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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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진] 그래서 결혼식 날짜가 언제라고? 본보 브이라이브 vliveCulture/MusicNowhere Cafe2020-08-13 19:48 선택 안됨 #민윤기 #셀카반반 /아미 실검 축하해주는 #민윤기 / #앙팡맨 #전정국 #팬싸인회 / #김남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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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진] 그래서 결혼식 날짜가 언제라고? 본보 브이라이브 v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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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벨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고속도로였고,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예고없이 땅 위로 제 몸을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앞에있던 트럭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바람에, 바퀴가 그대로 미끄러져, 옆으로 돌았고 그 위에 차들이 연쇄적으로 추돌했다.
 
 
 
그 때문에, 내 친구는 크게 다쳤고, 운전을 하고 있었던 친구의 연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
.
 
친구의 부모님은 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계셨다. 이민이었고, 친구만 대학졸업 이후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 혼자 들어와 생활을 하고 있었던 탓에 바로 큰 사고 소식을 전해드렸지만 놀란 마음과 달리 한국까지 들어오시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래서 그 동안만 보호자가 필요했던 친구를 위해서 회사를 월차를 내고 내 친구... 호석의 옆에 내가 상주하고 있었다. 항상 밝고 해사한 얼굴을 한 그 잠이 든 예쁜 옆 얼굴에는 온갖 쓸리고 베어진 상처가 가득했고, 장파열과 일부 골절 등으로 인하여, 몸을 한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사고 이후 하루만에 눈을 뜬 친구는 몸 보다 기억이 상해 있었다. 친구의 기억은 군데군데 빠져 있었고, 흔적이 흐릿해져 있었다. 중요한 것은 동승자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인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었던, 7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살았고 사고 당시 옆 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던 제 연인 민윤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호석이가 윤기형을 잊어버렸다.
 
 
 
세상은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었고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은 친구는 평온해 보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호석에게는 연인이었고, 나에게는 두 살 차이지만 존경하는 형이자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식이 크게 다쳐 병원에 누워 있는걸 보시고 같이 차에 탔던 친구는 즉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호석의 부모님은 날 마다 한숨에 눈물바람이었다. 모든 이 일을 알게 된 사람 모두가 그러했다.
 
누군가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이로 말할 수 없이 쓰고, 아파 감히 삼킬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가슴 안에 불덩어리가 뜨겁게 내 심장을 쥐었다 놓는 기분이었다. 다들 그런 와중에 호석이만은 평안해보였다. 하지만 지금이 평온이 어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다른 일종일 수 있다며, 호석에게 과도한 질문과 스트레스를 주는 말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정신과 의사의 조언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친구에게 윤기형 기억이 안나? 하는 그와 관련 된 작은 물음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내용은 문병을 오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된 어떠한 룰 같은 것이었다. 온 친구들은 애써 웃어보이는 아이도 있었고, 오자마자 지는 가을 낙엽 마냥 고개를 푹 꺼트리고 눈물부터 흘리는 놈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석이의 표정은 처음 눈 떴던 그 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석의 부모님이 입국 하시고 친구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나는 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과 답답한 것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기 때문에, 매일 퇴근하고 병원에 들렀고 주말에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책들이나 필요한 간단한 물품들을 챙겨서 그곳으로 향했다. 나이가 젊었고 평소에도 몸이 건강했던 탓일까, 의사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몸의 회복력이 좋아서, 한달 뒤에는 간단하게 산책도 할 수 있었고, 재활치료도 드디어 병행 할 수 있게 되었다.
 
 
 
 
태형아. ”
. ”
맨날 여기 안 와도 돼. 너무 미안하단 말이야. ”
괜찮아. 너 확실히 낫는 거 내 눈으로 끝까지 보는게 내 마음이 편해. ”
“ ...처음엔 몸이 너무 아파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
. ”
나랑 같이 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 ”
“ .... ”
왜 기억이 안 날까. ”
너무... ”
... ”
너무 억지로 생각해낼 필요없어. 일단 몸부터 다 회복하고.. 그리고 천천히 기억하면 될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마. ”
그 사람은 죽었다며... ”
호석아. ”
“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그런데 기억도 못해주고... 미안하잖아. ”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서글픈 주홍색으로 내려앉는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보는 풍경은 매일 똑같았다. 차들이 정렬되어 있고,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산책을 하고, 엠뷸런스가 시끄럽게 울리고, 또 소강상태를 반복했다. 점점 몸이 회복 할수록 친구는 여러 가지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그 중에는 본인이 기억을 잊은 제 죽은 연인에 대한 질문이 과반이었지만 의사의 당부 때문에, 나는 제대로 된 답을 어느 하나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느 덧 계절이 흐른다. 이렇게 멈춰 있는데 달과 별은 끊임없이 도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때문에 어디서 부는 사람인지 무더웠던 습기가 다 날라가고, 서늘한 공기가 제법 아침 저녁으로 느껴질 때 쯤에 호석이도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제서야 그의 가족들과 한 시름 놓는 표정이었으며, 처음 깨어났을 때 보다 기력을 찾은 내 친구도 죽은 이에 대한 질문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앞으로의 대한 이야기나, 실없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표정 또한 한결 나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나에게 던진게 아니다. 나는 속으로 윤기형에게 그 질문의 화살을 던지고 있었다.
 
 
 
형은 괜찮으신가요.
이렇게 저 아이의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괜찮으세요.
혹시, 기억을 찾아주지 않는 제가 원망스럽진 않으세요....
 
 
 
 
.
.
.
 
 
 
친구가 병동을 일반실로 옮겨도 나는 매일 같이 퇴근을 하고 그곳을 향했다. 마치 평일에 일어나 회사를 가는 것처럼, 퇴근을 하면 병원에 들러 한두시간 이라도 녀석의 얼굴을 보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이제 하나의 과정이 되어버렸다. 매번 그러니 부담스러워하던 친구의 부모님도 이것이 자연스러워 지셨는지 이제 그만오라는 말 대신에 저녁은 먹었는지, 회사에서는 별 일 없었는지 따스한 질문을 건네주시곤 했다. 어차피 곧 퇴원 하게 되면 병실에 누워 있는 친구를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아끼는 친구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온정을 녀석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말수도 늘고, 규칙적으로 주는 병원 밥 때문에 살이 제법 오른 친구는 어느 날 부모님과 심각한 이야기 중이였다.
 
