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총전력 #뷔진 안아줘 - 상대의 입이 네모나게 벌어지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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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더스 #방탄 진과 뷔가 다투던 날 눈물보이던 #뷔 #뷔진 #진뷔Culture/MusicNowhere Cafe2018-06-11 16:13

 

#번더스 #방탄 진과 뷔가 다투던 날 눈물보이던 #뷔 #뷔진 #진뷔

팬들 앞에선 거의 눈물을 안보이는 편이라 덬들도 이렇게 우는거보고 깜짝놀랐단 반응이 대다수였던.. 멀쩡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화면이 어두웠던 탓에 영상을 보는 팬들 대다수가 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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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약19금) 주드 감성 날라리 윤기 x 알바생 호석 1편

슈홉(슈가x제이홉) 빙의글 (19금인듯아닌듯) 주드 감성 슈홉이 보고싶어 석이는 학자금대출 받아서 지방에서 상경해서 대학다니는 학생이구, 민이는 펜트하우스에 사는 개부자 날라리, 지 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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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제이홉 X 슈가 - 도슨트 호석 도둑 윤기 설정 #jhope#suga

호섟이 미술관 도슨트로 일하는데,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브아피 방문으로 당장 내일 아침까지 자료 준비할게 있어서 갑작스레 야근을 하고, 뻐근한 목 주무르며 홀로 나오는 중간에 완전 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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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19금 타래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txt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Culture/Music 슈홉 시대물 사극 미래에서 기다릴게 - 슈가 X 제이홉 #sope #jhope #suga 슈홉 시대물 사극 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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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시대물 사극 미래에서 기다릴게 - 슈가 X 제이홉 #sope #jhope #suga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6:09 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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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단편 3개 모음 - 새드/기억상실, 너만 아는 세월이 너무 슬프잖아 - 슈가 X 제이홉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래 txt 슈가 X 제이홉 #sope #suga #jhopeCulture/MusicNowhere Cafe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5:29 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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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홉 소개팅 썰 모음 타래 txt 슈가 X 제이홉 #sope #suga #jhope

석진 X 남준 회사원 유니버스 사내 카페 TXT - 단편 #랩진 #namjin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5:29 BTS 방탄 프사 인장 헤더 아트워크 모음 - LOVE YOURSELF Tear HEADERCulture/MusicNowhere Cafe2023-02-18 12:26 선택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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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분명히 해피엔딩아닌데 되게 현실적인 느낌이고 따듯하네 신기하다.

안아줘
김태형 x 김석진
 
- 응, 엄마. 도착했어요. 응, 안늦었어. 헤헤..네. 밥 잘 챙겨먹구요.
멀리 비행기가 일으키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전면창의 유리가 시원했다. 이미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한 번 더 호선을 그렸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연초에 대리 승진 이후 쏟아지는 업무량 속에서 7월...그래, 7월까지만...이를 악물고 핏발 선 눈으로 엑셀과 아웃룩을 덩달아 혹사시켰다. 지나보면 훅 저만치 멀어지는게 시간이라.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답답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던져버리고 민트색 피케셔츠 를 곱게 빼입은 뒤, 평일 오후에 아메리카노나 쪽쪽 빨면서 휴가 만끽 중. 무엇을 하든지 여유가 넘쳐야 하는 성격상 비행기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즐기며 또 하나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이유. 10분 전, 석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빨강 광택이 번쩍번쩍 빛나는 한정판 신용카드를 공항 라운지 직원에게 내밀었다. 내가 이거 연회비 무료 기간에 발급 받으려고 얼마나 많이 카드사 홈페이지를 들락 거렸던가. 내 마우스에 발자취가 있었다면 카드사 도메인 주소가 지금쯤 가루가 되었을거다. 하도 들락날락해서. 어쨌든 불편한 4인 일렬 공항 대기실 의자가 아닌, 몸이 반쯤 파묻히는 라운지 소파에서 석진은 행복의 오오라를 마구 뿜어대는 중이었다. 5박 6일의 휴가를 내고도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는 하루도 못 내려가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안부와 하직인사 겸 전화를 건 석진이 오늘만큼은,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거니...?' 은근히 감겨오는 모친의 공격도 상큼하게 차단했다. 모르겠다. 지금은 놀아야지. 저도 모르게 흥얼대던 콧노래가 끊긴 건, 어디선가 웅성대는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심상찮은 기색을 보일 때였다. 라운지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는 순간, 문틈 사이로 비친 찰나의 순간 떼로 지르는 비명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이 무슨 주말 야구장에서나 접할 소린지. 석진이 핸드폰으로 한가롭게 체크하던 주식사이트에서 눈을 뗐다.
막 라운지 안으로 발을 들이는 건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다. 누가 봐도 방금 전 그 소음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저들이요, 알 수 있는건 그 중 가운데 선 남자 때문이었다. 공들여 매만진 밝은 갈색 머리에 남들보다 훤칠한 키. 무엇보다 비율이...비율이...분명 남들 다 끼는 베이직한 모양의 선글라스를 꼈는데도 맞춤 제작한 특수장비처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딱 봐도 연예인이었다. 누구지? 다소 먼 구석 자리에서 석진이 상체를 쭉 빼며 눈시울을 좁혔다.
