 찌개와 하얀 쌀밥, 단정하게 자른 김이며 김치 같은 것들로 제 딴에는 한 상 가득 내왔다. 특별할 것도 없긴 하지만 나름 정성들여 내 온 밥상 앞에서 정국의 대답은 칼 같았다. 못 먹는 것도 아니라, 안 먹는다며.“그럼 넌 뭘 먹는데?”아무래도 정국이 살던 곳은 밥을 먹는 것도 다른 걸까, 섭섭할 틈도 없이 질문이 먼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렇다고 마냥 굶길 순 없잖아. 지민이 일을 나가면 정국은 하루 종일 먹지도 못 한 채 있어야 할 테니까. 가능하다면 정국에게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었다. 물론, 정국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고.“나는 별을 먹고 살아. 그 곳엔 그것 뿐 이니까.”허무할 틈도 없이 지민은 생각했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고. 어릴 적 동화책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조잘거리는 저 얼굴을 보면서. 지민이도 알지? 반짝반짝 빛나는 거 말이야. 별. 반짝반짝 을 말하며 손까지 흔들흔들 해 보이던 정국은 잠시 저 혼자서 별을 떠올려보나 싶더니 피식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순간 아무것도 담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에 별을 한가득 끌어안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별들은 해치면 안 돼. 그래서 빛이 꺼진 별들을 주우러 다녀.”정국은 매일을 어둔 별을 모으는데 시간을 보냈다. 빛이 사라진 별 앞에서 반짝이던 너의 삶을 위해 잠시 기도를 하고, 우주 먼지가 잔뜩 낀 별을 툭툭 털어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둘러 멘 주머니에 별을 수북이 쌓으며 정국은 다시 별무리 진 은하수를 총총 뛰었다.그렇게 불룩 찬 주머니를 끌어안은 정국은 보통 수놓아진 오로라의 색이 춤을 추듯 바뀌는 것을 구경하며 별을 먹거나 빠르게 스치는 소행성이 저어 멀리까지 꼬리를 그리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며 오독 별을 씹었다. 오늘은 네 개만 먹자. 내일 소풍 나가서 일곱 개 먹을 테니까! 빠르게 집어 삼켜지는 혼잣말이 정국의 말동무였다. 금세 사방이 적막해 지는 것을 느끼며 정국인 더 힘차게 별을 씹었다. 오독오독.그렇게 별을 삼키고 손에 잔뜩 묻은 별가루를 탈탈 털어내고 나서야 우주 어딘가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돌아가는 길에도 또 다른 별을 주머니 가득 줍길 바라며.이제, 집에 가야지.    “여긴 별은 없지?”“아무래도…?”마음만큼 해 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네. 지민인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으로 맴돌 듯 떠올렸다. “괜찮아. 그동안 많이 먹어둬서 한동안은 괜찮을 거야.”ㅡ마지막 날엔 별을 일곱 개나 먹었거든.ㅡ그리고 거짓말처럼, 정국인 그런 지민에게 대답을 해 주었고.

 

* * *

 

별을 먹는 토끼라. 별을 먹는 토끼에겐 무얼 먹여야 하지. 구루마에 박스를 잔뜩 싣고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정리하는 지민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과자 코너의 물건들을 보면서 이게 별 맛이랑 비슷하진 않겠지 괜한 생각도 해 보고, 그래도 이건 별이 아니어도 토끼가 좋아하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고. 반나절을 꼬박 마트에서 보내야 하는 지민의 하루에는 순간순간 마다 온통 고단함뿐이었는데, 오늘은 그것을 알아차릴 새도 없었다. 정국이의 별을 생각하느라. 온종일 고민 해 보아도 결국 답은 찾을 수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자, 여기.”대신 대책은 찾았지.“이게 뭐야?”얼굴이 발갛게 얼어서 들어오는 정국이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기도 전에, 연탄불로 뜨끈하게 데워진 낡은 장판에 끌어다 앉혔다. 일단 입부터 벌려봐. 아ㅡ 하고 의심 없이 벌어진 입에 자그마한 무언가를 집어넣은 지민이 입을 친절하게 닫아주면서 남은 것을 정국의 장갑 위에 올려 준다. 오물거리던 입이 한 박자 늦어서야 제 손에 얹어진 것을 궁금하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게 뭔데? 꼭 눈으로 물으며. “별.”지민이 찾은 대책이라는 것은, 사실 조금 유치하지만, 뽀빠이 과자 안에 들은 작은 별사탕 이었다. 그래도 이게 가장 별 답고, 또 별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지극히 지구에, 그것도 대한민국에 사는 인간의 편협한 사고이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정국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별사탕을 씹는 정국을 보는 지민의 눈이 기대에 가득 차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정도로 간절하게.“이건… 너무 작은데. 그리고 가짜별이잖아.”꿀꺽 삼키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얼굴이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살짝 울상이 되었다. 정국의 표정을 따라 지민의 표정도 함께 울상이 되어버리고. 둘 다 울적한 얼굴을 하고서 한숨을 내 쉬는데,“가짜별도 안 돼? 그럼 이거 치울까?”“아… 아니!”“….”“머… 먹지 뭐. 생긴 건 제법 닮았으니까!”아아, 아니구나. 이내 지민의 얼굴에 어렴풋한 미소가 어린다. 세상 모두가 잠든 짙은 밤하늘마냥 고요한 웃음. 정국이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았으니까.난생 처음이었다. 이런 것이 달콤함이구나. 먼 우주로까지 여행을 다녀왔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들었던 그 달콤함이라는 것이, 사실 지구에 있는 이 별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온 몸 가득 진하게 퍼지는 기분에 귀가 쫑긋 솟아버릴 뻔 했다. 이곳은 너무 좋은 곳이야. 별이 아니어도 예쁘고 맛있는 것이 있어. 정국은 제 손에 소복하게 올려 진 별들을 꼭 말아 쥐었다. 너무도 소중한 것이라는 듯이. 마음 가득 기쁜 선물이라는 듯이.

 

 

* * *

 

 

정국은 지민에게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배웠다. 손으로 비벼대기만 하던 세수를 물로 하면 더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과, 별사탕에는 사실 하얀 별들만 있는 것이 아님을. 정국이 아침에 나가 밤늦도록 돌아다니다 들어오면 지민은 꼭 선물처럼 별사탕을 가득 준비해 두었다. 그 별을 오독오독 주워 먹으며 오늘 하루는 무얼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둘이 유일하게 마주하는 하루의 끝이었다.“너는 나가서 하루 종일 뭐 해?”“걸어 다녀.”“….”“집에 가야 하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집으로 가는 길이 보일 것 같아서.”그런데 오늘도 못 찾았어. 실망한 눈치는 아닌 담담한 말투 아래에서는 초록색 별사탕은 옆으로 골라내며 하얀 별만 골라 먹느라 분주한 손이 보였다.“이 별은 못 먹겠어.”“왜? 맛은 똑같아.”“꼭 살아있는 별 같아.”결코 공감할 순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대답이라 지민은 차마 받아치질 못 했다. 얘네는 나중에 하얘지면 먹을게. 하는 목소리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오늘 사온 마지막 뽀빠이 봉지를 뜯으며 별사탕을 골라내던 지민이 정국에게 별사탕을 건네주려 고개를 들다가 어? 하고 작게 놀라는 소리를 낸다. 정국의 어깨너머로 걸려 있는 작은 창문이 새하얗게 송이송이 메워져 있는 탓이었다. 어제와 같은 새카만 밤하늘이 아니다. 눈 오네. 지민의 작은 목소리에 정국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금 지민을 봤다. 그것을 쉬지 않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저게 눈이야?”응. 하는 당연한 목소리에 정국은 급기야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밤하늘보다 눈송이가 더 많이 보이는, 공허한 밤의 침묵을 눈뭉치의 꼬리를 잘라내는 조용한 소리로 그득 메우는 그런 함박눈이.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난 듯 마루에 걸터앉아 목이 꺾일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정국의 곁으로 지민이 앉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눈만큼이나 뽀얀 입김이 문득문득 눈송이를 가렸다. “달에도 눈은 오지 않아?”“응. 달에도 눈이 오지.”“….”“근데 이만큼 예쁘진 않아.”그냥 먼지처럼, 별들처럼, 그냥 나처럼 떠다녀. 그러다가 우주 저 편으로 사라지지. 그러면 그 눈하고는 안녕인거야. 우주의 모두는 정처가 없었다.