병실로 들어가 보호자 좌석에 서류 가방을 놓고, 내가 낄 대화 자리가 아닌 것 같아 핸드폰을 보면서 무슨 말인가 조용히 들어나 보자 귀를 기울였다.
 
 
 
 
부모님이 퇴원을 하게 되면 다시 미국으로 가자고 하시네. ”
 
 
이야기를 끝내고, 친구의 부모님이 병실을 나서고, 나에게 음료를 따서 주는 손 끝 넘어 시선에 닿는 녀석의 얼굴이 풀 죽은 강아지처럼 안쓰럽게 내려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옅은 한숨이 서려왔다. 아무래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몸으로, 기억도 잘려있는 자식이 홀로 또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쓰러운 마음도 백번 이해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윤기형 생각이 났다. 호석이는 윤기형 장례도 당연히 보지 못했다. 나는 3일장 마지막에 부랴부랴 정장을 챙겨입고, 발인을 보고왔었다. 아니 보지 못했다. 그 때는 벽에 딱 달라붙어 마치 그곳이 담쟁이처럼 안으로 들어 갈 수도 나갈 수도 없어서, 그냥 한 없이 탈진할 만큼 엉엉 울었던 기억 뿐이다.
 
 
선명했던 모든 것은 그렇게 다 뿌옇게 먼지가 쌓인채로 곱씹어진다. 너무 여러번 되뇌이다 버면 미화가 될 때가 있고, 또 쓸데없는 이야기가 더 살로 붙어질때도 있었다. 어쩌다가 너는 형을 잃어버리게 된걸까.
 
 
 
그래서 갈거야, 미국? ”
“ ... 나는 가고싶지 않은데. 여기서 내가 졸업하고 해놓은 것도 있고... ”
. ”
너도 여기 있고... ”
“ .... ”
그런데 너무 강하게 말씀하셔서... ”
 
 
 
 
내가 뭐라 참결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기에 말을 아끼고, 녀석의 어깨를 여러번 토닥인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
.
 
집으로 돌아와 나는 내가 마치 전력질주라도 한 것 마냥 기운이 딸려, 그냥 바로 침대위로 몸을 날렸다. 조용한 집 안에는 냉장고나, 공기청정기 같이 기계들이 웅얼웅얼 서로 떠드는 소리 뿐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깜빡일 때 마다, 눈물이 차올랐다. 앞이 흐렸다가, 선명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 같았다. 복받쳐 올라오는 모든 것들이 서러웠고, 슬펐고, 애달픈 것들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자켓 안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그 안에서 작은 편지 모양의 봉투를 꺼내었다. 청첩장이었다. 나에게도 오래토록 사랑하는 이가 있었고, 그 사랑을 감히 전할 수 없는 상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 주위를 눈치 챌 수 없게 멤돌 뿐 그것이 최선인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내 이름으로 회사로 배달 된 청첩장 한 통은 그의 결혼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열어보자마자 손이 덜덜 떨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반려자가 된다. 평생을.
 
 
 
태형아, 어차피 우리 다 죽을건데
 
 
내 옆에 윤기형이 있었다.
 
 
말이라도 한 번 해봐.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나는 이제 상체를 일으켜 내 창문 앞에 서 있는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민트색 머리였다. 이상한 일이다. 저건 대학시절에 형을 처음 알았을 때의 첫 인상 그 모습이었다. 죽기직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물 한 살의 윤기형이 너른 사막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 신기루다. 그렇다. 마음 한 켠이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무너지고 있었다. 달려가서 형에게 안겨 위로 받고 싶었지만 그 신기루 같은 모습이 사라질까봐, 감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손등으로 닦여지지 않는 눈물을 여러 번 꾹꾹 억누르며, 나는 그 긴 밤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눈물은 그렇게 날려진다. 어두워 한치 앞을 못 보는 밤에도 언젠가 그렇듯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오게 되고, 이렇듯 금방이라도 넘처흐르는 감정도 사그라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주문마냥 밤새 중얼 대고 있었고, 어느 덧 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리고 그 날은 호석이가 퇴원을 하는 날이었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날 급하게 잡힌 회사 미팅 때문에 챙길 수가 없는 날이었다. 미안하다고 연락해지만 도대체 뭐가 미안하냐며,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회사 일 잘 하라는 친구의 음성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하지만 미팅 장소로 향하는 내내 무언가 점점 불편해지는 묘한 이질감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었다. 결국에는 달리던 차를 갓길에 세우고, 말도 안되는 핑계를 팀장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급하게 가야 할 것 같아, 나 말고 박대리를 보내면 안되겠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팀장도 당황해하더니, 한 번도 내가 그런 적이 없음을 알기에 너그러운 목소리로 김대리 걱정하지 말고 집에 다녀와. 반차처리 할게.
 
전화가 끊기고 핸들을 꺾어, 나는 호석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향하는 도중에 나는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이 일이 너를 더 아프게 할 지라도, 나는 녀석이 퇴원하기 전에, 한국을 급하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떠나기 전에 형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평생 원망하고 미워하고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대충 어린아이 장난감 두듯, 대충 주차를 하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5층을 누른 나는 그 짧은 시간이 영겁마냥 길게 느껴지고 있었고, 묘한 긴장감으로 인하여 입술 안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익숙하게 좌측으로 몸을 틀어, 호석이의 병실 문을 잡고 문을 여는데, 침대가 비워져 있다. 서둘러 가보니, 아직 짐은 있는 것을 보니 잠시 어딜 나간 것 같았다. 안면이 있는 녀석의 맞은 편 침대의 보호자 분이, 청년 전화하러 화장실 간 것 같던데? 하시는 말에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다시 병원의 긴 복도 끝으로 향했다.
 
 
 
나는 그때 내가 담쟁이 넝쿨 같았던, 몰아치는 해일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그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살짝 열린 화장실 문 사이로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고, 마치 돌덩이를 들고 있는 것 마냥 무겁게 핸드폰을 겨우겨우 들어올려 귓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당장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나도 그대로 뿌리 박힌 채 움직 일 수가 없었다.
 
 
- , 진짜 미안해요...
 
 
아마, 이제 착신금지로, 혹은 없는 번호로, ... 연결이 안되는 수신으로 끝났을 형의 전화번호의 끝.
 
 
 
- 내가 괜히 살아서, 형을 기억 한 채로 내가 도저히, 도저히... 살아 갈 수가 없어요.
 