그러다 퍼뜩, 그 연예인인지 모델인지가 선글라스 낀 얼굴을 석진의 정면으로 향했다. 힉. 순간적으로 앞에 펼쳐놓은 잡지로 시선을 돌리며, 석진은 가슴을 쓸었다. 아 놀래라. 너무 대놓고 구경했다. 라운지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아니 근데 연예인이면 뭐...이 정도 시선 정도는 좀 익숙하지 않나? 쟨 좀 민감한 편인가봐. 괜히 잡지 페이지를 펄럭거리며 애써 뻗어나가는 신경을 잠재우는데, 바닥에 고정한 시야 가장자리로 검정색 단화 앞코가 점점 다가오는게 보였다. 설마, 저거 설마 나한테 오는거야?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한 석진이 애써 딴청을 피우며 손에 든 아메리카노 빨대를 다시 쪽, 빨았다. 그래도 다행히 저기...물어오는 목소리는 상상처럼 위협적이진 않았다.
- 네, 네...?
- 아...와.
- ...?
- 맞죠? ...석진이 형.
 
 
 
투 스트라이크. 전혀 예상치 못한 자기 이름이 나오는 것에 놀라서 석진이 멍하니 까만 선글라스 밑에 자리잡은 입술만 바라봤다. 자신의 공황상태를 눈치챈 상대의 입이 네모나게 벌어지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어?...저 웃음..저렇게 웃는 입모양...미처 기억을 떠올리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알아서 쿵, 떨어졌다. 귀가 다 욱신거릴 정도로 거센 박동이 울려퍼졌다. 그제서야 선글라스를 벗어 와이셔츠 앞섶에 끼우며, 또렷이 드러난 눈동자가 석진을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처음에 딱, 얼굴을 보면큰 눈이 늘 지배적인 느낌을 차지했다. 그리고 다시 보면 이젠 날카롭게 선 콧날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의 잔상이 석진을 어지럽게 했다. 눈 앞의 태형이 다시 한 번 반가움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 와- 진짜 석진이 형이에요? 우와-
코를 살짝 먹듯이, 발음을 뭉개는 태형의 음성을 듣고서야 확, 지나간 시간이 의식을 당겨오는 느낌이 들었다. 석진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앞에 마주한 얼굴을 한 번 보고, 두번 보고. 아무리 눈을 깜박깜박 해봐도, 역시 태형이었다. 우습게도 며칠 전, 케이블 방송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친 태형이 떠올랏다. 최근 출연한 영화의 프로모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차마 클로즈업 화면으로 나오는 전남친의 얼굴에 리모콘을 겨냥하기가 왠지, 좀, 그래서 얼마간 지켜봤던 태형은 말을 어찌나 단정하게 하던지. 마치 석진이 알던 그 누군가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서 오히려 무딘 눈길로 화면을 바라봤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마주친 지금의 태형은 그 때 던졌던 눈길이 무안할 정도로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았다. 늘 체격보다 품이 크게 입었던 후드티와 검정 반바지, 흰 티셔츠 대신 깔끔하게 슬랙스 안에 넣어입은 프라다 셔츠는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석진이 형, 음절 하나마다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까지 너무 똑같았다. 우습게도 코끝이 약간 찡해졌다. 그래도 그걸 곧이곧대로 티낼 순 없으니까, 석진은 곧 정신을 차렸다.
- 어, 태형아...너무 오랜만이다...
옆에 앉으라고 권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도 일어서서 악수라도 청해야 하는 건지. 석진은 적합한 행동을 찾지 못하고 명령이 끊어진 프로그램처럼 버벅거렸다. 앉은 무릎을 바르작 거리며 일어설지, 말지 고민을 하는데 태형이 그런 석진의 눈을 마주하려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잘 다려진 검정 슬렉스의 무릎 부분이 그대로 라운지 바닥에 닿았다.
- 어떻게 이렇게 만나지? 너무 신기하다 진짜.
- 어.....그러게....이게 몇년만이지? 거의..
- 3년이요. 와....형 가끔 생각나면 혹시라도 돌아다니다가 한번쯤 만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진짜로 일어났어.
무릎을 꿇는 바람에, 태형은 조금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연신 석진의 눈을 맞춰왔다.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리는 눈동자를 석진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들어 올리듯 잡았다, 놓쳤다 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신기한 것을 보는 마냥 석진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는 건 영락없이 스물-스물한살 때의 똥강아지 같은 모습이다. 난 지금 네 얼굴을 3초 이상을 쳐다볼 수가 없는데, 넌 왜 그 때랑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건데.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꺼내보는 말이 괜히 억울했다.
뭔가 대단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와 신기하다...너무 신기해..와 진짜 좋아요 만 무한 반복하는 태형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것은 은근히 난처한 일이었다. 태형이 반갑지 않아서라거나 불편하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3년 못봤는데, 이렇게 훅훅 들어오던 건 예전 버릇이었나? 고개를 갸웃해봐도 언뜻 떠오르는 건 없었다. 결국 같이 들어왔던 남자와 여자가 태형의 직속 스탭인지 이젠 가야할 시간이라고 일러주지 않았다면, 석진은 그만 손에 얼굴을 묻고 말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허술한 방어는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사고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틈을 타 석진에게서 받아낸 핸드폰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며, 태형은 스탭들에게 떠밀려 자동문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뒤를 몇 번이고 돌아봤다. 마침내 태형이 문 저편으로 사라지자 약속된 것인냥 소녀팬들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테이블에서 몇 번 불빛이 반짝 거리다 곧 부재중 메시지를 띄운 핸드폰만이, 바람같이 머물다 간 태형을 실제로 증명하는 유일한 물체였다. 그 후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태형의 문자에 홀리다시피 하면서, 그토록 고대하며 향한 휴가는 어느덧 온통 태형으로 채워졌다. 석진은 이것을 과연 여행을 망쳤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 휴가의 마지막 밤 울적하게 고민했다.