 

나와 함께 가자 손 내밀어도, 모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떠다니는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만난 친구를 내일 다시 만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눈이 오는 날을 뭐라고 한다고 했더라?”“겨울.”“응, 맞다. 겨울이랬지.”아마 지구에 와서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을 맞는 것은 처음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도 까맣게 잊고선, 정국은 펑펑 쏟아지는 눈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지민과 있으면 정국은 가끔 집을 잊고는 했다. 달을 찾지 않아도 더 많은 것들이, 더 신기한 것들이 이곳에 너무도 많았고, 그것을 모두 알려 줄 지민이 있었으니까.항상 내일 아침 출근길이 꽁꽁 얼어버릴까 걱정하던 눈 오는 밤이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야 지각하지 않겠지 한숨 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던 그런 날에 이제는 눈이 오는 날의 따스함을, 쏟아지는 눈의 아름다움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곁이 생겨 버렸다. 그렇게 스스로가 외로운 줄도 몰랐던, 고단함이 기저에 깔린 빈자리가 TV소리보다도 즐거운 목소리로 종알종알 메워진다.너로 들어차는 마음은 얼마나 행복한지.함께 눈을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옆자리가 얼마나 따뜻한지.“진짜 예쁘다, 겨울이.”“….”“여긴 정말 예쁘고 멋진 곳이야.”그리고 그 중 역시 가장 기분이 좋은 건, ㅡ역시 지민이 이곳에 있다는 거야.ㅡ네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거야.오늘 안녕 하고 손 흔들어 인사해도, 어김없이 내일이면 다시 만날 수 있는.

 

 

* * *

 

 

정국이 이 동네 지리를 모두 알게 되고, 동네 어르신 몇몇과 인사하게 되고, 무겁고 느리던 발걸음이 익숙해져 차츰 가벼워졌을 때 쯤. 쏟아져 내리는 눈을 다섯 번 쯤 마주했을 때 쯤. 기어이 해를 넘기고 정국은 아마 215살이 되었다고 했다. 몇 살이라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동그래진 눈으로 저를 보는 지민을 향해 정국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더랬다. 왜? 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어.새해가 되자마자 지민은 3일간 휴가를 받았다. 정확히는 월차에 연차까지 당겨 쓴 것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정국이 집을 찾는 걸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아니 사실 정확히는, 집을 찾는 정국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정말로 집으로 떠나는 법을 찾아버린 네가 말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릴까봐. 어느 날 밤, 네가 흔적 하나 없이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봐. 내일부터는 나도 같이 찾아줄게 하며 별사탕을 건네는 얼굴에 만세를 부르던 얼굴이 너무 환해서 그까짓 휴가쯤이야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지.정국이 달에 돌아가는 법을 찾는 과정은 매우 단순했다. 동네 초입까지 내려가 이 큰 동네를 구석구석 골목 하나하나 빠트리지 않고 모두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담이 낮은 남의 집 안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담벼락 아래 갈라진 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슈퍼나 약국 같은 가게 문을 벌컥 열어 선 안녕하세요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지민은 깜짝 놀라 눈이 커졌더랬다. 이제 사장님들은 그런 정국의 행동이 익숙해진 눈치였지만 말이다. 정국은 그렇게 동네 꼭대기까지, 지민의 집 앞까지 올랐다.“아, 역시 없네.”“….”“다시 찾아보자.”동네를 한 번 내려다보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한숨처럼 말을 내뱉으며 다시 그 먼 길을 내려가고. 정국은 지민이 돌아올 때까지 그 일을 몇 번이고 쉬지도 않고 반복했다.

 

 

시간이 먼저 지쳐버릴 정도로 꾸준하게. 해가 완연히 저물고 달빛이 어둔 하늘을 가득 비출 때까지.추운 겨울날, 셔츠가 땀으로 젖을 정도로 동네를 돌아다녔다. 평생을 이 동네에 발 비비고 살아온 지민이 제가 일곱 살 무렵 좋아하던 애와 자기의 이름을 적어 놓았던 담벼락 귀퉁이를 20년 만에 다시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 얼굴까지 새빨개져서는 밭은 숨을 연신 몰아쉬는 지민의 모습을 한참만에야 발견한 정국이 우리 잠깐 저기 앉자 하며 지민의 팔을 이끌었다. 지민이네 집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놓여 있는 낡은 벤치 두 개. 여름이면 이곳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물던 지민의 습관처럼, 정국은 매일 이곳에 앉아 한참이나 달을 올려다보았다. 저렇게 가까운데,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바라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며. 지민은 벤치에 앉자마자 패딩 안주머니를 뒤적여 담배 갑을 꺼냈다. 정국은 그 행동을 따라하듯 주머니를 뒤적여 별사탕을 한 움큼 담아놓은 작은 병을 꺼냈다. 둘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이유로 말없이 딸깍이며 손을 움직였다. 곧, 별사탕이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가 먼저 허공을 울렸다.아무도 안 와. 여기서는 모자 벗고 있어도 돼. 입 안에서부터 부서져 내리는 담배 연기 사이로 다정한 목소리가 함께 흩어졌다. 꽁꽁 감추듯 숨겨두었던 머리칼이 찰랑였고, 정국은 머리칼 사이로 더 깊숙이 숨겨두었던 귀를 꺼내어 펼쳤다.

 

 