 
 
 
그 자세 그대로 무너지듯 호석이가 쓰러졌다.
입을 겨우 틀어막고 번람하는 울음을 자제 시키기 어려워보였다. 말을 걸 수도,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가 없다는 걸 깨달고, 겨우 천천히 한 발자국씩 움직여 나는 다시 들어왔던 그대로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오후 2시의 햇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차키를 쥐어들고, 차 문을 열기 전에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누군가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결혼축하해요.]
 
 
바람이 머리 매무새를 흐트렸다.
 
 
이 계절의 끝은 또 어디일까,
이렇게 사계절이 끊임없이 돌다가, 또 돌아서 너를 만나는 계절에 나는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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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장면들이 머릿 속에 그려지고, 특히 마지막 태형이의 독백은 정말 영화를 맺는 마지막 장면 속 대사같았거든요. 또 시작을 누군가의 죽음으로 열고 그 주변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줄은 몰랐는데, 같은 사건이라도 역시 시점이 바뀌면 느낌이 많이 새로워지니 흥미로워요. 주인공인 호석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그려졌다면 사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그려졌을 테고, 사고 후 기억을 잃고 혼자 위화감이 느껴질만치 평온한 상태에 있지만 진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알 수 있었겠죠. 하지만 태형이의 시점이라 우리는 호석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전혀 알 수 없잖아요. 몇 가지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그저 상상할 뿐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이 있었다 생각해요. 그리고 주변인에 그치더라도 주변인은 그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도 있는 법이라 중간에 태형이의 이야기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태형이가 말 못할 짝사랑을 해왔던 사람은 누구일지 그것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결국 결혼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데에 그치는 편을 택했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니 호석이는 결국 한국을 떠나면서 이 사건도 흐지부지 마무리될 것 같아 씁쓸하고 울적해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충분히 그 사람을 보내 주기까지 슬퍼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가장 슬퍼해야 하는 사람이 제대로 슬퍼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비밀에 붙이느라 슬퍼해 주질 못하다 보니 애도를 충분히 표하는 것이 그 사람의 지난 인생과 죽음에 대한 예의일텐데 그게 온전치 못해서 안타깝고 허무감마저 드는것 같아요. 꼭 그 사람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되니까요...
생각과 감정들이 꼬리를 물게 되는 글이었네요. 어쨌거나 좋은 글 감사드려요 !

 