*
석진의 한때 취미는 사진이었다. 돌이켜 보면 석진을 거쳐간 수많은 취미 중에, 사진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하필 그 시기에, 하필 사진을 해서. 하필 눈독 들였던 좋은 사진기를 손에 넣은 그 때에 여기저기 출사를 간다고 떠벌렸던 게, 지금 현재 한 권 남짓 앨범으로 남은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석진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시작은 이랬다. 영화 동아리에서 카메라를 잡는 과 동기가, 3학년 여름 방학때 로드무비로 단편 하나를 찍을 건데 장소 헌팅을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했다. 거절을 잘 못한다기 보단 굳이 타인의 부탁이 얼만큼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인가, 천성적으로 그런 계산을 잘 못하는 석진이 그래. 순순히 카메라를 들고 나왔더랬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땡볕 아래서 사진을 찍고는, 그날 저녁 이번 촬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고깃집에서 만난 게 바로 태형이었다. 인사해. 연영과 1학년 김태형이. 이번에 첫 촬영이야. 필기성적 하위 5프로를 실기 5분만에 뒤집어엎고 입학한 얼굴 천재.
워낙 많이 들은 말이라선지 민망한 기색도 없이, 한 손에 집게를 들고 있던 태형이 석진과 석진의 동기를 번갈아 보며 히, 웃어보였다. 나름 그것이 부끄러움의 표출이라는 건, 나중에 태형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다음에나 알았다. 그러나 석진에게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태형의 얼굴만이 보였다. 와, 연영과 애들 진짜 잘생겼구나...석진은 지구상의 모든 예쁜 것들에 약했다. 특히나 잘생긴 또래 남자의 얼굴에는 유독. 멍하니 땡초 하나를 집어서, 태형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베어 무는데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아 매워...! 외마디 소리를 치며 얼굴을 삽시간에 구긴 석진이 허둥지둥 물을 찾는데, 태형이 어어! 하더니 물컵을 뺐는거다. 그리고 고기를 쌈도 없이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주면서, 매운거 먹고 물 바로 먹으며는 더 매워요. 기름으로 씻어야 돼요. 잘생긴 얼굴에 걸맞는 중후한 목소리에 우와아.. 그와 사뭇 다르게 옹알이를 하듯이 내뱉는 발성에는 또 멍.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얼떨결에 내밀어진 젓가락을 입으로 앙, 받아먹은 석진이 빈 젓가락을 들고 환하게 웃는 태형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거기서부터였구나. 훗날의 석진이 클립을 끼워두듯 시작점을 표시한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대뜸 나도 방학때 특별히 하는 거 없는데. 촬영때 일손 필요하면 말해. 쿨하게 제안한것도, 따지고 보면 태형의 웃는 얼굴 하나 때문이었다. 애초에 영화에 대해선 별반 호오가 분명하지 않던 석진은 남들이 보면 고개를 갸웃할 정도의 열정으로 온갖 자질구레한 촬영 써포트를 했다. 짐도 나르고 장소섭외도 같이 하고 간식도 사다 나르고. 이 형은 천산가봐. 여자 한 명 없는 시커먼 촬영장에서 이런 헌신을 다보고. 석진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발그레 피어오르는 미소가 한여름 태양빛 아래 빛나는 김태형에 가 닿는것도 모르고, 동아리 일행들은 덤으로 얻은 저들의 행운을 석진의 사람 좋음으로 일축했다. 사실 석진은 타인들에게 선의를 적선하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석진이 뱅뱅 원을 그리는 그 중심에, 태형은 그 흔한 반사판 하나 없이 후줄근한 면티 차림으로 서 있었다. 방금전까지도 온 얼굴근육을 다 쓰면서 웃고 떠들다가도 큐 사인만 들어가면 삼백안의 눈을 매섭게 뜨며 겁도 없이 카메라를 싹 무시하는 게, 제법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쟤는 타고났어. 저거 겁대가리없이 카메라에 눈길도 안주고 대사 다 치는거 봐.
주변의 누군가 화면에 담기는 태형을 보고 탄식하듯 내뱉었다. 석진은 불과 1분전 어떻게 불을 붙이는지도 몰라 허둥댔던 담배를 익숙하게 손에 끼워 볼이 패이도록 빨아들이는 태형의 태연한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오버를 하거나 튀지 않아도, 태형에게는 은밀히 주변 시선을 끌어와놓고 모른체 시침을 떼는 야속한 매력이 있었다. 뭘 해도 그가 하면 설득이 됐다. 그래서 석진은 어느 순간 태형 앞에 서면 요동치는 가슴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김석진은 좋아하는 것들을 마치 별처럼 흩뿌려놓고, 별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점과 점을 이어가며 차례대로 사랑을 쏟는 타입이었다. 그 순간에 최고로 빛나는 건 단연 태형이었다.
어느 날인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모두가 듣는 앞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물었다.
- 석진이 형은 아예 우리 동아리 들어오는거에요?
- 아니. 나 태형이 보려고 이것만 같이 하는건데.
'왜? 김태형 좋아해서?' 상대가 다소 짖궂게 받아치는 질문에도 석진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타인의 무지를 빌어, 당황한 기색도 없이 폭탄을 팡팡 터뜨리는게 그 당시 석진의 주특기였다.
- 그럼 내가 태형이 엄청 좋아하지. 일단 야, 얼마나 잘생겼냐.