하루 종일 갑갑했던 귀가 신나게 쫑긋거리며 허공에서 팔랑였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귀의 움직임을 따르듯 다리도 함께 달랑거렸다. 땅을 툭, 툭 걷어차는 작은 소음이 겨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침묵을 달랬다. “달에 돌아가고 싶어.”이제 이곳은 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정국이었다. 이 동네의 어떤 것도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으리라는 것도.오늘따라 달은 왜 이리도 크고 밝은지. 하늘을 듬뿍 메우는 만월은 빛으로 가득 무거웠다. 눈이 부시지도 않은지 그저 달을 보고, 또 바라보는 두 눈에도 달빛이 한아름이었다. 오늘따라 그 눈빛이 왜 그렇게 외로워 보이는지, 늘 담담한 것 같던 네가 오늘은 왜 이리 달빛에 젖어 그리워 보이는지.어서 돌아가라 이야기 할 수 없는 입술이 끈질기게 담배 연기를 만들었다. 후우 내뱉는 구불한 꼬리 아래로 진심 담긴 한숨을 숨기며. “그런데 이 곳 중력이 너무 무겁다.”“….”“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아.”거짓말. 이제는 깡충깡충 뛸 수 있을 정도로 중력에 익숙해 졌으면서.하지만 지민은 모르겠지. 진심을 숨기는 것은, 어쩌면 정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팔랑이던 귀가 서서히 잠잠해졌다. 아랫동네를 가득 밝히던 집집마다의 작은 불빛들도 사근 잠이 들고. 남은 달 아래 번지는 빛과, 지민의 입가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담뱃불만이 어둔 고요를 밝혔다. 너무도 깊은 밤이었다. 도란도란 오늘 하루를 나누고 저무는 하루의 끝까지 남았던 둘도 이제는 잠을 청해야 하는, 그런 밤.“어떻게 하면 중력이 가벼워 질 수 있을까?”“그런 방법은 없어.”“….”“이 곳의 중력은 늘 같으니까.”담배 불씨를 꺼트리는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실은 정국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금 떨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민은 정국을 도울 수가 없었다.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사탕보다 더 맛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하루 종일 정국의 뒤를 따라 다니며 해주었던 이곳에서 있었던 어린 지민에 대한 이야기들. 너도 해 보면 분명 즐거울 거야. 라고 웃어주는, 너의 발걸음과 옷깃을 잡아 끄는 목소리 뿐. 조금만 더 나와 함께 있으라. 나와 함께 웃어주라 이야기 하고픈 소망을 담뿍 담은 숨겨진 말들 뿐.차마 더하면 욕심뿐인 말들일 것만 같아 바닥에 떨군 꽁초를 발로 짓이기며 지민이 일어섰다. 일어선 만큼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손 뻗어 닿을 수 있기엔 아직 한참이나 까마득한 달과 그 달을 그리는 정국을 번갈아 마주하며. 내려놓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조금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네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더욱 마음이 그랬다. 빤히 마주한 시선이 한참을 그대로 오갔다. “그럼 할 수 없다.”“….”“계속 이 곳에 있는 수밖에.”하지만 아까도 얘기 했지. 숨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정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 이곳엔 여전히 달이 있지만, 그 곳엔 아마 지민이 없을 테니까.이번엔 정국이 지민을 따르듯 벌떡 일어섰다. 쫑긋 서 있는 귀를 돌돌 말아 다시 머리칼 안으로 쏙 밀어 넣고는 후드를 뒤집어쓴다. 자꾸 꺼내 놓으면 안 돼. 한 번 꺼내면 자꾸 꺼내고 싶단 말이야. 투덜거리듯 입술을 오물거리는 정국은 웃고 있었다. 외로워 보이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지민의 곁에서 지어 보이는 웃음. 혼자가 아니기에 결코 쓸쓸하지는 않은. 그 웃음.정국은 총총 옆으로 와 지민의 패딩 점퍼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맞닿은 체온은 많이도 차가웠으나 정국은 그것이 차갑다고, 춥다고 느끼지는 못 했다. 그저 지민의 손이 제가 아는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하다는 그 하나만을 알고 있을 뿐.하루 내내 정국의 뒤를 쫓아다니던 발길이 이제야 나란히 같아졌다. 배도 고프고, 피곤하다. 어서 하루의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와 함께.      

 

“대신 내일도 달 보러 나올래.”“그래, 그러자.”이제는 잠이 들 시간이었다. 너와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따뜻한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네 집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너의 새로운 집을 만들자.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집을.미묘한 동화, 끝.

 

 

 



 A Kookie on the street




허리에 두른 앞치마에 형편없이 토마토 소스가 튀었다. 씨발, 빤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터져버린 쓰레기 봉투를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한 가운데 함부로 던져놓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아, 디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갑을 꺼냈다. 불을 붙이려는데 눈 앞에 가로막힌 담벼락이 보였다. 내 미래 같네, 존나 앞이 캄캄해…. 거미줄이 덕지덕지 처진 담벼락이나 멍하니 올려다보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속이 쓰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담배 연기인 척 쏟아져 나왔다. 





아, 좆같아도 그냥 한국에서 일할 걸 그랬나, 이젠 좀 힘드네. 아니, 이런 건 외롭다고 하는 건가. 이 감당 안 되는 성질머리가 도무지 한국에서는 수용이 안 돼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리 없다고, 이 곳에서도 내 성질머리가 감당이 되는 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사고치고 짤리고, 또 사고치고 짤리고, 또 또 사고치고 짤려서, 결국 이 슬램가 어디 즈음에 있는 펍 주방 보조로까지 굴러 들어온 거였다. 그나마 흑인들이 즐비한 이 곳에는 다행히 내 성격이 고만고만한 평균 쯤 되는 편이어서 3년 째 붙어먹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돈이 될 리가 없었다. 아메리카 드림은 무슨, 아메리카 씨발이다. 





허튼 생각 말고 얼른 들어가야지, 아직 내 놓을 거 남았는데.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몸을 일으키려 몸을 꿈지럭대는데 순간 저 구석에서 부스럭하고 소리가 났다. 와이씨, 놀래라. 순간 반사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두컴컴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선 뭔가 사뿐사뿐한 소리를 내며 담을 타더니 탁 하고 땅에 떨어져, 바삭대며 쓰레기 봉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저게 뭔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사람인 건 맞았다. 지저분하게 물이 잔뜩 빠진 머리가 외진 골목 끝까지 비집고 들어온 바람결에 무심히 흩날렸기 때문이었다. 









“아씨, 저건 또 뭐고. 도둑고양이가.”











저 새끼였구만. 백 날 천 날 쓰레기 봉투 죄 뜯어나 일거리 늘린 새끼가. 뭘 찾는 건지 꽤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뒤통수가 내 중얼거림에 동작을 멈췄다. 아, 작게 얘기 한다는 게 들려버렸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는 듯 하더니, 곧 발견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말간 얼굴에 나는 뒤통수를 습관적으로 긁적였다. 











“니 지금 내 째려본기가.”











크게 뜨여진 눈을 향해 자연스레 한국말을 던졌다. 쟤가 내 말을 알아들으면 어디다 쓸 거야, 붙잡고 타이른다고 아 그렇구나, 하고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떠날 새끼도 아닌 것 같은데. 간만에 한국말로 욕이나 쏟아 부어서 기분이라도 풀어야겠다 하는 심산으로 한 발자국, 덩치 큰 도둑고양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외로 나를 똑바로 주시하는 얼굴은 주춤거리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대신,











“…째려본 거 아닌데요.”











라며 작은 목소리로 내 말에 혼잣말처럼 대답을 했다. 째려본 게 아니면 존경으로 우러러 본 기가, 하고 비웃으려던 목소리가 순간 꽉 하고 막혔다. …아, 한국말이네. 그제야 자세히 눈에 들어온 얼굴은 동양인이 맞았다. 그럼 아마도 한국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것도 제법 어린. 이건 또 무슨 경우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이번엔 군데군데 헤진 카키색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 낡아보였다. …스트릿 키즈인가, 동양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니 지금 내 째려봤잖아.”

“…아니예요.”

“맞잖아, 내 째려봤잖아.”

“…그냥 본 거예요.”