하노이의 겨울 
 
“ 알아? 윤기형 여행 갔어. ”
시킨 지 꽤 된 아메리카노는 이미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렸다. 컵 홀더를 일 없이 돌리면서, 나는 방황하는 시선을 고정 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앞에 친구는 굳이 알고 싶지 않는 불필요한 정보를 흘리고 있다. 왜냐면 내가 민윤기와 3년 가까이 만나 온 연인이었고, 또 이제 헤어진지는 반년 정도 지나가는 옛 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을 다 잘 알고 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괜찮냐는 질문에, 애써 언제적 일인데.. 괜찮아. 라고 팔자에도 없는 쿨한 척을 한 탓이다. 나의 발연기를 그대로 믿어버린 친구는 그러냐? 하면서 듣고싶지 않고, 알고싶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화수분 마냥 콸콸 쏟아대고 있었다. 차라리 안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친구의 입에 그대로 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다 털어버리러 갔다더라. ”
일 없이 컵홀더를 만지작 거리는 내 손을 보면서 생각났다.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절반 이상 남겨 식어버린 이 검고 쓴 물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걸까. 잠시 그 물이 블랙홀이라도 된 것 마냥 갑자기 거대해져서 나를 빨아들였다. 헤어진 연인은 나를 털어버리러, 나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침표로 여행을 선택했다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로.
아주 웃기는 양반이야.. 서로 사귀던 시절에는 어디로 놀러가자, 여행 한 번 가보자 하면 알겠다고 대답은 아주 기가막히게 해놓고서는 막상 세부 일정을 잡으려 치려면 슬그머니 능구렁이 마냥 피했으면서. 그렇게 집이나 작업실의 지박령 마냥 붙어 있던 사람이 말만 들어도 복잡스럽고 더운 나라로 여행을 긴 시간 동안 떠났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친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일렬지어 내뱉는다. 그러는 동안 난 그 블랙홀에 빠져들어서 다른 생각의 해일에 덮쳐졌다.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그거야, 내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민윤기가 가만히 나를 보더니, 곧 알겠어. 라고 대답했으니까.
긴 시간 엮여온 관계가 쫑 나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는 것 마냥 쉬웠고 별거 없었다.
.
.
.
그래, 싱겁고 별거 없던 이별이 스믈스믈, 내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 질 줄 몰랐던 그때에. 나는 혹독하게 사람의 부재를 열병처럼 앓고 있었다. 혼자 자다가, 일어나면 일 없이 눈물이 흘렀고, 배고파서 냉장고 문을 열다가, 민윤기가 사놓았던 캔커피 몇 개를 보다가, 그것을 부여잡고 또 울었고, 새벽 내내 그 동안 나눴던 카톡 대화를 복기 하고 또 복기하다가 또또또 울었다. 그 와의 이별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미리 예방하지 못했던 탓일까. 나는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흩어진 나를 주워 담기란 나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 같다. 매일 울고, 잠에 못 들었으며, 끼니도 자주 걸렀다. 그러다 보니 한달 사이에 살이 5kg 이상 빠졌고 얼굴은 푸석했다. 누가 봐도 이별한 사람의 티를 아주 그냥 팍팍팍 내고 있었다.
회사에는 사표를 제출했다. 뭐, 고깟 이별 하나 했다고, 밥 벌이 까지 끊어버려? 미친거야?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어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긴 했어도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래,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어른이기에 내 생활을 책임 지려면 당연히 일을 해야했다. 그만 두게 된 것은 아주 강력하게, 타인의 압력이었다.
사실 민윤기와 헤어진 것도 회사를 그만 둔 것과 같은 이유가 작용한다.
회사 여름 휴가를 받고, 본가인 광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연인은 나에게 아주 살뜰하고, 애틋한 사람이었다. 나와 여행은 죽어도 안 가도, 나를 대함에 있어서는 1분 1초도 배려가 없던 순간이 없었다. 그 날도 짐을 싸던 내게 광주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운전하는 동안에는 푹 자라며, 담요까지 챙겨왔으니까. 그런 그가, 본가 아파트 단지 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그의 차 옆에서 한참을 안고 있다가, 며칠 못 본다고 손을 잡고 꾸물거리기도 또 그렇게 한참을 너 먼저 들어가, 형 먼저 차 타는거 보고.. 하며 제법 닭살스러운 줄다리기를 할 때였다. 그가 나에게 입을 맞췄고, 당연히 나도 응했다. 그러니까, 연인 사이에 별일 아닌 하나의 제스쳐.
그걸 우리 친형이 본 것은 아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연인을 먼저 보내고,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갑자기 친형이 이 모가지를 잡아채더니,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바닥으로, 깡그리 던져버리더니, 우악스러운 몸놀림으로 바로 내 얼굴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빵이라는 것을 아주 거하게 치루는 중이었다. 고개가 훽 돌아가면서 바로 코피가 얼굴을 타고 흘렀다. 맞긴 맞더라도, 이유를 알지 못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미쳤어? 왜 이래? 하고 꿱 하고 소리를 지르니, 친형은 아예 내 몸 위로 타고 올라 멱살을 잡고 내 몸을 반동 시키며, 사정없이 상체를 구타했다.
‘ 이 미친새끼가, 붙어 먹을 게 없어서 같은 사내새끼랑 붙어먹어? 돌았어?! ’
눈앞이 하얘졌다가, 까맣게 번졌다를 수 없이 반복했다. 사형수의 마지막 심정이 이랬을까. 정말 단두대에 머리를 들이밀고, 목 위로 날아올 칼날마냥 친형의 다음 말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 날 들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찰진 욕들은 다 들었다. 나는 아마 최고로 장수할거다. 그리고, 태권도를 전공하고 사범으로 일하 던 형의 찰진 주먹 덕분에 코피가 흐르고, 온 얼굴에는 멍 자국이, 그리고 결국에는 이가 하나 금이 가, 치과에 가서 돈이 수십 깨졌더랬다.
나 보고 했던 더러운 새끼, 정신병자, 미친놈, 그런 말들은 나를 움직이기에 크게 영향력이 있는 말은 아니었다. 실컷 맞고 나서, 허리를 일으켜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낼 쯤에 초연한 내 얼굴을 본 친형이 또 결국에는 제 분에 이기지 못하고 날뛰었다.
‘ 그 새끼 직장에 찾아가서 더러운 게이새끼라고 아주 사회생활 다시는 못하게 할거야. 알아? ’
아주 인생 좆되서 해서, 그런 새끼들은 다시는 사회에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돼 알아들어?
나의 사정으로 민윤기에게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게다가 다혈질이 얼마나 지랄인지, 우리 친형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나중에는 뭐, 그 새끼 부모를 찾아가서 다 말할 거라는 둥,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거라는 둥 말도 안되는 협박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출 줄을 몰랐다.
놀란 마음이 이제야 침식한다. 흐렸던 흙탕물에서, 잔해들이 아래로 침전하는 것이다. 친형은 그렇게 제가 하고 싶은 것만 나에게 다 풀어놓더니, 쌩 하니, 먼저 집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널부러져 있던 나는 그제야 뜨거워진 눈물을 가득 담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맘 한 켠에 걸려있는 이 무거운 독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퍼졌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징징- 하고 제 몸을 울려 소리를 내었다. 꺼내어 보니 발신인 이름이 민윤기다. 그 화면 위에 뜬 세 글자의 이름을 보면서 나는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형 어쩌면 좋아.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게, 사랑하는게 정신병에 걸린 일이래.
형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부모님은 내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기겁을 했고, 동네 깡패들 한테 맞았다고 이야기 하며 친 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내 쪽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형은 나에게 그 새끼와의 관계 정리하고, 서울의 집도 직장도 다 정리하고, 광주에 내려오라고 으르렁 거렸다. 뭐 드라마 대사라도 되는 것 마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새끼를 매장 시킬거고 어쩌고 저쩌고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말들을 계속해서 이어붙인다.
다시 광주에서의 한 마디로 지옥 같은 휴가를 끝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날에 나는 아직 멍이 가시지 않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끼고, 형의 회사 근처 카페로 그를 만나러 갔었다. 왜 그 동안 연락이 없었느냐고 가까이 다가와 앉는 그의 체향과 숨결이 닿을 때, 부둥켜 앉고 그간의 일들이 너무나 서러웠노라,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며 그냥 그의 큰 손에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헤어지자.
내내 바닥에 고개를 박고 웅얼거리다가, 대뜸 뱉은 나의 말에 그가 놀란 듯 덩그러니 혼자 떨궈진 사람 마냥 나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그대로 나에게 꽂혔지만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모든 행동에 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계속 억지로 그를 메두사라고 생각했다. 그를 보는 순간에, 얽히는 그 까만 눈동자를 보는 순간에,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보던 사랑해서 헤어지는거야.. 그런 병신 같은 순간이 내 인생에서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진심이야?
그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짤막하게 끄덕였다.
알겠어.
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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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 회사를 매일 매일 욕을 하면서 다녔어도, 그간 든 정이 있었나 보다. 왜 그만 두는거냐고, 닭꼬치처럼 묻는 부장의 얼굴에서도 참, 미운정이 무섭구나 싶었다. 사직서를 처음 써보고 제출하는거라 돌아와 일 했던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손 끝에 미련으로 자꾸만 끈적대었다. 시간은 빠르다. 정해진 수순이 있는 일들은 그 빠르기가 더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마지막으로 회식을 하고, 전셋집을 정리하며, 보증금을 돌려받고.
그 사이 정해진 이삿날이 오기 전에 집 안의 집을 하나씩 빼버리는 일은 어쩌면 영혼의 일부를 덜어내는 기분과 닮아 있었다. 온갖 곳에 그의 흔적과 추억이 담담하게 스며있었기에. 나는 서울의 집에 있던 물건 중 작은 것조차도 광주로 가져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것들은 업자를 불러, 팔아버렸고, 그가 사준 태블렛이나, CD같은 것도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통해서 하나씩 없애버리고 있었다. 그 물건들이 나와 계속 함께 한다면 계속해서 과거가 떠올라 질 것이며, 떠올라진 과거는 또한 미화 될 것이며 그 가운데 그가 서 있다. 계속해서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라만 보겠지.
지금도 이렇게 매일 형, 내가 하노이의 날씨가 어떤지, 매일 이렇게 확인하잖아.
어쩜 이렇게 쉽지가 않을까. 이렇게, 이다지도 이렇게 힘들고 지치는 일일 수 있어.
날씨 어플로, 하노이를 검색하며 나는 속으로 계속 빌었다. 비가 왔으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폭우가. 그리고 우레가 내려치길 바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텔방에 갇혀 있던 민윤기가 나를 떠올리기를 바랬다. 여행을 다니며 무엇을 보고 누군가를 만나며 또 가끔은 카페에 앉아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아이스 커피를 시켜놓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면 해야 할 새로운 미래의 계획 같은 것들을 세우며 과거의 자신의 허울과 과오를 그대로 내다버리는 것. 그가 버리는 수 많은 버리는 것들 중에 내가 하나가 되어 같이 나뒹구는 일 같은 것.
그의 새로운 미래에는 이제 내가 포함되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그가 나를 떨쳐내고, 잊어가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한 없이 무섭기만 했다. 그것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래, 그렇게 그의 안에서 내가 아득하게 멀어져만 가는 일을.
전세로 놓았던 집의 보증금을 곧 돌려받았다. 집이 나갔다고 했다. 원래 백색소음을 좋아해서 혼자 있더라도 TV같은 것을 켜놓고 있었는데, 뭔가 죽는 날을 받아 놓은 환자 마냥, 나는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적막속에서 나를 던져 놓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익숙한 천장의 무늬들을 바라보다가, 관자놀이 사이로 눈물길이 또 스치운다. 옆을 바라보니, 민윤기가 선물한 액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데이트를 할때면 자주 카메를 가져나와서, 주변의 풍경이나 나를 찍기를 좋아했다. 
돌아가는 셔터음이 나를 매번 향하는 일이 민망하고 부끄러 같이 사진 좀 찍자고 하면 손사레 까지 치며 질색했다. 그런 그는 자주 나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서 선물 하곤 했었고, 받은 액자들을 TV옆이나, 책상 위에 진열하곤 했었고, 우리집에 자주 놀러 올 때면 마치 전시회에 온 사람 마냥 감상하듯 사진들을 보곤 했었으니까. 이제 와서는 참 별게 다 집착이 되어지고, 별게 다 섭섭해진다.
민윤기는 어차피 헤어질거라는 멀지 않을 사실을 알고서 나와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게 아닐까.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은 나인데, 온갖 헤어짐의 구질구질한 미련이 달라붙어 스스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준 물건들은 정리를 하고 있었음에도 저 액자 속 사진들을 버리지 못한 것은, 저렇게 밝게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이 이제는 신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삿짐을 빼기로 한 날도, 나는 자꾸만 울컥하게 붉어지는 얼굴의 낯빛을 진정 시키려고 노력 했다.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집 안의 곳곳의 물건들이 비워져가고 있었다. 가득 차 있는 물컵을 발 아래로 쏟아부어버리는 일 같이 느껴졌다. 그래, 발 밑이 서늘하게 흥건해져 오고 있었다. 커다란 집은 어차피 광주에 들고가 봤자길래, 업자를 불러 큰 짐은 중고처리 하고, 작은 짐들은 용달차 뒤에 업혀진 채로, 고속도로를 탔다.
원래는 같이 나도 바로 집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 놈의 구분이 무엇인지.... 나도 민윤기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노이 여행처럼 어떠한 새로운 시작점에 대한 구분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형에게 전화를 해서, 짐 먼저 내려보냈으니 잘 챙겨달라 이야기하고, 나는 하루만 더 있다가 광주로 내려갈테니 걱정하지 말라 언지를 일러두었다. 친형은 또 뭔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내색이었지만 말 그대로 민윤기와 헤어지고 또 직장도 정리하고 광주로도 내려가는 나에게 더 이야기 해봤자, 튕겨 나갈까 싶었는지 짧게 대답만 몇 번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어져 있는 집 안을 멍하니 관음하다 바라보았다. 추억은 이렇게 채워졌다가, 또 이렇게 비워진다. 사랑이 하나 시작되었다가, 끝나는 것은 이렇게도 마음 아픈 일이라...
너라는 사람의 이름 세글자가 이다지도 선명하고 지우기 어려운 것이라. 나는 이미 지우는 것 자체를 포기했으니. 그래, 이렇게 구분값을 이미 두어봤자 아무소용 없다는 것을 이미 금방 너무 빠르게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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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깃을 여미고, 비어있는 집을 나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의 큰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말 그대로 터덜터덜 거리는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와서, 낮은 공기를 한 번 들여쉬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하늘의 먼 끝을 바라보았다. 옅게 먼지는 한숨 끝으로 사라지는 입김이 비슷하게 스며들어간다. 이곳은 어디더라, 나는 또 누구더라. 원초적인 것들은 그렇게 갑자기 존재의 의미를 부각 시키며, 또 난데없이 나타나고는 했었다. 내가 아직은 많이 우울한가보다 싶었다.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이제는 발길을 돌려야했다. 아파트로 나가는 길목께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나는 우뚝 멈춰서서 단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민윤기다.
민윤기가 서 있었다. 형은 원래, 피부가 안 그래도 하얀편인데, 잘 타지도 않았따. 햇빛이 그을릴때면 나만 까맣게 타고, 형은 울긋불긋 붉은 반점이 올라왔었는데, 하노이에서 얼마나 햇빛을 받고 돌아다닌 것인지 온 모자를 쓴 그늘진 얼굴 아래로 붉은 반점이 가득했었다. 등 뒤로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고, 지쳐보이는 듯한 얼굴이 너무나 반가워서, 바로 달려가 안아버릴 뻔 했었다. 마치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에 꾸는 달큰한 꿈 같았았다. 아아, 그렇다. 꿈인가 보다.
멈춰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 그도 쉽사리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다가와, 몇 걸음 앞에 멈춰섰다.
“ 석아. ”
형은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애칭처럼 불렀다. 난 그게 좋았다. 석아.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내 이름을 부르는데도 나는 쉬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 ...석아. ”
“ ... ”
하고 싶은 말들이 우물마냥 모여서, 입 안에 고였다. 나도, 그도 그래보였다.
그는 다시 우물쭈물 몇 걸음 더 다가와, 바로 내 옆에 서서, 내 손을 잡더니,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그건 편지였다. 언제 쓴 건지 묶여진 편지 끝이 꼬질하게 닳아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푹 숙여진 고개는 언제 들릴 것인지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그렇게 지상으로 낙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용기가 없었다.
“ 내가 싫어..? ”
    “ ...형.. ”
   “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어? ”
아니, 아닌데. 그게 아닌데. 멋있고 다정한 나의 사람에게.
“ 그래서 그래..? ”
    “ ... ”
    “ 그럼 석아, 있잖아... ”
그렇게 걷다보니 이것이 벼랑 끝인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친형이 내게 주먹질을 하고, 민윤기의 인생을 망친다고 겁을 준다고 했었더라도, 나는 그의 손을 놓아버리면 안되었다. 나는 그게 그를 위한 길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한 없이 떨고 있는 목소리를 듣고서 알아버리게 되었다.
“ 있잖아.. 네가 나를... ”
조금만 참아 줄 순 없을까..
    버텨내 줄 순 없을까...
    나는 너 없이, 없이...
fin