으레 하던대로, 태형은 할 말이 없을 때 짓는 웃음을 지었다. 석진이 좋아하는, 눈이 완전히 없어지며 입이 네모가 되는 웃음.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촬영에 모두들 고무된 날이었다. 태형에게는 난생 처음으로 맘 속에 품은 막연한 무언가를 실제로 끄집어내 본 경험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불안불안 하더니, 태형이 결국 들이부은 술을 이기지못하고 퓨즈가 끊겨버렸다. 제 한몸 가눌 사정도 벅찬 고만고만한 이십대 초반의 사내아이들은 애써 태형을 못 본척 자신의 취기를 방패로 삼았다. 결국 태형의 뒤치다거리는 근방 10분 거리에서 자취를 하는 석진의 몫이 될 운명이었다.
어느덧 9월에 가까운 늦여름의 밤. 간간히 이마를 핥는 바람 한줄기에 감사하며 석진은 태형을 끌다시피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올랐다. 아예 들춰업자니 같이 술잔을 기울인 석진의 다리도 좀처럼 곧게 서질 못해서. 불안하게 석진의 어깨에 기댄 몸이 요동을 치는데 아예 꿈에 잠겨버린 냥 정신을 못차리는 태형이 얄미워, 몇 번이고 대답 없는 대화를 건네고 등짝에 손바닥을 찰싹찰싹 날렸다.
기껏 끌고와 방바닥에 메다꽂자, 태형은 그제서야 구토를 시작했다. 야, 너...아까 밖에서 그렇게 뒹굴땐 기미도 안보이더니...숫제 울먹이면서도 석진은 때아닌 밤중에 착실하게 걸레질을 하고, 태형의 옷까지 갈아입혔다. 속을 한번 게워내고서야 눈동자의 초점을 다시 찾은 태형이 입가를 벅벅 문지르며 죄송해요, 기어들어가는 사과를 했다.
- 제가 다 치울....
- 아냐. 이왕 한거 더 토해.
화장실 변기를 내주고 헹궈낸 걸레를 옆에서 빠는데, 불편한 듯 뒤에 서있던 녀석이 불쑥 당돌한 말을 했다.
- 이것도 저 잘생겨서 해주시는 거에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며 석진이 고개만 뒤로 돌렸다. 아직도 술에 취해, 토하느라 눈물이 약간 번들대는 상기된 얼굴이 말을 이었다.
- 저 잘생겨서 저 막 토한것도..다 치워주시냐구요.
뱉어놓고도 말이 왜 이렇게 헛나가지, 입술을 꽉 깨문 태형이 다시 아니, 그게 아니라.. 수습을 해보는데 석진이 짧은 동안에도 착실하게 고민한 답을 내놓았다.
- 음. 틀린말도 아니야.
다 빤 걸레를 챙겨서 베란다로 가는데, 태형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석진의 뒤를 비척대며 쫓았다.
- 진짜 그거하나면 돼요?
- 왜, 부족한거 같아?
- ...너무 대놓고 얼굴만 보는거 아니에요?
짐짓 해보는 볼멘소리에 어리광이 슬며시 배어나왔다. 그러면서도 혹시 제가 너무 나갔나, 눈치는 꼭 본다. 걸레를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널던 석진이 태형의 눈길은 모른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너무 상냥하지 않게 들렸으면 하는데도 고백은 어쩔 수 없이 간지러웠다.
- 그거 하나면 됐지, 굳이 뭐가 더 필요해.
- 아니...보통은 잘생기면 얼굴값한다고 하는데.
- 너 은근히 뻔뻔하게 말 잘한다?
- ...
- 꼴값하는것보다 낫지, 뭘.
잘생긴거 좋은거야. 눈에 딱 보이니까 오해할것도 없고. 거짓말도 안하고. 그냥 한눈에 봐도 알수있잖아.
먼지 낀 베란다의 백열등이 조곤조곤 말을 잇는 석진의 얼굴에 그림자를 내렸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양 손목을 올리고 쭈그려앉은 태형은 대꾸가 없었다. 손을 탁탁 털며 한 발 집 안으로 들어오려던 석진 앞을 비켜주지 않고, 그제서야 입을 뗐다.
- 형도 잘생겼어요.
- 응, 알아.
- ...저 라면 먹어도 돼요?
- 응. 끓여줘?
- ...뽀뽀해도 돼요?
- 음...응.
- ...형이랑 자도 돼요?
- ...그래.
그 후로도 석진과 태형의 사이가 겉으로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전이나 이후나, 남들 눈엔 여전히 좀 유난스럽게 친해진 선후배였다. 그러나 남들 눈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몰래몰래 입을 맞댔고, 가끔 열기가 오르면 구석진 곳에 몸을 겹쳐 서로의 어깨와 등을 감싸 안는 시간이 새로 생겨났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촬영이 끝나는 어둑한 시간, 으레 부속고기와 소주 대엇병을 끼고 하는 동아리 회식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란스럽게 한데 엉킨 일행을 뒤로 하고 나와 가게 뒷골목 담벼락에 서 있노라면, 얼굴이 불콰해진 태형이 어김없이 석진을 찾아냈다. 한 골목 건너 왁자지껄 술에 취한 사람들의 발자국에 맞춰 심장이 아슬아슬 졸아붙을 때, 가로등 밑 그늘에 힘겹게 몸을 겹치고 빈틈없이 감쳐물던 입술은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었는지. 가로등 불빛에 눈이멀어 등을 들이받는 하루살이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뜨겁고 황홀한데 불길에 날개가 타들어가든, 온 몸이 집어삼켜지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태형은 석진이 주는 애정을 연료로 오색의 불꽃을 피워냈다. 화려하고 농염한 불빛에 취해 석진은 날개가 타들어가는것도 모르고 불 주위를 도는 하루살이처럼 태형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불꽃이 튀어오르는 지척에서는 맴을 도느라 지친 날개를 접고 쉴 수가 없었다. 불은 스스로 꺼지거나 열기를 조절할 수 없다. 노곤한 몸을 누이려면 억지로라도 불빛에서 떨어져야 했다.