한 박자씩 느린 대답. 별 다르게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멍하게 울리는 목소리. 사실 째려본다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그저 동그랗게 뜬 눈은 오히려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의 것 같았다.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도, 겁을 한참 집어먹은 것 같은 그런 동글동글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번엔 한숨대신 웃음이 픽 하고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냥 불현듯, 겁을 주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A Kookie on the streetw. vandal






















그, 뭐냐, 쓰레기 뒤지지 말고 가게 들어와라. 니 한 끼 맥여 줄 정도 짬밥은 있다.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이 도둑고양이, 아니 꼬맹이는 제법 뻔질나게 가게를 드나들었다. 나보다 덩치도 커다란 게 무슨 꼬맹이냐고? 뭐, 어려 보이는 데 대충 꼬맹이라 부르는거지. 어차피 이름도 모르는 길고양이인데. 아무튼 이 꼬맹이는 생긴 것 답지 않게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맨날 쓰레기 뒤져서 찾아먹으니 제대로 먹을 기회가 없었겠지, 눈치 볼 겨를이나 있나. 하고 나도 쉽게 납득을 했다. 가게 구석에 앉아 복스럽게도 밥을 먹는, 결 안 좋은 물 빠진 머리를 멀거니 보다가 자꾸만 마른 기침을 해대길래 반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아, 괜찮은데. 대답은 또 느렸다. 한국말을 십 년만에 써보는 것 같다 했다, 그래서 단어가 빨리빨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딱 잘라 꼬맹이가 얘기 해 준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입양 된 건가 나 혼자 추측한다. 











“먹을만하나.”

“근데 저 생선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피식,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밥을 반도 넘게 먹어 놓고선 이제 와서 생선은 안 좋아한단다. 우스운 소리를 하는 게 귀여워 손을 들어 부스스한 머리를 더 멋대로 헝클어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꼬맹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차피 길바닥에서 빌어먹는기 말이 많다. 그냥 주는대로 처무라.”

“네에….”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쉽게 체념하는 목소리. 세상 무서울 것 없어보이던 스트릿 키즈들과 달리 필요 이상으로 고분고분한 작은 머리통을 내려다보다가 양고기가 남은 게 있으려나, 하고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쓰고 남았던 양고기 조각들을 모아 대충 야채들과 볶았다. 입맛에 맞으려나… 플레이트에 제법 수북히 쌓아 들고 나왔는데 꼬맹이가 앉아있던 자리가 휑하다. 화장실 갔나 접시를 나란히 놓고 비어버린 자리의 맞은편에 앉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아까 먹다 만 플레이트 그대로 사람만 쏙 하니 빠진 빈자리를 나는 멍하니 훑었다. 말도 없이 갈 애가 아닌데…. 늘상 먼지 한 톨 없이 싹싹 먹고 나선 잘 먹었습니다, 하며 고개까지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가게를 나서던 녀석인데 이렇게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괜히 얼이 빠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상관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까지 하며 결국 자리를 박차고 가게를 나섰다. 이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다는 오지랖이 마구마구 부풀어 올랐다.







한산하던 거리가 제법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각이 됐다. 이들 중 대부분이 범죄자들도 많았고, 앞으로 범죄자가 될 재목들도 많았고. 아무튼 말 그대로 쓰레기인 새끼들이 넘쳐나는 거리였다. 그래도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보다는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라서, 은근히 죽이 잘 맞는 사람들도 많았다. 뭐, 사실 내가 그만큼 쓰레기인 탓도 있었다. 물어보면 본 사람이 있으려나, 다시 습관적으로 뒤통수나 긁적이고 있자니 먼저 인사를 걸어오는 히스패닉이 작게 접힌 종이뭉치를 내 가슴팍 쪽으로 툭 던진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씨익 웃으며, 히스패닉에게 그 봉투를 다시금 던졌다. 나 약은 안 한다고 이 정신 나간 새끼야.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오늘 건 진짜 끝내주는 건데… 라며 아쉬워하는 히스패닉에게 여기 어리게 생긴 동양인 남자애 지나가는 거 못 봤냐고 물으니 pink boy? 하며 능글능글하게 웃어댔다. 저 뒤로 돌아갔어, 니거(nigger)들이 데려가던데. 잡아먹으려고 그러나. 나는 그 웃음에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막막한 담벼락에 바짝 붙어있었다, 꼬맹이는. 앞뒤로 도망칠 곳도 없이 숨이 막힐 듯 에워싸고 있는 무리는 대여섯은 돼 보였다. 결코 친구처럼 보이는 조합은 아니었다. 나는 그걸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리들은 즐거워보였고, 덩치 큰 무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꼬맹이 표정은 마치 나를 처음 봤을 때 같은 그런 멍한 표정이었다. 무서워한다거나 하는 그런 표정이 아닌 상황과 장소를 방관하는 것 같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표정.







제법 친근하게 ‘hey, kookie.’ 하며 꼬맹이를 건드리는 손길들은 집요했다. 이 와중에도 꼬맹이 이름이 kookie 인가…. 그런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자니 뺨을 툭툭 치던 손길이 너풀대던 머리채를 잡아채기도 했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손길이 엉덩이를 건드린다거나 앞섬을 함부로 건드려냈다. 점점 수위가 높아져가는 손길에도 꼬맹이는 그저 침묵했다. 억지웃음 하나 없이 수많은 손길들과 웃음소리들을 자연스레 받아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잘도 견뎌냈다. 오히려 저 끝날 줄도 모르고 과감해져가는 성희롱에 분노가 치미는 건 내 쪽이었다. 무리 중 한 명의 손길이 꼬맹이의 바지 버클을 끌러 내려는 순간, 나는 기어이 옆에 쌓여있던 맥주박스에서 빈 병을 하나 집어 들어 무리 쪽으로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화려한 파편들이 자잘하게 흩어지며 그들의 시선 역시 나에게로 흩어졌다. 이제껏 괜찮아 보였던 꼬맹이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확 씨 마 다 때리 박아뿔라, 안 꺼지나 이 씹썌끼들아!”











양키 고 홈! 미국 한복판에서 양키 고 홈을 외치며 손에 맥주병을 두어개를 더 집어냈다. 건물 외벽에 와장창, 맥주병을 깨트리며 당장이라도 찔러죽일 기세로 걸어가자니 무리 중 한 명이 목소리가 커졌다. 아무렇게나 욕설을 뱉으며 내 쪽으로 몸을 트는 흑인의 허리를 꼬맹이가 단숨에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며 외치는 절박한 목소리,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꼬맹이의 영어는, 결코 한국말처럼 느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그 침착함은 다 어디다 내다버렸는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목소리까지 벌벌 떨며 하지 말아달라고, 미안하다고 저가 연신 사과를 하는 꼬맹이에게 붙잡힌 흑인이 꼬맹이와 나를 몇 번이나 번갈아보더니 꼬맹이를 세차게 밀쳐냈다. 꼬맹이는 쉽게 휘청거리며 벽에 던져지듯 부딪혔다. 무릎을 꿇듯 주저앉아 버리는 꼬맹이에게 나에게는 마저 못한 욕을 쏟아내며 무리들은 반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리들은 아마 내가 누군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 거리에서 미친개 동양인은 몇 번의 사고로 꽤 화젯거리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꼬맹이가 저렇게 죽자고 달려드니 어이도 없었을 것이고.







그제야 쥐고 있었던 병들을 바닥에 내다버리고 꼬맹이의 앞으로 단숨에 걸어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꼬맹이의 어깨가, 아니 온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정없이 휘어 잡힌 듯 했다. 나는 유리 파편으로 인해 송글송글 배어나오는 피를 바지춤에 마구잡이로 닦으며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피가 번진 손으로 꼬맹이의 팔을 조심성 없이 잡아채었다. 