[슈홉] 모/월/모/일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그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괜찮을거라고 매번 나를 가다듬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1달 정도 뒤에 수리 될 테니, 그간 인수인계를 부탁한다는 부장님의 말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세로 살게 된 집을 다시 급작스럽게 내놓았고, 그간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긴 했지만 내가 어지러놓은 것들에 대한 몫이라 생각하고 착실히 진행하였다. 집이 깔끔했던 탓일까, 몇 번 보러 온 사람도 없는데 금방 집은 나갔다. 전세금을 돌려 받던 날에 맞춰서, 이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나는 제주도에 내려가기로 했다. 작은 소망같은 일이었다. 연고도지도 아니여서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고독으로 뿌리를 내리고 혼자만의 어둑한 삶을 그대로 참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죗값이라 생각했으니까.
사실 그렇게 존재 자체를 감추려면, 이민용 가방에 모든 걸 실고, 해외 나가버리든가 해야해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외국어는 쥐약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결심한 모든 일에 이렇게 변명이 따라다닌 것은 우습고도, 우스운 일이었다.
집 안의 있는 모든 집도 중고판매점에 중고가 보다 말도 안되는 가격에 싸게 팔아버렸다. 정말 이 가격에 파세요? 라고 몇 번을 되묻는 사장 아저씨의 말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얼른 이 서울을 떠나야 하거든요. ’ 그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집 앞 푸른 칠이 곳곳에 벗겨진 용달차가, 냉장고며, 세탁기며, 몇 번을 왔다갔다하더니 모습을 감췄다.
곧 텅 비어버린 집 안을 관철하듯 바라보고, 나는 이제 부스러기 같은 먼지들만 앉은 거실에 대자로 들어누워서, 눈을 감고, 들어오는 햇살을 이불 삼아, 잠시 잠에 들었다. 꿈을 꾼 것 같다. 텅 비어 있던 집 안에 다시, 물건들을 채워지고, 사진들이 걸리고, 또, 그 안에 네가 서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가, 잠든 내 얼굴 위로 서서 그림자를 드리우며, 얼굴을 감싸 준다.
 