*
6개의 입사지원서가 모두 탈락된 어느날, 석진은 학교 컴퓨터실에서 나와 태형이 기다리고 있을 자취방이 아니라 명동 성당으로 갔다. 성당 입구의 마리아상 앞에서 성수를 찍어 이마와 가슴께에 성호를 그리면서, 석진은 울었다. 어릴 때 엄마를 따라 드나들었던 성당에도 똑같은 마리아상이 있었다.
늘 희고 깨끗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리아상을, 석진은 언젠가부터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해야할 숙제를 못했을 때 담임 선생님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는 것과 같은 것이였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잘하고 석진의 글씨가 이쁘다 칭찬해주는 같은 반 짝꿍에게 매일 가슴이 두근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을 오롯이 숨기지 못했던 석진은 어느 날인가, 유쾌한 장난 끝에 무심코 짝꿍의 손을 잡은 적이 있었다. 어씨, 홱 손을 빼낸 짝꿍의 얼굴은 늘 하던 짖궂은 장난을 대하는 것처럼 개구졌지만, '아 뭐냐 같은거 달린 남자끼리, 아무리 궁해도 나 여자 아니다.' 날아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강펀치를 날리는 것처럼 욱신욱신했다. 짝꿍은 대수롭지 않은 장난으로 받아 넘기는 듯 했지만 석진에겐 미처 깨닫지도 못한 마음을 떨궈버린 실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엔 좋아하지 않고 못 배길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태형은 최고였다. 최고로 좋아하고 싶은 것과 최고로 좋아해선 안될 것. 그럼에도 눈을 멀게 하는 빛에 홀려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태형이 손을 마주 잡아왔을 때는, 도저히 좋아해선 안되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가끔 지인의 모델로 사진을 찍혀주는 소일거리를 하거나, 그보다 더 가끔 기획사 신인 연기자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는 이상 태형은 언제나 석진의 자취방 한켠에 돌돌 이불을 말고 있었다. 외출했던 자신을 맞을땐 애벌레처럼 꾸물대며 눈곱이 말라붙은 눈을 뜨는 태형이, 석진은 그렇게 눈부실수가 없었다. 뙤약볕에 건조해진 마음을 분무기를 뿌리듯 소생시킬 수 있는 건 태형 하나였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로 세상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옅어질수록, 초조함이 어느덧 석진의 생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평일이라 성당 앞의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광장에는 간간이 관광객들 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오래도록 앉아 하나씩, 불이 들어오는 마천루의 창문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저렇게 많은 방이 있는데 석진의 자리 하나를 내어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중대한 실패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또 그다음엔 고등학교, 대학교. 언제나 갈 곳이 있었던 석진은 처음으로 길이 막혀 오갈데 없는 황망함을 뼈아프게 곱씹었다.
서로 같은 마음을 확인하고 한 덩어리로 엉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정작 균열의 시작은 허무하도록 사소했다. 마침 겨울의 초입, 석진의 생일이었다. 함께한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대신 신경질적인 침묵만이 좁은 자취방을 질식할듯 메우기 시작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멀끔하게 차려입은 태형이 특유의 네모입 웃음을 지으며 밤새 자소서를 고쳐쓰느라 뒤늦게 잠에 취한 석진을 끌어냈다. 아 혀엉. 생일이잖아. 응? 데이트해. 입술을 모으고 눈꼬리를 축 내려뜨리면 석진은 화를 내려다가도 웃어버리곤 했다. 이번에도 석진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주섬주섬 태형을 따라 나섰다.
잠과 피로에 쩔어 비실대는 석진을 이끌고 백화점 몇개 매장을 돌아보던 때였다. 어머, 우리 태형이니? 쾌할한 음성의 중년부인이 등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거 한번만 입어봐, 찡찡대며 니트를 석진의 몸에 가져다 대던 태형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굳었다.
- 어, 엄마.
- 여기 있었어? 오늘 여자친구 생일이라 데이트 한다더니.
선한 인상의 눈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태형의 옆에 선 석진을 훑었다. 그 시선 앞에 석진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한 사냥감처럼 허둥댔다. 경황없이 고개만 주억거리다 최대한 눈길을 떨어뜨리는게 할 수 있는 전부여서 숨이 턱턱 막혔다.
- 여자친구는 어디가구, 잘생긴 형아랑 같이 있어.
- 아, 어...저, 저기. 1층에.
- 으응, 그래. 엄마 아빠 와이셔츠 바꾸려구. 그럼 좋은 시간보내? 나중에 또 봐요.
웃을때 기분좋게 벌어지는 입모양이 태형과 똑같았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석진은 뜬금없이 며칠전 찾아갔던 명동성당의 마리아상 생각을 했다. 태형의 어머니가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석진은 말없이 매장을 빠져나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모처럼의 오후가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석진의 등과 신발 앞코를 번갈아 보며 태형은 몇발자국 뒤에서 걸었다. 석진의 자취방이 있는 동네 앞까지 돌아온 둘은, 결국 저녁식사와 대화를 모두 거르고 헤어졌다.