“거기서 그라고 있으면 우짜노! 니 진짜 옷 다 찢어지뿌고 뭐라도 당해야 정신 차릴래!”

“미쳤어요? 아저씨야말로 거기서 그러면 어떡해요! 가만있으면 저러다가 재미없다고 금방 떨어져 나가는데!”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며 꼬맹이가 큰소리를 냈다. 늘 낮고 조용하기만 했던 목소리가 큰 소리를 내니 제법 당황스러웠다. 기껏 구해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화를 내는 게 황당하기도 했고. 뭐? 하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니, 잔뜩 흔들렸던 표정에 차근차근 눈물이 차올랐다. 눈망울이 잠기듯 일렁였다. 차마 떨어지지 못하도록 억지로 붙잡고 있는 눈물샘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삼키듯, 목소리가 다시 낮게 잠겼다.











“그러다가 나중에 찾아오면 어떡해요….”

“…”

“저 새끼들, 총도 들고 다닌단 말이에요….”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 떨림을 애써 감추려 주먹을 말아 쥔 꼬맹이가 기어이 붙잡고 있던 눈물들을 뚝뚝 떨어트려 냈다. 자글자글한 모래바닥에 검은 점들을 뚝뚝 만들어냈다. 나는 아플 정도로 붙들어내고 있던 꼬맹이의 팔을 놔주었고, 그제야 꼬맹이는 눈물을 소매자락으로 마구 비벼 없애려했다. 











“니 지금 총 맞아 죽을까봐 쫀기가.”

“제가 아니고 아저씨 걱정하는 거거든요….”











후들후들 떨리는 목소리가 몇 번이고 숨을 골랐다. 숨을 뱉을 때마다 뱉어지는 뽀얀 입김조차 하염없이 떨리며 번졌다. 비가 쏟아져 내리듯 사정없이 떨어지던 눈물은 기어이 얼굴을 흠뻑 적시고 나서야 겨우내 멈추었고, 번들해진 얼굴을 한 채로 하아 하고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 정도로 마지막 한숨을 내쉰 꼬맹이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선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없었던 일인 것처럼 바지 버클을 다시 잠궜다. 











“니는 사내새끼가 응? 배짱도 없,”

“여기서 Asian으로 살다보면 허다하잖아요. 조롱받고 무시당하고 그 정도는.”











따라 일어서며 따박대는 내 잔소리를 꼬맹이는 잘도 잘라 먹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고스란히 받아 죄 돌려주던 정신 빠진 나와는 달리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뱉는 꼬맹이의 말에서 나는 꼬맹이의 쉬운 체념의 이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배워야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어리고 작은 꼬맹이가 이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온순해지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모두가 거침없는 이 거리에서. 











“그러니까 괜찮아요, 나 이런 걸로 자존심 상하고 그런 성격 아니니까 아저씨도 제 일에 상관하지 마세요.”

“니는 뭐 자존심이 먼지만도 몬 하나. 좆 달린 새끼가 가오 떨어지게,”

“이럴 때마다 자존심 세우면, 진짜 필요할 때 세울 자존심이 안 남아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











진짜 필요할 때. 라는 아득한 소리를 하는 목소리가 무거웠다. 꼬맹이에게 자존심이란 그만큼의 무게인 듯 했다. 내일은 커녕 오늘을, 아니 당장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막막한 이 거리에서 딱 하나 제가 온전히 갖고 있는 무언가인 듯 했다. 그래서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론 절대, 제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

“….”

“저 때문에 아저씨 다치면, 그 땐 진짜 자존심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

“…아무튼 전 괜찮아요, 절대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절대로. 라고 강조하는 저 단호한 목소리가 나를 곧게 올려다봤다. 괜찮다는 말과 꼭 들어맞는 눈을 하고서는. 







절대로, 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부사를 갖다 붙이는 저 동그란 눈은 지금 그 무엇보다도 절대로라는 말이 어울렸다. 마음을 다 잡고, 또 동여매는 저 악착같음. 아직도 미미하게 떨리는 어깨위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덮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는 늘 저 따뜻하지도 않은 점퍼만 입고 다녔다. 겨울이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는데도. 















#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길을 걸을 뿐이었다. 걷고 또 걷는 하염없는 길보다 침묵이 더 길었다. 그 침묵을 아스라이 가른 건 먼지가 더덕더덕 들러붙은 눈뭉치였다.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순식간에 열이 되고 백이 되는 눈송이에 그제야 꼬맹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둠이 잔뜩 내려앉은 짙은 밤의 거리에 빛처럼 가만 가만 눈이 온 몸에 내려와 닿았다.











“오, 와. 우와, 눈이다.”

“와씨, 벌써 또 겨울이가.”

“엄청 많이 오네. 금방 쌓이겠다. 그쵸.”











손바닥을 허공에 대보던 꼬맹이가 제 손바닥에 눈이 내려앉자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눈꼬리가 달처럼 휘어접히는 저 웃음은 정말로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주먹을 쥐고 꼬맹이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니는 지금 눈 보고 기분이 좋나. 니 집 어딘데.”

“….”

“어차피 길바닥에서 잔다 아이가.”











아직도 손바닥을 펼치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이었지만 입은 아주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에요, 친구들이랑 사는 집 있어요.”

“어이고, 지랄을 하세요.”











스트릿 키즈들은 뻔했다. 지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잤으니까. 그마저도 이 곳은 슬램가라 제대로 몸 뉘일 자리를 잡기도 힘들 것이다. 이 곳에서 스트릿 키즈는 모든 어른들의 표적이었다. 아직 어리고, 힘이 없고, 약하고. 어떤 방면으로든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마 어디 가장 음습하고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듯 자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절로 인상이 써졌다. 이 꼬맹일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오늘은 내랑 가자.”

“네?”

“길바닥에서 자다가 니 위에 눈 쌓여서 숨도 못 쉬고 그냥 디져 볼래. 그냥 내 방 가서 자자고.”

“….”

“좁긴 하지만 그래도 길바닥보단 따뜻하다.”















#















늘 혼자였던 방에 누군가 들어오니 안 그래도 좁은 방은 발 디딜 곳 없이 꽉 찼다. 꼬맹일 억지로 욕실로 밀어 넣고 그동안 무신경하게 널어놨던 옷가지며 술병들을 정리했다. 혼자 있을 땐 잘 쓰지도 않았던 이불까지 바닥에 깔고 있자니 욕실에서 꼬맹이가 나왔다. 꼬질꼬질 시커맸던 강아지를 씻기고 보니 흰둥이였던 것 마냥 새하얘진 꼬맹이가 여기 물 되게 따뜻하네요. 가끔 씻으러 와야지 하며 해맑게 웃었다. 뻔뻔한 말을 잘도 하는 걸 보니 기분이 많이 나아진 듯 했다. 나는 여기 와서 누우라는 듯 내 옆자리를 두어번 툭툭 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방 안에 가득찬 어색한 공기에 할 말을 잃어버려 한참이나 멍 하니 천장이나 올려다보다가 아, 하고 무언가 불현듯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옆에 나란히 누운 꼬맹이를 봤다. 꼭 나처럼 멍 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꼬맹이의 복실복실한 머리가 채 마르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흩어져있었다.











“근데 니 이름이 kookie가. 겁나 개성 넘치네.”

“…정국이에요, 제 이름. 전정국.”