‘ 형. ’
‘ .... ’
‘ 나 왔어. ’
 
그 말에 나는 말도 안되는 꿈이구나. 싶었다. 이런 걸 자각몽이라고 부른다고 하지.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어서,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그대로 느끼며, 나는 숨죽였다. 꿈 속의 너는 무릎을 꿇고, 내 얼굴을 감싸 안아주었다. 이제 이 집에서의 마지막을 나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체념 한 듯 내려놓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려웠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맘을 얻기도 어려웠다. 놓친 손은 자꾸만 엇나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그 마음은 잘못 된거야. 틀려먹은 관계야.
그렇게 한참을 울면서 누워있다가, 잠들었는지 현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을 떴고, 해는 완전히 저버렸다. 어둠만이 진득하게 내 몸이 달라붙어, 울부짖고 있어으며, 나는 그것들을 털어내고 일어났다. 열쇠로, 마지막 문을 잠그고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은색의 차갑게 식은 키를 바라보다가, 눈 앞이 흐려졌다가, 열쇠도 같이 울렁거리다가 사라져버렸다.
이제 아파트 단지를 완전히 나와버린 나는 곧 몇시간 뒤 밤 비행기로, 제주도로 향할 것이다. 거기서 맞는 아침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은 없다. 다만, 네가 없이 바다가 너는 영원히 혼자일거라고 말해주는 그 밤을 내일의 내가 어찌 견딜지가 궁금했다.
 
 
 
-
 
 
 
엄마가 자살했다. 아빠를 포함한 가족들이 전부 내 탓이라고 몰아갔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엄마가 나 때문에 죽겠다 마음을 먹은 들, 스스로 손목을 그은 건 엄마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맑간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는 나에게, 피도 눈물도 없어서 제 어미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조롱하고 비아냥 거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열여덟 나의 세계는 무료하고, 텅 비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웽웽 차오르는 메아리도, 조금만 지나가면 다 사라지게 되는 일이다.
아빠는 너를 더 이상 책임 질 수 없다며, 나가라 소리쳤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 윤기야, 안녕? 이모 기억해? ]
[ .... ]
[ 윤기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가, 엄마랑 이모랑 자주 만났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 그치? ]
 
 
그렇게 속절없이 부숴지고 있는 나에게, 단발머리의 중년의 여성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기억난다. 엄마의 여동생. 웃을 때 휘어지는 눈동자가, 나보다도, 엄마와 가장 많이 닮았었던 사람.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쯤 이모는 가족과 함께 새 터전을 꾸린다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었고, 엄마가 죽었을 때 쯤에, 그 곳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사업차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 이모네 집자랑은 아니지만 진짜 크다. 너무 커서 방도 여러 개고. 우리 윤기가 쓸 방도 있는데.. 윤기만 괜찮으면, 이모랑, 이모부랑, 그리고 호석이랑, 또... 윤기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
 
 
 
이모가 웃어줬다. 마치 초승달을 엎어 놓은 듯, 가느다란 눈이 휘어지게 웃어줬고, 그 안에 접히는 무감각한 얼굴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녀를 안고 엉엉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탈진 할 정도로 많이 울었던 날은 처음이었다. 이모는 별 말 없이 내 어깨를 안아주며, 젖어들어가는 본인의 어깨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이모에게 작은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었다.
 
 
[ 몰랐어요. 방에서 노래를 듣고 있었어요.. ]
[ 그래. ]
[ 엄마가 욕실에서, 손목을 그었는지 난 정말 몰랐어요. ]
[ 알아. ]
[ 엄마, 엄마가.. 죽은 건 저 때문이예요. ]
[ 아니야... ]
[ .... ]
[ 아니야. 윤기야. 엄마가 죽은 건 너 때문이 아니야. ]
[ .... ]
[ 아니야 ]
 
 
열여덟, 버려진 나의 손을 다시 붙잡아 준, 하얗고 작고 마른 손. 그리고, 호석이.
저는 늘 생각해요. 그때 이모를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삐뚤게 살았더라도, 지금처럼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이모도 그렇지요. 저를 데려 온 걸 후회하시죠.
 