한번 심지에 불이 붙은 계기는 속절없이 타들어갔다. 곧 점화될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있는 것처럼 석진과 태형은 위태롭게 시계바늘 위를 걸었다. 이불 속에서 시원하게 나오지도 않는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석진은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그 순간에 깊이 자신의 속을 후려치던 그 절망은 태형이 자신의 존재를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 데 있었을까, 아니면 자기 부터도 떳떳하게 화 한번 못내고 고개만 숙여야 했던 데 있었을까. 사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태형을 탓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탓해야 한다면 어딜가나 어깨를 펴지못하는 곳만 골라 발을 디디고 있는 저가 문제겠지. 태형이나 자신에게 화를 내봤자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서러워 석진은 오랫동안 베갯잇에 꺽꺽거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석진이 다음날 자취방 문을 열었을때, 현관문 앞에는 조그만 정사각형 상자에 든 케잌이 놓여있었다. 며칠을 힘겹게 외면하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발에 채이던 케잌상자는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치워졌다. 석진의 일상에서의 태형처럼. 그러나 케잌의 행방을 고민하는건 이미 부질없는 일이었으므로, 석진은 태형이 비운 자리 역시 구태여 애도하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케잌을 태형이 와서 치웠건, 동네 아주머니가 치웠건 간에. 자신이 태형을, 태형이 자신을 사랑한들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어차피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부산스럽던 마음이 점차 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둘의 핸드폰 메신져 창은 아무도 보지않는 달력처럼 날짜를 바꿔 달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석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똑같이 면접스터디를 나가고 밤을 새 입사지원서를 썼다. 그것만 하기에도 가진 힘이 모자랐다. 연락처에 남은 태형의 전화번호가 보일때마다 폐부를 찔러오는 아픔이 조금씩 무뎌질 때, 석진에게 태형의 입대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입대 후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
- 왜 이렇게 말랐어요.
마치 자신이 책임을 느낀다는 냥, 태형이 처연하게 눈꼬리를 내려뜨렸다. 뭐라 해줄 말이 없어 석진은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때웠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거에요? 회사 많이 힘들어요? 숫제 팔을 뻗어 석진의 팔뚝살을 움켜쥐는 태형의 눈빛은 천진했다. 태형의 움직임대로 한발짝 늦게 움직이는 자신의 반응이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형 꼭 봐야돼요. 얼마만에 만난 건데. 시간될 때 알려줘요, 제가 형 있는 곳으로 갈게요. 휴가 후에도 석진의 핸드폰에는 태형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안 본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없는데 너무 애달프게 석진을 찾아대서 오히려 위축되는 건 석진 쪽이었다. 아직 태형의 얼굴을 보면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석진과 달리 태형은 매일 보던 지인을 대하듯 거리낌없이 거리감을 헤치고 들어왔다. 이 정도면 석진의 머릿속에 남은 이별이 정말 눈 앞의 이 강아지랑 한 게 맞는지, 착란이 올 지경이었다.
분명한 건 그 때의 태형이 싫거나, 둘의 관계에 단순히 염증이 난 게 아니었다. 그냥 삶에 지쳤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석진이 열심히 이루고자 노력하는 다른 삶이 태형이 있는 삶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었을 뿐, 둘 중 어떤 것을 까내리거나 더 높이 평가해서 다다른 결론이 아니었다. 분명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인 시간들이 있었다. 그건 태형에게는 안전한 요람이었고, 석진에게는 태형 하나를 위해 직접 흙을 파내고 벽을 다진 동굴 같은 것이었다. 태형은 그저 머리를 뉘이고 쉴 수 있는 석진의 품에서 안락히 침잠했고, 석진은 동굴 밖의 세상을 늘 미련을 가지고 동경했다. 석진이 마음속으로 깊이 원하는 건 남들 하는 만큼만 하고 사는 거였다. 그 꿈이 이렇게 이루기 어려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집에 들어가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노골노골하게 따뜻한 가정. 그렇게 소소하게 흘러가는 인생이었으면 했다. 물론 태형이와 함께 하는 날들에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내일을 걸고 기대기엔 태형은 아스라히 멀어지는 꿈처럼 예쁘기만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 같았다.
- 형.
- 어? 응..응.
- 피곤해요? 집에 들어갈까?
어...그러니까, 어느 집? 우리 집?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오는 잡생각을 쫓으려 석진은 다시 눈동자를 굴렸다. 그 와중에도 태형의 순진한 눈망울은 깨끗하기만 해서 아무런 의도가 없는게 자명한데 자꾸만 말꼬리를 잡는, 사실 자신도 이미 남아있지도 않은 미묘함을 자꾸 집어내려는 신경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사회인의 피로누적을 흉내내는 게 훨씬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 나 어제 야근을 했더니....어후 막 어깨가, 뭉친다 뭉쳐.
- 이리 줘봐요 어깨.
- ....아니야. 됐어.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 어깨로 손을 뻗던 태형이, 낭패감에 입술을 깨문 석진을 보고 다시 히, 웃어보였다. 아니 나 왜이렇게 촌스럽니.
공항 라운지에서는 너무 당황해서 이렇다 저렇게 생각을 못했는데, 다시 만난 태형을 보고 그 시절의 감정이 살아났다면 그게 더 말이 안되는 것이었을 테다. 애써 끊어졌던 줄을 이으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이미 몸으로 깨우쳐 알고 있는 이십대 후반이었다. 그런데 절대 그런 마음이 아닌 걸 알면서도 태형에게 적응이 안됐다. 그래, 아마 화보 촬영 후 바로 오느라 옅은 베이비 펌의 희미한 메이크업을 한 태형의 차림이 퍽 화려해서. 안그래도 사귈때 조차도 가끔 낯설도록 잘생김을 뿜어내던 태형인데 심지어 얼굴로 벌어먹고 사는 요즘의 기량이야 오죽하랴. 그리고 나는 얼굴에 약하니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석진을 보던 태형이 말을 이었다.