한국 이름도 있구나. 전정국… 꼬맹이를 따라서 꼬맹이 이름을 되뇌어 봤다. 전정국, 정국…. 











“근데 와 kookie라고 부르노. 쌩뚱맞구로.”

“그냥 뭐, 여기서 부르는 이름이 그런 것 뿐인데….”











꼬맹이는 날 보지 않았다, 계속해서 천장만 올려다봤다. 말 끝을 흐린 꼬맹이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가 떠오른 건지, 아니면 할 말이 남은 건지. 자꾸만 주저 하는 목소리가 몇 번이나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만 뻐끔거리다가 꽤 오랜 시간을 고민을 한 후에야 운을 떼었다.











“…전 제 이름이 쿠키인 줄 알았어요. 엄마가 저 버릴 때 그랬거든요. 쿠키 먹으면서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데리러 올게. 이 쿠키 스무개 다 먹으면 올 거야. 약속할게.”

“….”

“근데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구요. 나 맨날 정국이라고 불렀는데, 친구들이. 잠시 착각했었나봐요. 처음 여기 왔을 때 너무 무섭고 떨려서, 쿠키 다 먹으면 데리러 온단 말만 자꾸 생각나서. 그래서, 그래서….”

“….”

“아,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이름이에요, 그거.”











담담한 노래를 부르듯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눈이 와서 그런가 꼬맹이의 목소리 빼고는 온 세상이 적막으로 물든 것 같았다. 쿠키, 쿠키…. 몇 번이고 같은 단어를 반복하던 꼬맹이가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냐는 듯 한심으로 웃어버리고는 웃기죠, 멍청하게. 하고 저 스스로를 책망했다. 상처를 아무렇게나 구겨 숨겨버리려는 어린 기억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많이 힘들었을텐데. 











“…이름 이쁘다.”

“예?”

“잘 어울린다고, kookie.”











꾹키, 꾹키. k 발음을 한껏 짓누르며 부르니 그제야 꼬맹이가 고개를 내게로 돌려 웃었다. 접힌 눈이 아이다웠다. 체념을 달고 사는 그 텅 빈 껍데기가 아니고, 정말 행복해 보이는 웃음이라 생각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꼬맹이의 턱밑을 살살 긁어댔다. 사실은, 이름이 아니고 꼬맹이가 이쁘다고 생각했다. 











“뭐, 강아지 부르는 거 같고 좋네. kookie 이리온나, 쭛쭈, 형한테 온나.”

“아, 아저씨!”

“야! 아저씨 아니거든요! 내 형이거든요!”











꼬맹이가 번뜩 상체를 일으켜 냅다 베개를 내 얼굴로 던지며 소리를 질렀고, 나도 따라 몸을 일으키며 꼬맹이의 허리를 끌어안아 그대로 다시 이불 위로 엎어트렸다. 내 안에 꽉 안긴 꼬맹이는 숨이 막히는 줄도 모르고 웃어댔다. 거리의 찬바람을 맞고 사는 꼬맹이는 온기로 가득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해서, 쌓여왔던 외로움조차 그 온기에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꼬맹이의 젖은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질이는 만큼.

[지정] The Kookie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Vandal 씀<="" a=""><="" a="">





















나는 꼬맹이의 말대로, 꼬맹이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암묵적인 약속이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약속이 아니라 꼬맹이의 일방적인 선고였다. 관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랬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었던 이유는, 난 정말로 꼬맹이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한동안 가게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싶었던 꼬맹이가 얼굴이며 온 몸에 상처를 주렁주렁 열매처럼 달고 나타난 덕분이었다.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레 나아가는 상처의 색은 희미했지만, 그렇다고 그 깊이까지 얕아지는 건 아니었다. 꼬맹이는 상처에 대해 조잘대지 않았다. 흔한 거짓말도 하소연도 없었다. 그저 짧게 웃으며 얘기할 뿐이었다.











ㅡ아저씨,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꼬맹이는 접시를 다 비우도록 말이 없었다. 접시에 고개를 처박을 듯 숟가락으로 밥을 입 안으로 넣고 또 밀어넣었다. 볼이 미어져라 우겨넣고는 입을 우물대는 모양새가 마치 뭐랄까, 토악질마냥 터져나오는 감정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여도 상처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보랏빛, 푸른빛, 샛노란빛으로 형형색색 뒤섞여 눈두덩이를 무거웁게 짓누르는 멍이 꼭 속으로만 앓아 곪아버린 상처처럼 피부에, 온 마음에 침착되어 있었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정작 저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아니,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저 지경이 되도록 버티고 있는 게 맞긴 한걸까. 불필요하고 자잘한 일에까지 나의 자존심에서부터 크게는 코리안 프라이드까지 들먹이는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꼬맹이가 깨끗하게 비워낸 접시를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두고선 쿠키야, 강아지- 하고 꼬맹일 불렀다. 컵에 한가득 담긴 물을 마시다 말고 내 쪽으로 돌아보는 꼬맹이에게 손가락을 까딱해보였다. 내 손짓만으로도 이젠 무슨 의민지 잘도 알아채는 꼬맹이가 얼굴을 다 가리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부엌 뒷편으로 난 쪽문 앞으로 둘이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꼬맹이와 내가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담이 높고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좁고 어둔 공간. 음침한 이 곳에서도 꼬맹이의 정신빠진 것 마냥 한없이 밝게 물 빠진 머리는 빛이 났다. 혈통이 좋지 못한 유기견의 털마냥 푸석거렸지만 그래도 반짝반짝했다.







니도 한대 줄까 하고 담뱃갑을 내밀었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옆에 앉혀두기만 했지 한 번도 권해볼 생각을 하질 않았는데 오늘은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물음에 내 옆에서 손장난이나 하고 있던 꼬맹이가 나를 한참이나 빤히 올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맛 없던데, 저는. 아저씨 많이 피우세요. 그리고는 이내 무심한 듯 아스팔트 바닥에다 시선을 고정하고선 다시 손장난에 열중한다. 아무래도 지나가던 개미를 건드려보려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여대는 듯 했다. 나는 집중하느라 처박힌 작은 뒤통수를 끈질기게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이럴 바에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떻노.”











참아왔던 본심이 튀어나왔다. 순간 꼬맹이의 손짓이 움찔하며 멈칫거렸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끊임없이 개미의 움직임을 쫓았다. 개미는 저만치에 떨어져 있는 개미무리에 함께하기 위해 걸음을 빨리하는 듯 했다. 하지만 모를 이유로 더듬이를 한 쪽 잃은 개미는 영 방향을 잡질 못했다.











“거기에 누가 있다구요. 어차피 돌아가도 혼자인데.”

"연락 닿을만한 사람 없나. 친척이라던가, 그러니까 고모나 할아버지 같은.”

“되새김질 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을 닮은 것들을.”











그게 뭐 어떠냐는 듯 아무렇지 않아하던 목소리가 기어이 개미를 꾸욱, 아스팔트 바닥으로 거침없이 짓누르면서 술래잡기는 끝이났다. 안 그래도 작았던 개미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버렸고, 끝내는 무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무리가 있는 저만치의 근처에는 개미굴이 있을 것이다.







문드러져 버린 개미를 내려다보는 꼬맹이의 표정은 오히려 홀가분 해 보였다. 나는 개미를 잡아누른 검지 손가락 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처의 딱쟁이들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꼬맹이 말처럼, 담배는 맛이 없었다.











“거 참, 가치관 한 번 부정적이네.”