후회 한다고 말해주세요. 이모가 그 마저도 저를 안아주신다면,
 
저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아요.
 
 
.
.
.
 
 
“ 여어~ ”
“ 그 아저씨 같은 인사 좀 안 하면 안될까요. ”
 
공항 의자에 노숙자처럼 누워 있던 내 옆으로, 베이지색 얇은 코트를 걸친 석진형이 다가왔다. 까만 바둑알 같은 눈동자는 여전히 잘생김이 빛나고 있었고, 좁다, 일어나봐라. 하는 그의 핀잔에 부스스 몸을 일으키니, 한 참 내가 이러고 있었나. 몸이 찌뿌둥 했다.
 
 
“ 진짜 동생아, 노숙자 같고 창피하다. ”
“ ... ”
“ 몇시 비행기냐. ”
“ ...새벽 네시 반.. ”
“ 거지같이 애매한 시간이네. 왜? ”
“ 그래야 도착하자마자, 해가 뜰거 아니예요. ”
“ ... 아휴. 아주 그냥 현해탄을 건너지 그랬어? ”
“ ...내가 윤심덕이예요? ”
“ 윤기야. ”
“ 왜요. ”
“ ....호석도, 너 가는거 알아?. ”
“ 몰라요. ”
“ 이제 나한테 이야기 하고 가. ”
“ 뭘요. ”
 
 
 
석진형은 손목에 걸린 제 시계를 내 눈 앞에 드밀더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지금 밤 열시 반이다. 새벽 네시 반 까지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남았어요. ”
“ 그래서요. ”
“ 서울에서 마지막이니, 다 말하고, 다 쏟아버리고 가. 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해줄게. ”
 
 
 
해의 한 귀퉁이를 달이 끌어당겨 버린다. 그래서 밤이 되었다. 나는 겉옷 사이로 몸을 숨기며, 새초롬한 얼굴로 형을 바라보자, 형은 그 말간 얼굴로 나를 내내 바라보기만 했다. 열 여덟부터, 지금의 나이 서른 둘 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말하라라고 하면 나는 팔할을 정호석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살아왔다. 애원하고 매달라고, 어떻게든 눈에 한 번 들어보고자, 병신 같은 짓을 내내 하며, 십여년을 버텨왔다. 내 사촌을, 내 손을 유일하게 잡아두었던 이모의 하나 뿐인 외동아들인 호석이를.
 
호석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나에게 필연적인 이유라, 누군가가 왜 좋아? 왜 하필 남자를? 왜 하필 가족을..? 이라고 나를 닦달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태어나서 정해진 수순과 운명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내 세치 혀가 낭만적인 그럴 듯한 이유를 덧붙인다 해도 퇴색이 되어 질 뿐이었다. 다와는 다르게 모든 걸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늘 반짝이는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는 옆얼굴을 가만히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세상의 대한 반감과 원망이 사그러들 정도였다.
그렇게, 열여덟에서 스무살 성인이 되었고, 내 감정에 붙은 이름표를 정확하게 알게 된 순간.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녀석의 팔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이년은 기다렸죠. 나 보다 두 살 어리니까, 내가 대학교 1학년때, 걘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까요. ”
“ 그래, 아주 양심적이다. ”
“ 이제는 잘 기억 안 나요. 호석이가, 대학생이 되고, 봄 쯤 지났을까, 말했어요. ”
“ 대단하네. ”
“ 아니 근데 나만 좋아한게 아니었단 말이예요. 이거 왜 이래요. ”
“ ... ”
“ ...그래서 형, 더 그래요. ”
“ 뭐가. ”
“ 아예, 그때 호석이가 내 손을 잡지 않아줬더라면, 그 아파트에서 우리가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함께 한 기억이 없다면, 내가... 그러니까... ”
 
 
 
그렇게 스무살이 된 호석이에게 고백했을 때, 돌아올 대답이 어떤 무엇인지를 대충 예감하고 있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그 외의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녀석은 충격 받은 얼굴로 나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내내 아무말이 없었다. 당연히 거절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자조적으로,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좋아요 라고 짤막하게 들려온 호석이의 음성에 살아오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쌓아올린 나의 성을 누군가가 불쌍하게 여기시어, 이제는 궁상 좀 그만 떨라, 내려준 하나의 동앗줄 같이 보였었다.
 
 
바로 입을 맞추고, 혀가 얽히면서 붙잡았던 너의 얼굴과, 체온과, 같은 숨소리 하나가, 마치 문신처럼 뇌리에 남아서 사라지질 않았다. 이모를 보는 것은 죄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갖은 알바를 한 돈으로, 결국 자취를 하게 되었고, 호석이는 일주일에 몇 번을 들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날의 온도와 그 날의 새벽을 같이 나누어 가졌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 두살, 호석이가 스무 살. 가장 어리고, 철없던 날의 시낭송 같은 시간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것이 독백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남자 둘이서 사실 크게 할 수 있는 남부러운 데이트 같은 건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내 방에서 같이 듣거나, 가끔은 미술을 좋아했던 녀석을 따라서, 적성에도 안 맞았던 전시회를 보기도 했었지만, 취향과 별개로, 호석이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서, 소주 두어 병을 사고, 콘돔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고. 곧 씻고 나와, 뽀득한 얼굴 곳곳에 버드키스 하듯 입을 맞추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쇄골 아래로 깊이 파로 들고, 가슴께로, 얼굴을 돌아 붙이면 아기새 마냥 팔딱팔딱 뛰는 녀석의 심장 소리 아래로, 그대로 속옷을 벗겨, 녀석의 그것을 물고서는 한 참 동안 놔주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럴때면, 제 손으로 입을 꼬옥 가리고, 눈을 찔끈 감은 채로 오열하듯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호석이가 그렇게 먼저 내 손에서 파정을 하고 나면, 나른해진 몸을 뒤로돌려, 젤을 손 안에 가득 짜, 녀석의 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으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꽉 붙잡고 있는 가녀린 손길 마저도, 긴장하여, 근육이 가로로 진 땀이 맺힌, 허벅지 사이며 내가 좋아하지 않은게 없었다. 곧 내 것을 호석이의 애널 사이로 천천히 집어넣으면, 까득하게, 허리가 위로 튕겨져 올라와, 나는 그것을 억지로 눌렀다. 조금씩 맞물려져 들어가면, 허리짓을 시작하게 되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작은 호흡마저도. 그 저물어가면서도, 밝아오는 새벽의 습윤함.
 