- 그래도 집에 바로 못데려다 줘요. 나랑 갈 데 있어요.
- 어.....어디를?
가보면 알아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끌고 익숙하게 발레파킹을 호출해 자신의 차를 빼온 태형이, 운전석으로 올라타며 건너편의 석진에게 눈짓으로 타라는 시늉을 했다. 생긴 건 화려한 날라리 같은데 의외로 차는 은색의 아우디 세단이었다. 연예인 차로 보기엔 얌전했다. 강남 카페 골목을 돌고 돌아 지름길로 도착한 백화점은 막 마감 시간에 돌입한 참이었다. 안 되겠다. 얼른 가서 가지고 올게요. 이미 봐놓은 것이 있는 듯 석진을 갓길에 대놓은 차에 남겨두고 태형이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쟤 연예인인데. 나는 막 차안에 얌전히 앉아있고 쟤를 저렇게 뛰게 해도 되나. 괜히 실없는 생각을 했다.
태형은 정말 말한대로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차로 돌아오는 중 백미러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볼 석진을 이미 알고있다는 듯, 히히 웃음을 지었다. 그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여간 저 웃음에 약한 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어디 가나. 직접 눈을 마주하지 않고서야 태형에게 조금 적응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운전석에 다시 올라탄 태형이, 손에 쥔 정사각형의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상자를 건네 받으며 석진이 눈으로 물었다. 태형은 웃으면서 코를 긁었다. 조금 겸연쩍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포장을 뜯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밀어 여는 석진을 곁눈질로 보며, 태형은 차를 출발시켰다. 상자에 든 건 커프스 단추 한 쌍과 넥타이 핀이었다. 선물을 받게 될거라 생각도 못한 석진이 무어라 할 줄몰라 입술을 벙긋대는 사이, 태형이 적절히 할말을 찾아냈다. 형 지금 사는 동네는 어디에요? 어, 나 지금 건대입구. 네비로 상세주소를 찍어주는 통해 고마워, 뭐 이런걸 다, 할 수 있는 모든 어색한 인사는 입속에서만 돌다가 삼켜져버렸다.
*
-그거 3년전에 못준 거, 생일 선물이에요.
석진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기어를 내린 태형이 그제서야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둘 사이에 3년의 공백이란 없던 것처럼 굴었던 것과는 이외였다. 하도 휘둘린 탓에 어느새 이완한 석진의 뒷목이 다시 빳빳해지기 시작했다. 3년 전 생일 선물, 이 정도 단어만으로도 자신이 고개를 들고 태형을 마주보기는 이미 어려운 일이었다. 희미하게 발에 채이듯 사라져간 케익 상자와 태형의 마지막 모습이 한데 섞여 떠올랐다.
- 나중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있죠. 우리 둘이 사실 못해본게 없더라구요.
- .....
- 나는 형이랑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한거 같아요. 처음에는 막, 죽도록 힘들고 그랬는데...
묵묵히 꺼내는 옛 연애의 고해성사를 듣던 석진이 죽도록, 이라는 대목에서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태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 아, 아니...진짜 죽으려고 했다는게 아니라.
뒷말에 웃음이 섞였다. 그 바람에 석진도 바람이 빠지듯 웃었다. 놀래긴 뭘 놀래. 눈 앞에 흉터 하나없이 멀쩡한 애를 두고.
그래도 죽도록 힘들었다는 태형의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석진의 생일날, 그렇게 준비를 한 보람도 없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태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취업준비에 치이며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더듬거리며 모친에게 거짓말을 둘러댈때 아무 표정 없이 새햐얗게 질려갔던 석진의 얼굴이 가슴을 쳤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백화점에서 자취방까지, 버스 5정거장의 거리를 걷던 석진의 뒷모습은 그 다음으로 멍든 가슴에 콕콕 와 박혔다.
한 걸음 가면 똑같이 한걸음 멀어지는 석진의 등.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결국 태형은 자취방 안으로 사라지는 석진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평소 석진과 툭하면 오르내렸던 골목길이 서럽도록 어색했다. 초겨울의 몇시간을 꼬박 걷고, 다시 혼자서 걸어 집에 돌아가자 자연스럽게 탈이 났다. 그러나 태형은 앓는 동안 한 번도 석진을 찾지 못했다. 비단 열에 들떠서 만은 아니었다. 감기몸살 증상이 다 사라진 후에도 태형은 계속 아무것도 못먹고, 못자고, 새벽에는 골이 터지도록 울고 나서야 조금 졸았다.
꼬박 한달을 앓자 깨달은 건 석진이 없어도 딱히 죽지는 않는구나, 하는 거였다. 앓을 수 있는만큼 실컷 앓고 나자 오히려 몸은 가뿐하게 일으켜졌다. 가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학교와 가끔 생기던 소일거리를 제외하면 늘 석진의 집에 가 있느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달 남짓한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번엔 군대에 자원 입대를 했다. 기존의 일상에서 석진의 빈틈을 애도할 겨를도 없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서서히 다시 웃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준수한 태형의 얼굴을 보고 타인들이 감탄하거나 시샘하거나, 꼭 한마디씩 짚어가는 건 똑같았다. 그래도 머쓱하게 땅으로 내리는 눈동자가, 전과 비교해서 한층 깊이가 생겼다. 가끔 파도에 밀려오듯 의식의 저편에 석진이 떠오를때면 그 전엔 한번도 지은 적이 없는 표정을 했다. 수척한 뺨에 길게 속눈썹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슬프게 눈을 떴다. 도저히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은 석진을 속으로 천천히 삭여 담아낸 자국이었다. 독백을 연기해서 지금의 기획사의 오디션에 붙은 것도, 그 눈빛이 던지는 파동을 사람들이 알아봐 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더욱 단단해진 눈빛이 다시 만난 석진을 향하고 있었다.