“그냥 차라리 지금이 편한 거예요.”

“그거 심각한 방어기질인 건 아나?”

“물론이죠.”











꼬맹이는 턱을 무릎에 괴고선 끈질기게 개미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러다가 시퍼런 멍이 올라온 콧잔등을 손톱께로 긁었다. 나와 마주하지 않는 시선, 침묵으로 외면하는 대화. 꼬맹이가 이곳에서 시간과 삶을 견뎌내며 잠궈온 문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나는 불씨를 튕겨낸 담배꽁초를 뭉개진 개미의 옆에 나란히 두었다. 











"...하는 수 없네."

"..."











나는 담배 연기대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정말로 땅이 꺼져라 그렇게 푸욱. 진심으로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풀어내도 풀어내도 아직 잠겨있는 자물쇠가 많이 남아있다면 차라리 문을 부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정말로 나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랑 살자."

"...네?"











내 방식대로 꼬맹이의 마음과 직면해주겠다는 거였다. 어쨌든 열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고, 꼬맹이가 원하는대로 맞춰주다간 평생 열 수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는지 그제야 꼬맹이의 시선이 오롯하게 내게로 와 닿았다. 비스듬하니, 삐뚜름하게 내려다 볼 때는 후련하고 홀가분 해 보이던 눈이 이렇게 곧게 마주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였다. 미안함이라던가 후회같은 것들이 덧대여진 상처받은 눈이었다.







나는 안 그래도 복실한 꼬맹이의 머리칼을 함부로 헤집었다. 눈에 담겨있던 상처가 한숨처럼 어지러이 흩어져 사라졌다. 이 좁은 골목까지 촘촘히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차갑고 날카로웠고, 나는 그래서 꼬맹이의 두껍지도 않은 점퍼를 꽁꽁 여며주었다. 











"아, 그러니까, 그냥 형이랑 같이 살자고요. 불안해서 니 혼자는 못 냅두겠으니까요."

"..."

"잘 해줄테니까 고마 좀 같이 살자. 형 지금 음층 부끄러우니까 얼른 대답."











구겨진 머리칼 사이로 동그란 눈이 나를 빤히, 말 그대로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그 눈이 마치 닫혀있던 문을 빼꼼히 열어내고 손톱만큼 만든 틈 사이로 나를 조심스레 쳐다보는 것 같아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려댔다. 근데요, 아저씨... 어렵게 뗀 듯 말을 아끼는 목소리가 다시금 침묵으로 가라앉는 것 같아 서둘러 왜. 하고 덧붙였다. 앙 다물리려던 꼬맹이의 입술이 잠시 허공에서 빠끔거리며 배회했다.











"아저씨... 집 너무 더럽게 쓰던데요. 그래서 좀..."

"야이씨, 청소는 니가 좀 해주면 될 거 아이가! 그 정도 밥값도 몬 해주나, 니는!"











꼬맹이의 말에 나는 버럭 목소리를 높였고, 눈썹을 찡그리고 있던 꼬맹이는 그대로 곤란한 듯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축 처진 눈썹 끝에 매달린 상처는 여전히 아파보였지만, 그래서 그 웃음은 제법 괴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조용히 웃는 꼬맹이는 그래서 더 예뻤다.











"...네, 알겠어요."











개미가 문드러진 흔적 위로, 그 옆에 함께 몸을 뉘인 구겨진 담배꽁초 위로 휘날리는 바람 속에 숨어있던 눈송이가 내려와 앉았다.



[지정] 그 해 여름


너도나도 라이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였다. [9일, 4시, 정문, 암호는 한라산] 짤막하니 적힌 신호가 그 작은 불길에 순식간에 타들어가 사라지는. 우리는 언제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됐다. 때때론 우리의 숨소리조차, 몸을 웅크리고 죽은 척을 해야 했다. 박지민도 그런 사람이었다. 순하고 맑은 얼굴을 한 주제에 수배자란 딱지를 떼지 못 했다. 문과대 건물 지하에서 먼지 냄새 나는 담요를 덮고 잠을 잤다. 덕분에 지민에게선 늘 먼지 냄새가 났다. 잡을 수 없이 부유하는 먼지 냄새들.











우리는 밤마다 박지민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막걸리병이 나뒹구는 그 곳에서 지민은 줄 하나가 끊어진 기타로 노래를 불러줬다. 지민은 노래패 회장이었다. 국문학도 주제에 늘 악보를 들고 다니며 선율을 그렸다. 작은 손에서 그려지는 음율은 늘 붉었다. 피 흘리는 붉음도 지민의 손 끝에선, 목소리에선 꽃으로 피었다.











처음 지민이 불러주던 노래를 정국은 잊지 못했다. 깊은 밤, 술병이 나뒹구는 곳에서 모두가 아무렇게나 잠이 든 곳에서 촛불을 밝히고 앉은 지민이 술에 젖은 목소리로 노찾사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ㅡ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ㅡ 꺼져가듯 작은 기타 선율 위로 타고 흐르는 지민의 목소리는 고요하지만 단단했다. 속삭이듯 조심스러웠으나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지민은 날이 새도록 정국의 앞에서 조심스레 노래를 이어갔다.











숨을 웅크리고 살던 지민의 그 날의 개화를, 정국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지민은 하루의 대부분을 문과대 지하에서 보냈다. 회의를 하거나, 노래를 만들었다. 그림자처럼 어둔 삶이었다. 그럼에도 크고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 눈빛은 너무도 반짝여서, 마치 달빛 같았다. 날카롭고 눈부셨다. 박지민은 밤하늘의 빛이었다. 정국에게,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전구 하나 달지 못 해 촛불을 켜고 살던 그 곳에서 지민은 며칠 만에야 햇빛을 봤다. 인쇄소엘 가야 한다고 했다. 9일날 쓸 노래야. 악보만 복사하면 돼. 하며 볕 뜨거운 날 교문을 나서던 지민은 그 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교문으로 들어서는 지민을 보지 못 했다 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들이 많았던 시대였다. 박지민처럼 잿가루 하나 남기지 않은 발화가 빈번하던.











ㅡ선배는 안 죽었어요, 돌아올 거예요.











정국은 그렇게 말을 했다. 캄캄한 지하에는 언제 없어져도 좋을 것들만 남아있었다. 낡은 담요, 몇몇의 옷가지들 같은 미련 하나 없는 것들. 그 틈에서 정국은 지민의 기타를 집어 들었다. 정국은 기타를 칠 줄 몰랐다. 차마 줄을 튕겨보지도 못한 채, 정국은 한참이나 그 기타를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지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지민이 노래하던 자유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 했다. 정국은 소리를 낼 수 없어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 * *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친 날이었다. 내일은 9일이었고, 깨닫지도 못할 새에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문과대 지하 구석에서 천자락을 넓게 펼쳐두고 코끝을 찌르는 페인트로 플랜카드를 적어 나가던 정국의 머리칼 끝에서 땀이 뚝 하고 떨어졌다. 아, 덥다ㅡ 정국의 입술로 다 구겨져있던 담뱃갑에서 나온 마른 담배가 습관적으로 걸렸다.











ㅡ형 담배 냄새 싫어하는데.

ㅡ...선배.











잠시 꿈인가 싶었다. 사방으로는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해 머리가 아찔하고, 날이 더웠으며, 또...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으니까.