이 말을 하면 호석이는 언제나, 변태같고 더럽다고 했지만 진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녀석에게 박힌 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고통과 환희의 한 부분이 되어서.
 
 
 
“ 엄마가 미워요. 왜 나는 엄마의 아들로 태어났을까. ”
“ .... ”
“ 그렇게 매일 사랑하고, 아껴줬지만, 나까짓게, 어떻게 세상을 이겨요? ”
“ .... ”
“ 내가 어떻게, 우리 이모를 이겨요. ”
“ .... ”
“ 호석이가 스물 일곱살이 되고, 이제 취직을 하게 됐을 때, 울면서 말했어요. 엄마한테 미안해서, 더 이상 나는 못할 것 같다고. 형 미안하다고. ”
 
 
어둑해지는 카페 안에서, 호석이는 그렇게 내내 눈이 붉어지게 울고만 있었다.
[ 나는 네 그림자로 살게... 호석아. 네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고,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또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도 나는 상관없어. 아주 작은 틈만 허락해 준다면, 나는 일년이고, 십년이도 너 기다릴 수 있어. 제발, 부탁이야. ]
 
 
제발 부탁이야.
제발,
나 버리지 말아.
 
 
 
“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게 칠년을 꼬박 넘겨도, 헤어지는 건 하루도 걸리지 않더라고요. ”
“ .... ”
“ 그러니까요. 이런 말도 안되는 셈을 하는 세상을, 나까짓게 어떻게 이겨 먹어요. ”
“ ....야. ”
“ 왜요. ”
“ 공항 편의점엔 팩 소주 안 파냐? 술 말린다. ”
 
 
 
석진형은 웃는건지, 슬픈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호석이가 스물일곱, 그리고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우리는 헤어졌다. 사랑의 시작은 두 사람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헤어짐엔 한 사람의 다짐만으로도 가능했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멍해질때가 많았다. 멍한 시간은 즉 고요를 뜻했고 네가 없는 시간을 뜻했다. 너의 운명 안의 주사위에는 여러개의 점들이 찍혀져 있었겠지만, 나의 주사위에는 오로지 너라는 점뿐이 찍혀있질 않아서,나는 다시 무언가를 돌릴 수가 없었다.
 
 
‘ 형 있잖아. 정말로. ’
호석아.
‘ 정말로, 형. ’
호석아.
‘ 윤기 형. ’
 
 
엄마가 죽었던 그 날, 나의 미성년부터 지금까지 달라진게 없다는 걸. 이제 알았다.
너는 왜 자꾸,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걸까.
 
.
.
.
 
 
 
“ 근데 호석이가 모르는게 하나 있어요. ”
“ 뭔데? ”
“ 나는 이모한테 말했어요. ”
“ 미쳤냐? ”
“ ....내가 뭐, 그런걸 말했겠어요. ”
“ 그럼...? ”
 
 
 
 
 
제주도로 가기 전, 그러니까 오늘로부터 이틀 전,
 
나는 이모네 집으로 향해서,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왔노라,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얼굴을 만져주는 이모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후식으로 내놓은 예쁘게 잘린 과일들을 나누어 먹으며, 그간 밀린 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이야기가 마무리 될 쯤에, 나는 감히 그제야 그녀의 눈을 피하면서,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 이모, 저 서울 일 다 정리하고, 어디로 가요. ]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냐고 묻는 이모의 물음에, 나는 열여덟, 엄마를 잃었던 장례식장의 미성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이모... 저, 호석이를 좋아해요.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음에서 한 번도 져버린적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요... 집은 어차피 빼버렸고, 찾아오셔도 저 없어요. 제가 어디로 가는지는 말씀 안 드릴거예요. 핸드폰 번호도 바로 바꿀거고요.... 그러니까, 이모, 우리 이렇게 보는게 마지막이에요. ]
 
순간의 침묵이 거대한 블랙홀을 만들어 버리고, 그 안으로 나와 그녀가 떨어진 것 같았다.
 
 
[ ...약속해요. ]
[ ... ]
[ 다시는 호석이 안 봐요. 이모도요. 그러니까 오늘이 우리... ]
[ 윤기야. ]
 
 
 
사랑을 수없이 맹세하던 밤마다, 내 품안에서 잠들었던 네가 환상인지 모르고, 그대로 가져가려고 했던 벌을, 난 그렇게 그대로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앞으로도, 살아가야겠지만. 부디 혹시 니가 나를 다시 찾는다 마음 먹는다 하더라도, 이 빚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이렇게 도망치는 나를 부디, 용서해주기를.
 
 
[ 윤기야. ]
[ 죄송해요... ]
[ ..... ]
[ 죄송해요 이모.. 나 정말 너무... ]
[ .... ]
[ 죽고싶어요... ]
.
.
.
 
 
 
“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
“ ..... ”
내가, 내 목에 걸린 두꺼운 금목걸이를 보여주니, 석진형이 뭐냐, 조폭이야? 하고 묻는다.
“ 그렇게 도망치듯 이모네 집을 나오는데, 이모가, 맨발로 막 뛰쳐나와서 나를 부르더니.. 이 금목걸이를 주는거에요. ”
“ .... ”
“ 윤기야.. 어디 가더라도, 배 굶지마. 이모가 지금 급하게 줄 수 있는게 이것 뿐이야.. 하고. ”
“ .... ”
“ 이 목걸이 무게가 천근 될거예요. 내가 이거 하고 바다 속으로 그대로 다이빙 하면, 아마, 바다 끝까지 가라앉아서, 아무도 나를 못 찾을 걸. ”
 
 
 
형은 그날 새벽네시까지 공항에 있어줬다. 그 후에는 별 거 아닌 세상 돌아가는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제주도로 놀러갈테니, 어찌되든 정신 붙들고 살라는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의 하늘 빛은 호석이의 그 심연의 안을 닮았다. 반짝이는 별들과, 멀리서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밝아오는 총천연색의 빛들.
 
 
이제, 정말로
나도
너를 잊으며 살아도 되는걸까.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모 월 모 일
어느 날, 내가 서울을 떠나면서, 누군가에게 푸념을 늘어놨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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