- 저 사실, 그 때 형이랑 있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싶은 게 없었을 때였는데,
- 오히려 형이랑 떨어지니까, 내 옆에 형이 있을 수 없다면 내가 형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에 뭐 어려울 게 없는 거 있죠. 그거 배우려고 그 때 형한테 그렇게 매달렸나, 싶기도 하고.
- 형은 그렇게, 저한테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주던 사람이었는데.
- 다른 건 정말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나 솔직히 받을만큼...형이 줄수 있는거 날름날름 다 받아먹었는데. 이거 하나가 너무 아쉬운 거에요. 형 꼭 취직하면 첫 선물 내가 사주고 싶었는데...
이미 엄청 늦었지만. 그래도 이거 전해주라고 이렇게 다시 만났나봐요. 필요할지 어떤지 몰라도 그냥 형한테 꼭 뭔가 주고싶었어요.
따뜻한 음성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태형의 말과 함께, 방금 전까지의 긴장과 다르게 파닥대는 심장소리를 석진은 가만히 들었다. 그건 또 다시 아득한 시작을 알리는 설렘과는 다른 종류였다. 태형이 아니라, 태형의 눈 속에 어느 새 깊이 박힌 그 옛날 자신의 그림자가, 3년이 흐른 뒤의 석진의 심장을 날갯짓하게 했다.
*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것도 까마득하게 예전의 일이었다. 새로운 동네의 새로운 거리에서, 두 사람은 그때처럼 나란히 걸어 석진의 아파트 입구까지 갔다. 스무살과 스물 다섯 차이의 태형은 자세히 뜯어보면 많이 자란 티가 났다. 서서 대면하니 일단 키가 훌쩍 석진의 머리를 넘어선 게 보였다. 어렵지 않게 쓰다듬을 수 있었던 정수리는 어느새 석진의 눈길이 닿지 않았다. 홀가분한 걸음으로 옆에서 걷던 태형이 불현듯 생각난 듯이 말했다.
- 아 나, 또하나 생각나는 거 있다.
- 뭔데.
- 그 날, 싸워서 형 생일인데 케익에 초도 못 꽂고. 그 케잌 사실 내가 만든 거였는데. 그때 형이 요리 잘하는 사람 좋다고 했는데 차마 요리는 어려워서 못하겠고, 대신 케익으로... 어휴 그거 진짜...그거 먹긴 먹었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래 전, 홀연히 사라졌던 케익 상자를 가끔 누가 치웠을까 궁금하던 기억이 났다. 석진은 묵묵히 앞을 보며 웃었다.
- 아니. 안가지고 들어갔었어.
- ....너무하다.
예전에 태형이 한번 토라지면 꼭 이렇게 발을 차며 삐진 티를 냈었다. 그 때처럼 머리를 껴안고 달래주는 대신, 석진은 케익 먹을때마다 생각할게, 3년 동안 묵힌 마음을 그렇게 받았다.
토라진 척 발끝을 툭툭 차며 걷던 태형이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전까지 스무살의 얼굴을 했다가, 또 힘을 빼고 웃는 건 영락없는 어른이다.
- 가끔씩 안부 정도는 전해도 돼요?
- 응.
- 어....가끔씩 만나서 막, 고민상담도 하고...계속 만나자고 해도 돼요?
- ..나중에, 언젠가 하게되면 형 결혼식 때도 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태형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그러나 곧 단단한 눈빛이 다시금 석진을 따뜻하게 응시했다.
- 그럼요. 가야지. 내가 박수 제일 크게 치고,
- 푸흐..
- 가서 신부한테도 큰소리 땅땅 쳐야지, 진짜, 내가 이 남자 딱 멋있게 보내줘서 오늘의 행운이 있으신 거예요 하고.
석진이 고개를 젖혀 웃었다. 슬쩍 보인 하늘에 걸린 눈썹달이 보였다. 빠져나간 웃음소리를 대신해 숨에 섞여 들이마신 밤공기가 상큼했다.
석진의 아파트 입구에서 태형은 돌아섰다. 뒷걸음쳐 가면서 하늘하늘 두팔을 들어올려 인사를 했다. 팔을 받친 어깨가 편안했다. 석진은 그늘에 가려 태형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마주 손을 흔들며 전송했다. 이내 돌아서는 등 뒤가 더 이상 시리지 않았다.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기 전, 문득 지금의 재회 이전에 가끔 거리의 스크린이나 버스 광고등으로 마주치던 태형을 떠올렸다. 잔뜩 멋을 낸 태형을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보고 있노라면 예전 자취방에서 늘 똑같은 회색 후드집업을 뒤집어쓴 채, 등을 둥글게 말고 자던 옛 연인을 도저히 추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안도했다. 제대로 갈 길을 가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스스로 조차도 아득해지도록 과거를 모조리 묻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구덩이를 파놓고 던져둔 기억 위에 세월의 흙을 덮으며, 그러나 석진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억지로 덮은 봉분은 오히려 혹처럼 심장 한 구석을 도사리고 자리 잡았다. 마침내 태형과 마주치게 되자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책갈피를 끼워 놓은듯 접어둔 과거의 페이지가 다시 펼쳐졌으나 석진은 도망치는 대신 그 시간들을 마주 껴안으며 웃었다.
그러자 황홀하게 사랑했던 태형과의 추억들이, 영롱한 빛으로 석진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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