사실 정국은 단박에 지민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늘 끼고 다니던 안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상처투성이의 얼굴에서 지민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 입꼬리는 다 터져 번져 있었으며, 시퍼렇게 부어 오른 시선은 산산이 부서져 저를 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했다.











ㅡ선배.. 선배 얼굴이요...

ㅡ살아 돌아왔으면 되는 거 아니야?











다 쉬어버린 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가득했다. 이른 새벽을 노래하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무도 낯선 지민에게서 웃는 모습 하나만큼은 그대로라서. 아픔을 살라먹은 그 미소는 오늘도 너무도 예뻐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정국은 그대로 지민을 끌어안아 버렸다. 앓는 소리로 화답하던 지민은 이내 정국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닿아오는 손길이 다정했다. 정말로 박지민이었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벅찰 정도로 체감되어 이내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울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ㅡ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ㅡ선배가 정말 죽은 줄 알았어요.

ㅡ인사도 못 했는데.

ㅡ그냥 가 버린 줄 알았어.

ㅡ고마워요.

ㅡ살아 있어 줘서...











숨 쉬는 것조차 사치인 시대였다. 숨죽여 울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날 정국은 알았다. 울 수 있으면 됐다. 숨 쉴 수 있으면 됐다. 살아만, 있으면, 됐다.



















                                                                * * *















9일의 한낮. 많은 이들이 한라산으로 모였다. 누군가는 깃발을 들었고, 어떤 이는 만장을 펼쳤다. 태극기를 흔드는 이도, 깨진 벽돌을 집어든 사람도 있었다. 그 최전선에는 지민이 있었다. 지민은 어깨에 기타를 둘러메고 있었다. 지민은 그런 사람이었다. 늘 속삭이던 작은 목소리가 온전히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는 거리뿐인, 그런 삶에 파묻힌 박지민의.











행진은 길어지고, 들리지도 않을 기타소리와 지민의 선창에 맞춰 거리를 메운 이들이 노래를 이었다. 넘실대는 목소리들이 모여 노래를 이루었다 마음을 외쳤다. ㅡ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ㅡ 발길은 끊일 줄을 몰랐다. 대치하는 이들의 앞으로 한없이, 한없이 걸어 나갔다. 정국은 등 뒤로 주륵 땀이 흘렀지만 결코 주저할 수 없었다. 긴장으로 뜨거운 손을 남몰래 잡아주던 지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치의 침묵은 결코 길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을 던졌고 곤봉을 휘둘렀다. 깨어진 보도블럭 조각을 던졌다가, 닥치는 대로 흙을 집어 뿌리기도 했다. 손에 딸려 나온 풀꽃에 아무렇게나 피가 묻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누구도 원하는 싸움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저 갖고 싶을 뿐이었다. 피 흥건하여 초라한 자유일 지라도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국은 무엇이든 집어 던지면서도 자꾸만 지민을 찾았다. 절뚝이며 걷던 지민의 모습이 자꾸만 신경 쓰였던 탓이었다. 정국이 내도록 지민을 시선으로 쫓는 동안, 지민은 세상을 똑바로 보지 말라 함부로 망쳐놓은 시선으로도 올곧게 앞만을 바라보았다.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치열하게도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스스로 가슴에 새긴 붉은 글자는 지민에게 있어 불꽃이었다. 제 몸을 다 태워내도록 뜨거웠다. 그러니 눈을 가린다 해서 가라앉을 식을 열기일 리가 없었다.











와아아ㅡ! 쏟아지는 함성과 함께 순식간에 대오가 엉망이 되었다. 지민을 쫓느라 차마 앞을 신경 쓰지 못 했던 정국에게 순간 역한 기운이 훅 하고 밀려 들어왔다. 최루액이었다. 구멍이란 구멍이 순식간에 오염된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눈물에 비틀대는 정국이 주저앉기도 전에 누군가 정국의 머리를 후려쳤다. 악! 고통으로 잠식된 눈앞으로 별이 번쩍였다. 무엇에 맞은 지도 모른 채 다시금 이어지는 폭력에 주저앉을 뻔한 정국의 팔을 누군가 끌었다. 정국은 앞으로 고꾸라질 정도로 휘청이며 내달리는 발걸음을 쫓았다.











눈을 뜨지 못 해 몇 번이고 앞으로 엎어지는 정국을 일으켜 달렸다.쉴 새 없이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살기 위해 붙잡은 손길에 끊임없이 매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정국을 붙든 손이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으슥진 골목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던 주인이 부채질을 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렇게나 구른 몸뚱이들이 숨을 토해내듯 헐떡였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눈물, 콧물,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고통을 숨길 줄을 몰랐다. 옷소매를 당겨 아무렇게나 얼굴을 비비던 정국의 손을 제지했다.











ㅡ정국아, 그렇게 닦으면 안 돼. 조금만 참아.







아아, 맞잡았던 손은 그러니까, 지민이었다.















지민은 가게 주인에게서 얻을 물을 제가 마실 새도 없이 자꾸만 정국의 얼굴에 부어 주었다. 흐르는 물을 타고 매운기가 가시지만 결코 고통이 덜해지진 않았다. 머리께 어딘가서부터 흐르던 핏물이 뒤섞여 진분홍빛 꽃을 발치서 자작하게 그렸다. 기어이 뜨인 눈앞이 시큰거렸다. 아무것도 짐작가지도, 생각되지도 않았다. 그저, 잡은 손이, 이 손이 선배라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장님, 얘 좀 숨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다급한 목소리를 붙드는 손길이 더욱 빨랐다. 이미 쥐인 손을 꽈악 고쳐 쥐며 정국은 지민을 올려다보려 애썼다. 복면을 두른 지민의 두 눈 역시 고통으로 핏발 서 있었다. 짓무른 눈가가 아파보였다. 그럼에도 제대로 뜨이지 못 하는 두 눈은 정국조차 곧게 바라봐 주고 있었다. 정국은 자꾸만 지민의 손을 고쳐 잡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민이 곁에 있는지 끊임없이 손에 닿은 온기를 확인했다.











ㅡ선배. 나 선배 좋아해요.

ㅡ계속 좋아했어요.

ㅡ좋아한다구요. 좋아한다고, 박지민.











그러니까, 가지 마요. 어렵사리 꺼내 보인 진심이었다. 지민이 집어 삼킨 붉은 약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면서도, 그 약에 취한 지민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내보인 고백이었다. 좋아하니까, 곁에 있어 주세요. 가지 마세요. 두 번은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신을 잃고 지새운 밤들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지민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저를 붙잡고 있는 힘껏 떨리는 그 손을 더욱 꽉 쥐어줄 뿐이었다. 핏발 선 두 눈을 연신 깜빡이던 그 얼굴이, 정국의 침묵이 울음으로 바뀔 때쯤에야 복면을 끌러 내리며 정국을 향해 웃어 주었다. 이 순간조차 변함없는, 아름다운. 그 미소를.



















ㅡ정국아.

ㅡ내가 널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게.













금방 다녀올게ㅡ. 남긴 인사가 짧았다. 달려 나가는 발자욱이 쉽게 멀어졌다. 떠나는 이는 늘 이렇게나 쉬웠다. 남겨진 이가 얼마나 남은 말을 어렵사리 삼키는 줄도 모르고.













































/

1월의 박종철, 6월 9일의 이한열이 불꽃으로 피어나던

87년의 6월.








반응형

Nowhere Cafe

삶을 풍요롭게하는 덕질을 추구합니다

    이미지 맵

    Culture/Music 다른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